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8년 만에 엔화 방어 나선 속내…미 국채시장 지켜라
日 미국채 매각 시 미국채 장기 금리 ↑
달러 대신 유로 팔아 엔화 매입
엔 캐리 청산 충격도 차단
미국이 일본과 공동으로 엔화 방어에 나선 것은 일본의 미 국채 매각이 미국 장기금리를 추가로 끌어올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 급락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공동 개입의 배경으로 꼽힌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악시오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공동 매입했다. 미국이 일본과 함께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이번 개입은 엔화가 달러당 164엔에 육박하며 198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뒤 이뤄졌다. 미·일 공동 개입 이후 엔화는 달러당 156엔 안팎까지 반등했다. 일본은 앞서 지난 4월과 5월 약 7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투입해 엔화를 매입했지만, 반등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금요일의 공동 외환시장 조치는 무질서한 엔화 움직임에 대응한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추가 공동 개입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일본이 지원을 요청했다고 확인했다. 그는 "일본이 약간의 도움을 원했고 우리는 언제나 일본을 돕는다"고 말했다.
미국채 매도 막아라…유로 팔아 엔화 매입
표면적으로는 동맹국 일본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지만 시장에서는 미국이 자국 국채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개입에 나섰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미 국채 해외 보유국이다. 일본 정부가 엔화 매입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각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은 상승하게 된다.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는 이미 높은 수준이다.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최근 5.2%를 넘어서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규모 재정적자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로 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 미 국채를 매각할 경우, 재정 우려와 Fed 정책 불확실성으로 이미 오르고 있는 미 국채 금리와 시장금리에 추가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악시오스는 투자자들이 막대한 미국 재정적자를 메우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미국 납세자의 이자 부담도 급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이 이번 개입에서 선택한 방식도 미 국채 매도 압력을 줄이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미 재무부를 대신해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달러를 대량으로 팔아 엔화를 사는 대신 엔·유로 환율을 통해 엔화 가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은 Fed의 '외국·국제통화당국 레포 제도(FIMA Repo Facility)'를 활용해 미 국채를 직접 매각하지 않고 이를 담보로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됐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향후 시장 개입 자금을 조달할 때 미 국채를 매각하기보다 FIMA 레포 제도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도 Fed에 이 제도의 규모를 확대하도록 권고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결국 미국이 직접 엔화를 매입하고 일본에는 미 국채 담보대출 통로를 열어주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되 미 국채시장에는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한 셈이다.
엔 캐리 청산·금융불안 확산도 경계
미 재무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엔화 매도세의 속도와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하고, 불안이 다른 시장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화 급락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미국의 개입 배경으로 꼽힌다. 엔화는 일본의 낮은 금리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자금조달 통화로 사용된다.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미국 등 해외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활용해왔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움직이거나 일본은행이 금리를 빠르게 올릴 경우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를 한꺼번에 청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이 대량 매도되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폴 케이비 이스트아시아이콘 대표는 "미국은 엔화의 급격한 매도세가 글로벌 금융 안정을 훼손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동 개입이 엔화 약세 흐름을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환시장 개입은 단기적으로 환율을 급격히 움직일 수 있지만 미·일 금리 차와 일본의 재정 문제 등 구조적 요인이 바뀌지 않으면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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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그린 드비어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은 이를 통화 문제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큰 사안"이라며 "세계 최대 경제국 두 곳의 공동 개입은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수면 아래에서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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