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전력거래소·에너지공대 집적
대한민국 최대 에너지 클러스터 조성
광주 생산기지·나주 지원기지 투트랙
초광역 산업벨트 구축이 핵심 과제

편집자주광주 군공항 일원 약 826만㎡(약 250만평)가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호남 반도체 산업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들도 현장을 찾아 부지 규모와 팹 배치 가능성, 전력·용수 공급 여건, 교통망을 점검하는 등 사업이 구상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대규모 생산공장만 세운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 팹을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할 전력망과 초순수 공급시설, 연구개발 기관, 소재·부품·장비 기업, 숙련된 기술인력, 물류와 정주 여건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그 때문에 광주 군공항 부지와 인접한 나주시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 배후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광주가 반도체 생산공정 전초기지라면 나주는 전력과 연구개발, 전력 기자재,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후방 산업기지가 되는 구조다.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력, 공장보다 기반시설 먼저

반도체 공장은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수천 개의 공정 장비와 공조·냉각·정화시설이 쉼 없이 가동되며 순간적인 전압 변동이나 공급 중단도 생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 첨단 패키징 산업이 성장하면서 팹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연구시설까지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의 투자지역 선택은 넓은 부지나 세제 혜택만이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과 송전망 구축 속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한국전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하는 전력공급 실무협의체가 가동된 것도 이런 이유다.

국내 최고의 에너지 산업기반과 연구 인프라 등을 갖춘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의 야경. 나주시 제공

국내 최고의 에너지 산업기반과 연구 인프라 등을 갖춘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의 야경. 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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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45㎸ 신장성·신광주 송전선로와 반도체 국가산단을 연결해 2029년 말까지 1단계 전력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주의 역할이 부각된다.


빛가람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 본사를 비롯해 전력거래소, 한전KDN, 한전KPS 등 국내 전력산업 핵심 기관이 집적돼 있다. 발전된 전력을 송전·배전하고, 전국의 전력 수급을 관리하며, 전력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발전·송전설비를 유지·보수하는 기관들이 한 생활권에 모여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장에서 나주는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도시가 아니다. 전력망 설계와 계통 운영, 정보통신, 설비 유지관리, 전력 기술 연구와 기업 지원 기능을 연계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에너지산업 집적지다. 한국전력도 광주·나주 혁신도시와 인근 산업단지를 에너지밸리로 묶어 에너지기업을 유치·육성하고 있다.


물론 에너지 기관이 많다고 전력이 저절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주에 전력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는 사실과 실제 반도체 팹에 필요한 전력이 확보됐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한국전력 본사가 인접해 있더라도 대규모 변전소와 송전선로, 전력 안정화 설비가 제때 건설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은 가동할 수 없다. 전력망 구축은 부지 선정 이후 별도로 인허가와 주민 협의, 사업비 확보, 설비 공사를 거쳐야 하는 대규모 기반시설 사업이다.


특히 첫 번째 팹의 가동 목표가 2030년 전후로 설정된다면 전력망 건설은 산단 조성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 통상적인 행정 절차대로 순차 추진할 경우 기업이 요구하는 투자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따라서 나주가 '에너지 수도'라는 상징성을 실제 반도체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소재 자체를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력공급 계획에 나주와 광주를 잇는 송변전망 확충사업을 조기에 반영하고, 산단 조성·팹 건설·전력 공급 일정을 하나의 통합 공정표로 관리해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전력망을 일반 산업단지 기반시설이 아니라 국가 핵심 기반시설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 확보보다 어려운 초순수 공급…별도 산업 육성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만큼 중요한 것이 물이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웨이퍼 표면의 미세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일반 산업용수가 아닌 고도로 정제된 초순수를 사용한다. 문제는 수원 확보가 곧 초순수 공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댐이나 하천에서 원수를 확보하더라도 취수시설과 관로, 정수시설, 초순수 생산설비, 폐수처리 및 재이용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해야 한다.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물속의 이온과 유기물, 미세입자를 제거하는 기술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나주는 영산강 수계와 인접하고 주변 수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실제 반도체 산업용수 공급을 위해서는 취수 가능량과 농업·생활용수 수요, 가뭄기 공급 안정성, 광주 군공항 부지까지의 관로 건설비 등을 구체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특히 장기 가뭄에도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려면 단일 수원에 의존하기보다 복수의 공급망을 마련해야 한다. 원수 공급과 함께 공정 폐수 재이용률을 높이는 순환형 물관리 시스템도 초기 설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나주시가 노안권을 중심으로 산업용수와 초순수 산업 기반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광주 군 공항 부지에 800조 원을 투자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나주시 제공

