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중심 지배구조 개혁
역발상·이종산업 M&A 통한
자본 회수 통로 다변화 필요

편집자주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가 전례 없는 인수합병(M&A) 초호황기를 맞고 있다. 올해 8월까지만 276조원 이상의 투자금이 글로벌 바이오 M&A 시장에 흘러들어왔지만, 국내 기업이 대상이 된 '빅딜'은 없었다. 세계 시장에서 산업 경쟁력을 점점 인정받고 있는 한국 바이오에는 속이 쓰린 일이다. 파이프라인 개수로는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위에 해당하고 해외 콘퍼런스·전시회에서 잇단 러브콜을 받는 신약 기업들도 많다. 기업공개(IPO)에만 의지하는 자금 조달·투자 회수 시장의 한계는 분명하다. 우리 바이오 기술기업들이 왜 외면받는지, 근본 경쟁력 개선과 더불어 자금 조달 시장에서의 해법은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M&A 찬밥' K바이오]①상반기만 276조 터졌는데 세계 3위 韓은 소외


['M&A 찬밥' K바이오]②데이터·임상·지배구조의 덫에 걸린 한국

['M&A 찬밥' K바이오]③"파이프라인 정리하고 핵심역량·단일기술에 집중해야"


한국 바이오 업계의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들은 연구개발 체질 개선과 지배구조 개혁·역발상 M&A 모델 도입 등의 해법을 제시한다. 관건은 산만한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가능하겠느냐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3일 "회사의 핵심 역량이 집중된 단일 기술에 올인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자산은 과감히 매각하거나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벤처캐피털 차원에서도 사모펀드를 활용해 유망 벤처들을 M&A하고 파이프라인 가치를 극대화해 글로벌 대기업에 매각하는 주도적 엑시트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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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창업자 1인 중심 체제를 벗어나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바이오 벤처는 창업자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며 과도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비중이 높아 객관적인 기업가치 평가와 매각 시점 결정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황 대표는 "기업 초기부터 창업자나 대주주의 이익이 아닌 기업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투명한 이사회 구성이 필수적"이라며 "정상적인 이사회를 운영하는 상장사에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이사회 진행 과정을 의무적으로 녹화해 보관토록 하는 등의 제도적 유인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역시 "대표이사의 독단적 운영을 시스템으로 제어하고 이사회와 감사가 투명하게 작동해야 외국 자본 유입과 시장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공개(IPO)에 극도로 편중된, 기형적인 국내 자본 회수 시장의 구조도 기업들의 역량을 분산시키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털의 투자금 회수(엑시트) 비중 중 M&A가 차지하는 비율은 금액 기준 4.2%에 불과했으며, IPO와 장외매각 등 상장 시장 의존도는 90%를 넘었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가 집계한 미국 시장의 M&A 회수 비중이 평균 45%를 웃돌고, 지난해 미국 바이오 벤처캐피털 등 투자자가 M&A로 회수한 자금만 230억달러(약 33조1200억원)에 달했던 점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우리 기업들은 증시에만 몰린 자금 회수 통로 탓에 IPO와 회계 기준으로 평가하는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소모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M&A 시장을 통해 자금 회수 시장이 입체화되면 바이오업계 전반의 역동성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배경이다.

['M&A 찬밥' K바이오]③"파이프라인 정리하고 핵심역량·단일기술에 집중해야" 원본보기 아이콘

꽉 막힌 자본 순환을 풀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기존 틀을 깨는 '역발상 M&A' 모델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전통 제약사가 벤처를 인수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뚜렷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이 펀딩 자본을 바탕으로 전통 제약사를 거꾸로 인수하는 모델을 고민해볼 시점"이라며 "연 매출 수천억 원 규모의 전통 제약사가 가진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과 생산 인프라를 바이오 벤처가 흡수함으로써,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상업화의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 산업 자본의 유입 역시 긍정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제과 기업 오리온이 5485억원을 투입해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문 기업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 25.7%를 인수한 거래를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누적 8조원대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를 냈음에도 후기 임상 등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고심해왔다. 황 대표는" 전통 산업에서 풍부한 자본을 축적한 대기업이 유망 벤처를 인수하는 것은 자본 경색을 풀고 M&A를 활성화하는 측면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모범적인 거래 구조"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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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과 마중물 역할도 요구된다. 이 부회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초기 스타트업 육성 펀드와 함께 임상 2상 이상을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대규모 펀드 조성이 시급하다"며 "이종 산업 간 M&A나 대기업의 벤처 인수 거래 성사 시 실질적인 법인세 감면과 상속세 문제 해결 등 세제 혜택을 부여해 침체된 M&A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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