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오리지널로 피어난 K드라마 감수성
K드라마 보던 중남미, 이제 직접 재해석까지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면 새로운 기회"
최근 중남미에 부는 한류 열풍은 단순한 인기 확산보다 재해석에 가깝다. 시청자들이 콘텐츠에 담긴 감수성을 직접 다시 만들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 이미지를 현지 제작사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로 옮겨내는 사례까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6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한국 문화콘텐츠에 호감을 느낀다고 답할 만큼 공유하는 저변은 넓다.
지난달 31일 한국콘텐츠진흥원 브라질비즈니스센터가 펴낸 '브라질 콘텐츠 특화보고서'는 이런 흐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짚는다. 대표 사례로 든 작품은 지난 1월 넷플릭스 브라질이 공개한 '내 한국인 남자 친구'다. 한국인 남성과 교제 중이거나 장거리 연락을 이어온 브라질 여성 다섯 명이 서울에서 실제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리얼리티다.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원작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옮긴 게 아니라, 브라질 소니 픽처스 텔레비전 계열 제작사 플로레스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했다.
원작이 없다는 점은 '현지화'와 다른 결을 만든다. 현지화는 해외 콘텐츠의 언어와 배경, 형식을 시장에 맞춰 바꾸는 작업이다. '내 한국인 남자 친구'에는 애초 옮길 대상이 없다. 대신 브라질 시청자가 오랫동안 한국 드라마를 보며 쌓아온 재회와 배려, 기다림 같은 이미지를 제작진이 골라, 자국 연애 리얼리티의 문법 안에서 새로 조립했다. 작품이 그려낸 다정하고 세심한 한국 남자친구라는 이미지 역시 실제 한국 남성의 초상이라기보다, 드라마 장르 관습과 팬덤 해석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표상에 가깝다.
재조립할 수 있던 배경에는 브라질 고유의 서사가 있다. 브라질은 텔레노벨라(중남미의 장기 연속극)를 중심으로 멜로드라마 전통을 다져온 사회다. 텔레노벨라가 긴 방영 기간 여러 인물과 갈등을 다층적으로 엮어왔다면, 한국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짧은 회차 안에서 한두 관계의 감정을 천천히 축적한다. 속도와 결이 다른 두 서사가 만나면서, 시청자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로맨스 경험이 생겨났다. 그렇게 쌓인 경험이 임계점을 넘자, 제작사는 이를 직접 기획 자원으로 끌어다 썼다.
시청 경험에서 기획으로의 전환은, 브라질 시청자를 단순한 수용자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계리 전북대 프랑스아프리카연구소 공동연구원은 "'내 한국인 남자 친구'는 브라질 여성 참가자를 K드라마적 사랑의 이미지를 현실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고 선택하는 능동적 주체로 설정한다"고 짚었다. 참가자들의 선택이 곧 서사의 동력이 되는 구조인 셈이다.
물론 긍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크게 세 가지 위험이 얽혀 있다. 우선 '한국 남자친구' 이미지가 반복될수록 한국 남성은 세대와 계층, 지역 차를 지운 하나의 이상화된 유형으로 굳어진다. 언어와 가족문화, 감정 표현의 차이 역시 갈등 소재로만 다뤄지면 문제가 된다. 두 사회의 실제 문화 차이가 오히려 단순한 그림으로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재회와 로맨스의 낭만적 배경으로 계속 소비되면, 주거와 노동, 경쟁 같은 현실의 결이 서사 바깥으로 밀려난다. 판타지를 지키려는 편집상의 선택이 오히려 이들 대상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눈여겨볼 지점은 여기에 있다. 브라질을 완성된 작품을 파는 시장으로만 볼 게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현지 제작사와 작가, 문화기획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기획 시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콘텐츠 지식재산(IP)과 제작 경험을 제공하면, 브라질이 자국 시청자의 정서와 장르 문법을 반영하는 식이다.
김 연구원은 "현지 제작사와 작가, 문화기획자, 자문 인력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할 때 한국문화는 낭만적 배경이나 관광적 장식에 머물지 않고, 실제 관계와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서사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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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업이 자리 잡으면, 중남미의 한류는 수출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에서 재생산되는 단계로 들어선다. 이 전환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 어떤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던지는지는, 다음 국면에서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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