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 공포에 졸업까지 4년 6개월 걸려
대학생들 "학생 신분이 유일한 방패막이"
첫 직장이 평생 좌우…취업 준비 장기화

"취업이 될 때까지 최대한 유예하려고요."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이지원씨(23)는 두 학기째 졸업을 미루고 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그는 학교 고시반과 도서관을 이용하며 학생 신분을 유지 중이다. 그는 "주변에서 졸업했는데 요즘 뭐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8학기를 다 채우고 유예 중이라고 하면 그러려니 넘어간다"며 "졸업유예가 취업준비생에게는 일종의 방패막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미래관 학생라운지. 방학이지만 자격증과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대형 테이블 주변 열댓명의 학생은 저마다의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두꺼운 책 위에서 바쁘게 펜대를 움직이는 학생부터 강의를 듣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 학생의 테이블에는 세무사 시험 대비 학원 유인물이 쌓여 있었다.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미래관 학생라운지에서 한 학생이 독서대 위에 두꺼운 책을 올려두고 펜대를 움직이고 있다. 박재현 기자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미래관 학생라운지에서 한 학생이 독서대 위에 두꺼운 책을 올려두고 펜대를 움직이고 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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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요건을 다 채우고도 대학교를 떠나지 않는 졸업유예생이 늘고 있다.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4년 6개월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과 수시 채용 선호 현상이 짙어진 취업시장에서 공백기를 지우려는 방어 전략으로 풀이된다.

31일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제와 전문대를 포함한 청년 대졸자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4년 5.7개월로, 2007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뒤 최장 기록을 세웠다. 전년과 비교해도 1.3개월 늘었다.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한 휴학이 늘어난 점 등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휴학 경험자 비율도 48.9%로 역대 최고치로 집계됐다.


청년들이 졸업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는 공백기에 대한 공포다. 대학가에선 적어도 1년은 유예하는 게 대세처럼 자리잡았다. 채용플랫폼 캐치가 Z세대(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구직자 3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 체감 난이도 조사에서 구직자 67%가 취업 전 허용 가능한 공백기를 1년 이내라고 답했다. 이어 2년(23%), 3년(7%), 4년 이상(3%) 등의 순이었다.


대구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심모씨(25)는 "취업시장이 워낙 힘들다 보니 공백기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불이익을 받을 거란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서울시립대생 김가희씨(25)는 "시험에 떨어져도 학생 신분이어야 다음 선택지라도 모색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학사모보다 학생증"…학교 못 떠나는 '졸업유예족' 원본보기 아이콘

학교 밖으로 나간 이들의 현실도 팍팍하다. 청년층 부가조사에서 최종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124만3000명 중 1년 이상 미취업 상태인 비중은 48.6%로 조사됐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3년 이상 미취업 청년도 19.4%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취업 청년 4명 중 1명(25.3%)은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한양대생 장제성씨(30)는 졸업을 앞두고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박봉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버티지 못하고 수개월 만에 퇴사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며 졸업을 거듭 미뤘다. 장씨는 "한 번 사회에 나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괜히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며 "학생 신분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다시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장제성씨(30)가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취업시험을 준비하며 노트에 다짐을 적었다. 장씨는 대학 입학 7년째로 졸업 요건을 모두 갖췄지만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했다. 박호수 기자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장제성씨(30)가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취업시험을 준비하며 노트에 다짐을 적었다. 장씨는 대학 입학 7년째로 졸업 요건을 모두 갖췄지만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했다. 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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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한다.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에 진입할 경우 대기업 등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졸업 유예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취업을 늦추더라도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생애주기 전체로 봤을 때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수시채용 확대, 경력직 선호 현상,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인한 저숙련 노동 대체까지 맞물려 청년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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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졸업장을 빨리 받는 것이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취업이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하는 것을 더 위험하게 인식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학생 신분이 일종의 안전지대가 된 것은 고용시장이 그만큼 위축됐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졸업유예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시장 구조가 선택지를 좁힌 결과"라고 덧붙였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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