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의 '희권영애 이야기(주단잠바)'. 제주4·3의 탄압 속에서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시간을 기록한 작업이다. 제주갤러리
박정근 개인전 '404: Page Not Found'
어떤 역사는 너무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열리지 않는다. 박정근의 개인전 '404: Page Not Found'는 제주4·3을 하나의 사건 설명이나 참혹한 이미지로 환원하지 않고, 생존자와 유족의 얼굴, 장소와 사물, 바다와 나무에 남은 흔적으로 더듬는다. 제목은 웹에서 요청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을 때 뜨는 오류 메시지에서 왔다. 그러나 전시는 '없는 페이지'를 말하기보다, 쉽게 찾았다고 말할 수 없는 역사 앞에서 다시 읽고 듣는 태도를 요구한다. 사진과 영상은 과거를 증명하는 기록물이면서도, 끝내 이미지 안에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을 드러내는 매체가 된다.
박정근의 '바다, 엇갈림'. 제주에서 부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로 이어진 밀항의 경로를 따라, 생존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건너야 했던 바다의 기억을 담았다. 제주갤러리
원본보기 아이콘'사소한 위로_오태경'은 제주4·3과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고, '희권과 영애 이야기'는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부부가 된 두 사람이 혹독한 세월을 통과한 시간을 기록한다. '할머니,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는 생존자들의 초상을 통해 폭력과 침묵 뒤에도 이어지는 일상의 얼굴을 바라본다. 제주에서 부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로 이어진 밀항의 바다, 평범한 마을 풍경 속 '세상에 없는 나무'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는 4·3의 페이지다. 8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제주갤러리.
성서 개인전 'Frozenism: Frozen Legacy ? 얼어붙은 시간의 유산'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지만, 성서는 그 시간을 다시 물질로 얼린다. 성서의 개인전 'Frozenism: Frozen Legacy ? 얼어붙은 시간의 유산'은 사진 이미지를 레진, 아크릴, 에폭시 같은 투명한 물질과 결합해 하나의 조각적 구조로 만든다. 작가가 2010년부터 전개해온 'Frozenism'은 사진을 평면 기록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응결된 물질로 바라보는 개념예술 프레임워크다. 이미지는 투명한 층 안에 봉인되고, 관람자는 사진을 보는 대신 시간의 단면을 마주한다.
성서의 'Frozenism: Frozen Legacy 얼어붙은 시간의 유산' 연작. 제1차 세계대전부터 9·11 테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집단기억을 바꾼 사건들을 사진과 투명한 물질이 결합한 ‘얼어붙은 시간’으로 재구성했다. 칼리파갤러리
원본보기 아이콘전시의 중심에는 제1차 세계대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9·11 테러 등 집단기억을 바꾼 사건들이 놓인다. 성서는 사건의 장면을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에 남긴 시간의 흔적을 얼어붙은 이미지로 제시한다. 보존, 정지, 소멸, 변형이라는 네 가지 상태는 기억이 고정되는 동시에 다시 다른 의미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8월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칼리파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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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용 초대전 'TRANCE'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운 드로잉이 밀려온다. 하인용의 초대전 'TRANCE'는 종이 위에 반복적으로 번지는 선과 형상, 세라믹과 회화, 설치가 뒤엉킨 의례적 공간이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생명체, 신화적 존재, 해부도처럼 보이는 형상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닫히지 않는다. 괴물 같고, 외계 생명체 같고,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전시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원초적 감각과 존재를 향한 불안을 물질 위에 새긴다.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드로잉 사이에는 세라믹 기물과 부조적 회화가 놓인다. 둥근 항아리 형태의 표면에는 촘촘한 선과 문양이 새겨지고, 검은색과 금빛, 청색이 감도는 회화는 드로잉 속 형상과 겹쳐 하나의 낯선 풍경을 만든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직접 파괴하고 다시 재생산하는 퍼포먼스와 영상도 함께 선보이며, 완성된 결과보다 생성과 소멸, 재구성의 시간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도 강요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시는 해석보다 먼저 몸의 반응을 요구한다. 8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삼일로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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