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 산재 절반 건설업 집중
폭염 권고에도 휴식 기준 제각각
공기 밀리면 시공사 협력사 부담

"장마라고 내내 일 못했는데 우리는 땅 파서 먹고사냐는 말이여!"


지난 27일 오후 1시께 서울의 한 공사현장. 건설 노동자 홍모씨(61)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덜댔다. 이날 서울의 최고 체감온도는 34도. 정부 지침에 따라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해야만 하는 날씨다. 달궈진 철근과 콘크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열에 건설장비의 가동 열기까지 겹치면서 현장은 찜통이었다. 그런데도 홍씨는 "더워도 일을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체감온도가 34도를 넘어선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공사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 건설 노동자가 무더위 속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다. 박호수 기자

체감온도가 34도를 넘어선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공사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 건설 노동자가 무더위 속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다. 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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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건설현장의 작업 중지 기준이 강화됐지만 정작 현장에선 공사기간과 비용 부담,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 손실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작업 중단에 따른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지원 제도 역시 까다로운 요건 탓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2025년 폭염으로 발생한 온열질환 산업재해자는 228명, 건설업 종사자가 106명(46.5%)으로 가장 많았다. 재해자 수도 2021년 25명에서 지난해 71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노동부는 올해 5월 폭염 단계별 작업 중지 기준을 세분화해 제시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해야 한다. 35도를 넘어가면 오후 2~5시 옥외작업 중지, 38도 이상이면 긴급작업을 제외한 모든 옥외작업 중지를 각각 권고한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는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대형 종합건설사의 한 안전관리 관계자는 "에어컨을 켠 덤프트럭 기사와 야외 작업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작업 위치마다 복사열과 습도가 달라 측정값도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현장은 복사열 등 영향으로 기상청 발표보다 체감온도가 평균 6도 정도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작업환경을 반영할 통일된 측정체계도 없이 공사를 중단하거나 쉬라는 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짚었다.


"폭염에 작업 멈추면 누가 일해주나"…속타는 건설현장 원본보기 아이콘

서울 시내 공사 현장 여러 곳을 찾아보니 휴식시간은 제각각 적용되고 있었다. 일부 소규모 공사장에는 온도계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서울 중구의 한 현장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국적 노동자는 "날이 너무 더우면 1시간 일하고 10분 정도 쉬는 식으로 눈치껏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을 멈추기도 쉽지 않다. 정해진 공사비와 공기에 맞춰 공사를 끝내는 도급계약이 일반적인 데다 작업을 멈춰도 타워크레인 등 장비 임대료와 현장 유지비는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타설 등 중간에 작업을 멈추기 어려운 공정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품질과 안전 사이에서 난감하다"며 "밀린 공기를 맞추려 야간작업까지 돌리는 악순환도 생긴다"고 했다.


작업 중단에 따른 일용직 노동자의 소득 보전 제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기상 여건으로 작업이 중단되면 하루 최대 4시간의 생활임금을 보전하는 '건설근로자 안심수당'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시 발주 5000만원 이상 공공 공사장의 내국인 일용직 가운데 월 8일 이상 근무자 등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조건을 충족하는 노동자는 전체 7%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연간 2000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지난해 수령자는 2명, 올해는 아직 지원받은 노동자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장 일용직의 고용 특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부분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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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폭염 작업 중지 기준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설계하는 동시에 작업 중단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모든 현장에 한꺼번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공공 공사부터 작업 중지에 따른 부담을 발주자가 선제적으로 떠안고 효과를 확인한 뒤 민간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지자체 안심수당도 지급 요건을 완화해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소득 보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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