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치사슬 효율화 잠재력 주목
지급여력·소비자보호 아우른 제도정비 필요
"인프라 마련돼도 사전 준비 없으면 한계"
보험업계가 스테이블코인을 보험료 납부와 보험금 지급 등 보험 가치사슬 전반에 접목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콘트랙트를 결합하면 자금 정산 속도를 높이고 보상 절차를 자동화할 수 있지만 보험업법상 허용되는 결제수단 및 운용자산의 범위와 소비자보호 등을 둘러싼 제도적 기반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교보생명은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EQBR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보험료 수납 및 보험금 지급 기술검증(PoC)을 마쳤다. 디지털 지갑에 보유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보험료를 자동 납부하고 거래 내역을 기존 보험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과정을 구현했으며 보험금을 디지털 지갑으로 지급할 수 있는지도 점검했다.
보험업계가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보험료를 새로운 수단으로 결제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험거래에서는 계약자와 보험사·보험중개사·재보험사 간에 자금이 이동하는데, 중개은행 등 결제망을 거치면 정산이 늦어지거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 블록체인에서 24시간 움직이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자금 이동 시간을 줄이고 거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마트 콘트랙트와 결합할 경우 활용 범위는 더 넓어진다. 항공편 운항·기상정보 등 외부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불러와 항공편이 일정 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강수량이 기준치를 밑도는 등 사전에 설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스마트 콘트랙트가 보험금 지급을 실행한다. 가입자가 별도로 사고를 접수하거나 보험사가 일일이 손해를 조사하지 않아도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보상할 수 있어 보험금 지급 기간과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보상 조건을 수치로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 지수형 보험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보험료 정산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는 실험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글로벌 보험중개사 에이온은 지난 3월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코인베이스와 팍소스가 가입한 보험계약의 보험료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정산하는 PoC를 진행했다. 코인베이스는 이더리움 기반 USDC를, 팍소스는 솔라나 기반 PYUSD를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강윤지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디지털자산 관련 역량을 보험 업무에 적용해 고객의 보험료 납부와 정산 선택지를 넓히려는 취지에서 추진된 것"이라며 "보험료 정산의 속도와 유연성은 물론 자금 이동 간 정합성을 확인해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활용 범위 넓어…제도 정비 과제
보험산업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정산부터 보험금 심사·지급, 자본조달·위험 인수까지 활용될 수 있다. 뒤쪽 단계로 갈수록 보험사의 지급여력 및 소비자 보호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폭넓은 제도 정비가 요구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보험료·보험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주고받는 것에 대한 법제가 명확하지 않다. 보험업법은 보험료와 보험금의 통화를 원화로 한정하지 않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도 외국환도 아니어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 또 보험사가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으로 보유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지, 책임준비금과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을 산출할 때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기준도 미비하다.
보험금 자동 지급을 위한 과제도 남아 있다. 현행 법체계는 보험사고 통지와 손해사정, 보험금 산정 과정에 대해 설명을 전제로 한다. 외부 데이터가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스마트 콘트랙트가 사람의 개입 없이 보험금을 보내는 방식을 보험금 지급 절차로 인정할 수 있는지 별도의 해석이나 입법적 보완 등이 필요하다.
이밖에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화폐와의 가치 연동을 잃는 디페깅 위험과 발행사의 신용위험도 남아 있다. 블록체인에서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은행 예금과 국채 등 블록체인 밖에 보관된 준비자산의 실제 구성과 건전성까지 자동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마트 콘트랙트의 코드 오류와 해킹 등의 위험도 보험금 지급의 신뢰성을 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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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들은 향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관련해 미국 지니어스법이나 일본 자금결제법 등 주요국의 제도화 사례를 모니터링하면서 국내 입법 방향에 대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보험업법상 허용되는 결제 수단 및 운용자산 범위에 대해 감독당국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의 프로그래밍 가능성과 투명성은 보험 가치사슬의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상품을 설계하는 데 잠재력을 제공한다"며 "디지털자산 생태계는 기술과 거버넌스 역량이 결합된 영역인 만큼 사전 준비가 부족한 보험사는 관련 인프라가 마련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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