광주 군 공항 부지에 800조 원을 투자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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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자재 산업, 반도체 소부장으로 확장할 기회

나주가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산업 분야 가운데 하나는 전력기자재다. 반도체 팹에는 변압기와 차단기, 개폐기, 무정전전원장치, 비상 발전기, 전력품질 관리시스템 등 대규모 전력 설비가 필요하다. 생산라인이 늘어날수록 설비 점검과 유지·보수, 교체 수요도 지속해서 발생한다.


나주는 한전과 에너지밸리를 중심으로 전력 기자재 기업과 관련 지원기관을 확보하고 있다. 노안 일반산업단지를 전력 기자재 특화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구상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연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 전력 기자재 산업을 반도체 팹의 요구 수준에 맞게 고도화하는 일이다.


일반 전력 설비와 달리 반도체 공장은 정전 방지는 물론 미세한 전압 변동과 고조파, 순간 전압 강하까지 관리해야 한다. 설비 신뢰성과 실시간 진단, 예지 정비 기술도 필요하다.


따라서 나주의 전력 기자재 기업들이 반도체 기업의 공급망에 진입하려면 제품 인증과 실증, 품질 고도화, 공동 연구개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보다 반도체 기업과 지역 업체를 연결하는 구매·실증 체계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너지공대 인재 양성 토대 구축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분야에서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가 나주의 핵심 자산이다. 한국에너지공대는 에너지 인공지능과 차세대 전력망, 에너지 신소재, 전력전자 및 전력반도체 분야를 주요 연구 영역으로 두고 있다. 전력반도체 분야에서도 소재와 소자, 회로, 시스템을 연결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대와 동신대학교, 나주전력기술교육원이 연구개발 인력과 현장 기술인력을 각각 분담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면 나주는 반도체 공정 인력뿐 아니라 '반도체 인프라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차별화된 교육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에너지 분야 특화 국립 연구중심 대학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전력반도체와  AI, 에너지 신소재, 차세대 전력망 등 미래 핵심기술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나주시 제공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에너지 분야 특화 국립 연구중심 대학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전력반도체와 AI, 에너지 신소재, 차세대 전력망 등 미래 핵심기술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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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변수는 군공항 이전과 시간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관문은 결국 광주 군공항 이전이다.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지정은 사업의 출발점일 뿐 실제 착공을 위해서는 군공항 이전 부지가 확정되고 기존 부지가 적기에 인도돼야 한다. 여기에 사업시행자 지정과 사업성 검토, 산업단지계획 수립·승인, 개발제한구역 해제, 기반시설 공사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와 특별시가 목표로 제시한 2030년 전후 첫 생산시설 가동 일정을 맞추려면 기존의 순차적 행정 절차로는 한계가 있다. 군공항 이전과 산단 조성, 전력·용수 공급, 기업의 팹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통합 로드맵이 필요한 상황이다.


나주 역시 광주 반도체 산단이 확정된 뒤 지원사업을 검토하는 수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력망과 초순수, 연구개발센터, 인재 양성, 기업 유치사업을 반도체 팹 건설 일정에 맞춰 역산해야 한다. 첫 번째 팹이 가동된 이후 산업 기반을 조성하면 핵심 협력기업과 연구기관을 다른 지역에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국가산단 기반시설이 구축되는 향후 3~4년이 나주가 반도체 배후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사실상 결정적 시기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광주와 나주가 함께 완성해야 할 국가 미래 전략이다"며 "광주가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라면 나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에너지 인프라와 연구개발 역량, 산업용수, 전문 인력 양성체계를 바탕으로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배후도시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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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공공기관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국가에너지산업단지, 차세대 전력망 관련 산업 기반을 활용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연구개발 기능을 적극 유치하겠다"며 "에너지와 반도체가 융합하는 글로벌 미래산업 중심도시를 실현하겠다"고 덧붙였다.


호남취재본부 심진석 기자 mour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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