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인 5만명, 스페인령 세우타로 유입
서부사하라 놓고 모로코와 알제리 갈등
EU 22개국, 스페인 겨냥해 공동성명 서명
伊·핀란드·덴마크 동조…솅겐협정 중단 압박
7월 말 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인 세우타에 이웃한 모로코인 5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유입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프리카 북부에 세우타, 멜릴라 등의 영토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은 다른 국가들과 솅겐 협정으로 하나의 국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일단 스페인 영토에 유입된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는 다른 국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주기적인 대규모 난민 유입이 벌어지곤 했다.
2010년 이후 대규모 난민 사태로 홍역을 치렀던 유럽은 다시 대규모 난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모로코인은 다시 본국으로 귀환하였으며 모로코 군경도 국경 강화에 나서면서 사태는 단기적 사건으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태는 스페인, 유럽연합(EU)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쳐진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것은 모로코가 서부사하라와 관련한 알제리와의 갈등이다. 모로코 남쪽 대서양 연안의 광활한 사막지대는 1975년까지 스페인 식민지였다. 스페인 철수 이후 모로코는 이곳을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반발한 이곳의 원주민 사흐라위인들은 폴리사리오 전선이라는 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해 모로코와 투쟁에 나섰고, 지역 패권을 두고 모로코와 경쟁하고 있는 알제리가 이들을 지원하고 나서면서 서부사하라 문제는 양국 갈등의 원인이 되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2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기존의 중립 정책을 깨고 서부사하라 지역에 대한 자치방안을 공식 지지하고 나섰다. 모코로의 영토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에 대규모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알제리는 격노했고, 스페인과의 우호조약을 정지시켰다.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는 지난달 20일 산체스 총리가 4년 만에 알제리를 방문하면서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모로코로서는 자국의 외교적 우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은 모로코가 스페인을 압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대규모 동원을 통해 국경 붕괴를 조장했다는 분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스페인이 실효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영토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정치적 양보를 요구하겠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가 사실이라면 모로코는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 국경 붕괴에 대해 EU 27개국 가운데 22개국이 스페인을 겨냥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반이민 성향이 강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주도한 성명의 핵심은 "불법 입국이 합법 거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과의 솅겐 협정 중단을 발표했고, 핀란드와 덴마크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솅겐 협정은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의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협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솅겐 협정 중단은 안보 중대 위협이 있을 때만 허용하는 예외 조치"라고 밝히면서 스페인에 대한 압박에 힘을 더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페인령 세우타에 들어왔던 이주민들이 모로코로 돌아가고 있다. 5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리는 이번 사태로 70명 이상이 숨지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유럽의 이민 논쟁이 재점화됐다. 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점점 고립되고 있는 산체스 총리는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영토 세우타에 모로코에서 온 약 5만명의 불법 이민자가 갑자기 유입된 것에 대해 EU 파트너들이 "이기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대응에 나섰지만, 열세에 몰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페인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세우타에 대한 대규모 유입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으며 2021년에도 약 8000명이 유입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스페인 국내 문제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달라진 점은 EU 내부의 분위기다. 반이민 정서가 광범위하게 강화되었고, 선거를 앞둔 각국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파장이 커진 것이다.
모로코로서는 스페인을 압박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반대급부로 EU의 협정 재검토 압박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동안 EU는 모로코에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요구해왔다. 그 대가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는 제공하지 않던 어업협정, 농산물 특혜관세, 재정지원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입된 사람들은 모로코 국민이었다. 다른 나라 불법 이민자를 막아주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 자국민을 대량 송출하는 이민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간주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모로코로서는 EU의 입장 변화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최근 거세지고 있는 국내 청년실업과 지역 격차 문제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사태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는 유럽 내부의 통합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EU를 유지하는 핵심축 가운데 하나는 개방된 국경과 자유로운 이동의 보장이다. 이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유럽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확실히 차단하는 국경이 유지돼야 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스페인에 취한 국경 통제 조치가 임시로 끝날지, 아니면 다른 회원국에도 확산될지가 유럽 통합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도에 그려진 국경선,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뉜 대륙을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확실하게 설정되고 통제된 국경의 존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지역은 분명해 보이는 실선 너머로 복잡다단한 관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 세상의 많은 일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번 사태의 향후 진행 경과를 살펴본다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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