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진, 70년간 2700여명 추적 분석
"성인기 경제적 압박,
중년 이후 인지기능 저하와 연관"

카드값에 월세, 공과금까지. 여기에 부모님 생신이나 경조사라도 겹치는 달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고, 당장 이번 달을 버티는 게 급해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어쩔 수 없는 마음고생 정도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가 단지 기분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뒤 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근 영국 연구진은 성인기의 경제적 어려움이 오래 지속될수록 중년 이후 기억력과 사고 능력이 더 빨리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이노베이션 인 에이징(Innovation in Aging)에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건강도 나쁘다"는 상관관계를 넘어 오랜 기간 이어진 경제적 압박이 실제 뇌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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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2700여명 추적…"경제적 압박, 뇌에 흔적 남겨"

연구진은 1946년 3월 영국에서 태어난 2700여명의 건강과 생활환경을 70년간 추적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현재 모두 80세로, 연구진은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소득 수준과 생활환경, 건강 상태, 인지 기능 변화를 장기간 관찰했습니다.


분석 결과 2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소득이 하위 20%에 속했던 사람들은 중년에 실시한 인지 기능 검사와 기억력 검사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또 30대 후반과 40대에 생활비나 공과금 등을 제때 내기 어려웠다고 두 차례 이상 답한 사람들도 이후 인지 능력이 더 낮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교육 수준, 아동기 인지 능력 차이를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에도 같은 결과가 유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성인이 된 이후 오랜 기간 누적된 경제적 스트레스 자체가 뇌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노년기에 들어선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단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완만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건강 상태가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중년 무렵 상당한 인지 기능 저하가 진행돼 이후 감소 폭이 작게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습니다.

"돈 걱정에 뇌 인지 자원 소모돼"

공동 저자인 자크 웰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정량사회학자는 경제적 어려움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하나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제적 스트레스는 만성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고, 끊임없이 돈 걱정을 하는 과정에서 뇌의 인지 자원이 소모됩니다. 여기에 흡연이나 음주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나타나기 쉬운 생활 습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뇌 변화가 참가자들의 50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인지 기능 저하 때문에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경제적 압박이 뇌 건강 악화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봤습니다. 웰스 연구원은 "경제적 부담은 뇌 속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며 "이번 연구는 재정적 압박과 뇌 건강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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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평등, 몸과 뇌에 흔적 남길 수도"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를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미시간대의 알린 제로니머스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던 사람들 가운데 심혈관질환이나 암 등으로 더 일찍 사망한 사례가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또 그는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핵심은 돈 자체보다 사회적 불평등이 사람의 몸과 뇌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손상시킨다는 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요즘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면서 계좌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운 분들도 많을 겁니다.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는 시장 앞에서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떠올려볼 만한 말이 있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만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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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는 장기간 이어지는 경제적 압박이 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가의 방향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안에 매몰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차트보다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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