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사러 한국 왔다" 몰리는 관광객에 통역사까지 등장…'필수 쇼핑 코스' 된 K약국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대형 약국.
중국인 관광객 리신위씨는 스마트폰에 저장해온 제품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진통제와 피부 진정제를 찾았다.
약사 이모씨는 "의도적으로 중국인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광장시장을 찾은 관광객이 약국까지 방문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제품 설명과 구매 안내를 위한 외국어 응대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약국 소비, 올해 상반기만 1420억
통역사 두고 해외 SNS 활용 '맞춤 서비스'
관광 활성화 속 복약지도 부실·악용 우려
"이거 한국에서 꼭 사 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대형 약국. 중국인 관광객 리신위씨(23)는 스마트폰에 저장해온 제품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진통제와 피부 진정제를 찾았다. 직원은 유창한 중국어로 다른 성분이 함유된 제품도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태국에서 온 차이사와(37)·시리폰(32) 부부는 "여행하다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미리 준비하려고 들렀다"며 "한국의 약국에는 같은 효능이어도 약 종류도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국내 약국이 새로운 '쇼핑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약국들은 통역 직원을 배치하고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에 나서는 등 관광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언어 장벽에 따른 복약지도 부실과 의약품 대량 구매·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31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약국 소비액은 2021년 76억2660만원에서 지난해 1255억6000만원으로 17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난해 소비액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1420억8600만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소비액을 넘어섰다.
국내 약국이 호응을 얻는 배경으로는 한국 의약품에 대한 신뢰와 다양한 제품군, 편리한 구매 환경이 꼽힌다. K뷰티·건강 제품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특정 의약품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고 한 약국에서 피부·건강 제품까지 살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분석된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약국들의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유학생이나 외국어 전공 대학생을 상시 채용해 통역 인력으로 활용한다. 약사들도 제품 설명에 필요한 짧은 외국어 표현을 익히고 있다.
명동의 또 다른 대형 약국은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대표 제품과 약국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를 입구에 비치했다. 입구 근처에는 환전기 1대와 외국인 부가가치세 환급 기계 2대도 설치돼 있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무료 피부 진단 서비스에는 전담 직원을 배치했는데,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통역 직원 5명이 상주한다. 지난 1월부터는 짧은 영상 기반의 중국 샤오홍슈 계정 운영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SNS 유입 고객을 겨냥해 마케팅 담당 직원까지 뒀다.
종로구 광장시장 인근의 한 약국은 대형 브랜드 약국이 아닌데도 지난해 가을 개업과 동시에 중국어 통역 직원을 채용했다. 약사 이모씨(30)는 "의도적으로 중국인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광장시장을 찾은 관광객이 약국까지 방문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제품 설명과 구매 안내를 위한 외국어 응대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약국들도 적극적이다. 이 일대 약국 4곳은 간판이나 유리창에 중국어 간체자로 '약' 또는 '약국'을 크게 써 붙였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대형약국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어·일본어·영어 통역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환전기와 외국인 부가가치세 환급 기계가 비치돼 있다. 오지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다만 외국인의 약국 이용이 급증하면서 의약품 안전 관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일반의약품이라도 복용 중인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이나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언어 장벽으로 인해 충분한 복약 지도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의약품 성분이 범죄에 악용된 사례도 있다. 에페드린 등이 함유된 일부 감기약은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의 전구물질로 사용될 수 있어 해외에선 판매·유통을 엄격히 관리한다. 경남경찰청 마약수사계장으로 마약류 사범 박왕열을 수사했던 김대규 한국마약예방교육연구소장은 "국내에서 감기약을 대량 구매해 필로폰을 제조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며 "외국인의 감기약 대량 구매도 원료 추출, 해외 반출 등에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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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구매에 따른 부작용도 거론된다. 김선정 순천향대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는 "일반의약품도 과다 복용하거나 여러 약을 함께 먹으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만큼 정확한 복약 지도와 의약품 오남용 예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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