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한국 증시 급락 잇따라 보도
"투자자들 절망·좌절감 빠르게 번져"
청년층, 자산 격차 속 레버리지 의존 심화
"카지노화된 시장…개미 끌어내기 난망"
사상 최초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동반 발동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외신들도 연일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신들은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와 구조적 불균형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한편, 현 증시를 '거대한 카지노'에 비유했다.
코스피가 전장보다 360.42p(5.98%) 내린 5663.24로 마감한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코스피 지수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연이틀 서킷브레이커… 코스피 초유의 '패닉'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한국 증시, 개인 투자자 매도 폭풍 속 이틀 만에 16% 폭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코스피 지수가 이번 달 들어 사상 최대 수준인 약 33% 하락을 기록했다"며 "한국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절망과 좌절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5.98% 하락한 5663.24에 장을 마감했으며 코스닥 지수 역시 6.12% 내린 662.68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 코스피(-10.84%)와 코스닥(-7.72%)의 대폭락에 이은 이틀 연속 폭락 장세다. 이로써 코스피는 지난달 19일 기록했던 전고점(9385.59) 대비 약 40% 폭락했고, 코스닥 지수 역시 지난 4월27일 기록한 올해 장중 고점(1229.42) 대비 46% 급락하며 반토막 수준으로 밀려났다.
이 같은 급락 여파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는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의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역대 15번째(올해 9번째), 코스닥 시장은 역대 14번째(올해 4번째)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미국 신용등급 하락 사태 당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걸린 바 있으나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양 시장에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동반 발동된 것은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최초다. 코스피 기준 통산 15차례의 서킷브레이커 중 무려 9차례가 올해 집중될 만큼, 최근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사상 최악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거품론·SK하이닉스 실적 변수…낙관론 급속 붕괴
블룸버그는 "올해 초 한국 증시를 세계 최고 수준의 상승률로 이끌었던 강력한 낙관론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짚었다. 시장을 지탱하던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과연 실질적인 수익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의 회의론이 고개를 든 데다, 중국 경쟁 기업들의 급격한 기술 추격에 대한 불안감이 투자심리를 급냉각시켰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 발표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SK하이닉스가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컨퍼런스콜에서 주주환원 정책의 구체화나 장기 공급계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실망감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급락 충격은 개인 투자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블룸버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인용해 "결혼 자금을 주식시장에 올인했다가 손실률이 40%에 육박하게 된 사례부터, 이번 주 들어 6억원이 넘던 평가이익이 순식간에 7억원의 손실로 돌아서며 좌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부동산이 부른 레버리지 잔혹사"… 3억 날린 청년 비명
한국 증시의 기형적인 폭락세를 바라보는 외신들은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부동산 가격 폭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한 외신은 군 복무 중 모은 2000만원을 레버리지 투자로 한때 3억원까지 불렸으나, 최근의 변동 장세 속에서 원금과 수익금을 모두 날리고 3억원의 손실을 안게 된 이승호씨(24)의 사연을 조명했다.
이씨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같은 전통적인 자산을 도저히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꼈고, 주식 투자만이 유일한 계층 이동의 구원책이라 믿었다"며 "거대한 상실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압박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외신들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가구당 연봉의 약 14년 치에 달할 정도로 치솟은 점을 짚으며, 근로소득만으로는 계층 이동이 불가능해진 한국의 청년층이 고위험·고레버리지 투자를 자산 격차를 줄일 '마지막 사다리'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했다.
"한국 증시는 카지노, 개미 끌어내기 힘들 것"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최근 한국 증시의 기형적인 과열 현상을 '카지노'에 빗대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며 한국 증시를 끌어올린 주동력이 AI 열풍이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우수한 실적에 투자하려는 유인 자체는 타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의 방식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을 '충동적인 도박꾼(impulsive gamblers)'에 비유했다. 올해 들어서만 한국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ETF에 쏟아부은 자금이 무려 100억달러(약 14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개별 기업 주가의 변동 폭을 수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가장 위험한 폭탄으로 꼽았다. 이러한 초고위험 상품의 대중화가 개별 투자자의 파산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증시 전체의 변동성을 왜곡하고 폭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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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는 "한국 투자자들은 이미 이 매혹적이고 위험천만한 상품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며 "금융당국이 뒤늦게 규제의 칼을 빼 들며 후회하더라도, 이미 '카지노' 판에 뛰어든 한국 투자자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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