백두산호랑이와 야생식물 종자, 북유럽의 산타와 베트남 왕족의 기억
당일치기 분천에 새롭게 생긴 숙소…흩어진 관광지 사이에 '밤'이 놓였다
7월25일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백두산호랑이 '미령'이 처음 관람객 앞에 섰다. 지난해 10월 이곳에 온 뒤 새 숲에 적응한 시간을 거쳐서다. 이틀 전에는 산 몇 굽이 건너 분천에서 산타포레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하나는 멸종위기종의 새 보금자리였고, 하나는 여행자의 새 잠자리였다. 봉화에서는 이상하게도 '도착'이 자주 뉴스가 된다.
봉화를 흔히 먼 곳이라고 말한다. 산은 높고, 관광지는 산과 산 사이에 흩어져 있다. 한 곳을 보고 다음 장소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다시 목적지를 찍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봉화는 세계와 동떨어진 산골이라기보다, 멀리서 온 것들이 자리를 얻은 곳에 가깝다. 호랑이와 씨앗이 숲에 들어왔고, 산타가 작은 역에 내렸다. 800년 전 베트남을 떠난 왕족의 기억은 지금도 고국의 관광객을 불러온다.
사라질 것들을 먼저 받아들인 숲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숲에서는 사람이 호랑이를 기다린다. 숲을 오래 바라보다 잎과 그림자를 구분하는 일이 지루해질 무렵, 줄무늬가 움직인다. 호랑이는 관람객을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사람이 호랑이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새로 온 미령도 그 시간을 가졌다. 데려오자마자 보여주는 대신 새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기다린 뒤 공개했다. 호랑이숲은 맹수를 전시하는 장소이기 전에, 한반도에서 사라진 야생의 기억을 잠시 맡아두는 공간이다.
수목원 깊은 곳에는 더 조용한 생명들이 산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장기간 보관하는 저장시설이다. 꽃이 피지도 않고 잎이 흔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식물은 작은 씨앗의 형태로 미래를 기다린다. 수목원이 현재의 숲을 보여준다면 시드볼트는 아직 오지 않은 재난 이후의 숲을 준비한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정원 한편에, 사람이 보지 않아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든 저장고가 들어서 있다.
봉화가 처음 자리를 내준 것은 관광객이 아니라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이었다. 호랑이에게는 걸을 숲을, 씨앗에는 깨어날 날까지 견딜 어둠을 주었다.
문수산 자락의 산림치유센터에 가면 이번에는 사람의 몸이 잠시 보관된다. 숲에 들어가기 전 보디체크 장비로 몸 상태를 확인한다. 혈압과 체성분, 스트레스 지수를 숫자로 들여다본다. '어쩐지 피곤하다'고 뭉뚱그렸던 상태가 수치가 된다.
그다음부터 몸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숲길을 걷고, 야외 해먹에 눕는다. 족욕을 하는 동안 발끝의 온도가 올라오고, 해먹은 사람의 무게를 받아 천천히 흔들린다. '산림치유'라는 말은 크지만 그 안의 동사는 작다. 재고, 담그고, 눕고, 숨을 고르는 일이다.
봉화의 숲은 사람을 금세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평소 외면하던 몸을 한 번 확인하게 하고, 별일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한다. 시드볼트가 종자를 재촉하지 않듯 숲도 사람에게 곧바로 나아지라고 독촉하지 않는다.
산타가 내린 작은 역
분천역에 도착하면 계절이 잠시 헷갈린다. 여름의 초록 한가운데 빨간 옷을 입은 산타와 대형 트리, 선물 상자가 서 있다. 북유럽에서 태어난 산타는 2014년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봉화의 작은 철도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서는 역과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결합해 쇠퇴하던 마을에 새로운 역할을 준 것이다.
산타가 분천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핀란드의 설원과 봉화의 산골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멀다. 그러나 관광은 때때로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낯선 것과 지역 사이에 그럴듯한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분천의 산타는 북유럽을 정교하게 복제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기차를 타고 산골에 온다는 여행의 설렘, 겨울이면 눈이 쌓이는 마을의 풍경과 만나 자기 자리를 얻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산타와 사진을 찍고 협곡열차에서 내린 여행자는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떠나야 했다. 볼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행의 다음 시간을 맡길 곳이 부족했다.
지난 7월23일 문을 연 산타포레리조트는 그 빈칸에 들어섰다. 옛 분천분교를 고쳐 만들었지만 교실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쓸 필요는 없다.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학교였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내부는 온전한 숙박시설로 바뀌었다. 객실 15실과 동물 모양 카라반 4동, 카페와 다이닝 공간, 회의실과 업무라운지를 갖췄다.
칠판과 책상을 남겨 폐교의 향수를 파는 방식은 아니었다.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 지금 봉화에 필요한 것을 넣었다. 잠자리였다.
열아홉 개 숙박 공간이 봉화 전체의 숙박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천 여행의 시간표는 달라졌다. 산타와 사진을 찍고 협곡열차에서 내린 뒤 곧장 다른 도시로 떠나는 대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이튿날 수목원이나 청량산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숙소 하나가 관광지 하나를 더 만든 것은 아니다. 흩어진 관광지 사이에 밤을 놓았다.
800년을 돌아온 베트남어
봉성면 충효당에 도착하면 봉화 여행의 시선은 갑자기 베트남으로 건너간다. 이곳에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 이용상에서 시작된 화산 이씨의 역사가 남아 있다. 13세기 베트남을 떠나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의 후손들은 안동과 봉화 일대에 터전을 잡았다. 충효당은 임진왜란 당시 문경 전투에서 전사한 후손 이장발의 충효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하지만 충효당은 족보 속 사연만 보관하는 고택이 아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월평균 약 1000명의 베트남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충효당과 인근 K베트남밸리는 한국을 방문하는 베트남 단체 관광객의 실제 여행 동선에 들어가 있다. 먼 옛날 고국을 떠난 왕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늘의 베트남 사람들이 다시 봉화까지 온다.
지방자치단체가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급히 만들어낸 서사와는 순서가 반대다. 800년 전의 망명과 정착이 먼저 있었고, 현재의 관광이 그 기억을 따라 움직인다. 역사를 관광상품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역사가 실제 관광의 길을 만든 셈이다.
충효당 앞에서 들리는 베트남어는 그래서 장식음이 아니다. 동상과 안내판에 적힌 과거가 현재형이 되는 소리다. 베트남 왕조의 후손이 낯선 나라에 정착한 지 수백 년이 지나, 그의 고국 사람들이 그 흔적을 찾아온다. 봉화는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이지만, 이곳에 와 있는 세계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봉화의 관광자원은 언뜻 한 문장으로 묶기 어렵다. 백두산호랑이와 야생식물 종자, 핀란드의 산타와 베트남 왕족의 후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나면 공통점이 보인다.
봉화는 낯선 것을 데려다 전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숲을 주고, 씨앗에게 시간을 주었다. 산타에게는 쇠퇴하던 역의 새 역할을, 베트남 왕족의 기억에는 고국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길을 내주었다. 관광객에게 부족했던 것은 그 길의 끝에서 머물 자리였다.
밤이 된 분천마을은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사람이 없는 관광지의 쓸쓸함과는 달랐다. 낮 동안 산타 조형물과 협곡열차 주위를 오가던 목소리가 잦아들자 산과 철길 사이로 마을 본래의 고요가 돌아왔다. 무엇을 더 보아야 할지 찾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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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여행자에게 이 고요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지막 열차와 돌아갈 길을 먼저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타포레가 문을 열었다고 봉화까지의 거리가 짧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먼 길 끝에, 이제는 하룻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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