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경쟁력, 제3의 시간' 저자
하리카이 유카 작가 인터뷰
15년 넘게 현지 생활 덴마크 전문가
"덴마크에서 정부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하고 의견 대립은 어디까지나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해 최종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회적 기대다. 파업은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기보다는, 단체교섭 과정의 정당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덴마크 문화 연구가인 하리카이 유카는 1일 아시아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노동조합과 고용주가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질 순 있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장기적인 파트너라는 사실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일본 출신 하리카이 작가는 와세다 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에서 덴마크 노동시장 정책인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모델'을 연구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말 덴마크인 남편과 결혼해 덴마크로 이주해 일하고 생활하면서 15년 넘게 덴마크에 관한 현지 정보를 전달해왔다. 최근 한국어 번역으로 출간된 '4시 퇴근, 성과 두 배, 덴마크의 경쟁력 제3의 시간'을 포함해 '덴마크인들은 회의보다 3분간의 대화를 더 소중히 여기는가', '덴마크 휴식 철학' 등을 집필했다. 400편이 넘는 기사를 투고하고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다수에 출연했다.
하리카이 작가는 "노사 모두 장기적인 대립이나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기보다는 이미 확립된 규칙과 협상을 통해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공감대를 공유한다"면서 "임금, 근로시간, 기타 수많은 고용 조건은 법률이 아닌 협약을 통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하리카이 작가는 "엄청난 이익을 내는 기업이더라도 그 이익이 곧바로 사원들의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임금은 대부분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수익성이 높은 기업이라도 독단적으로 봉급을 대폭 인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신 기업들은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이익의 일부는 연구개발(R&D)에 재투자되고, 일부는 시설 투자에 활용되며 일부는 주주들에게 배당되고 또 일부는 직원들의 보상 및 근로 조건 개선에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상사와 직원 간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덴마크의 직장은 비교적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직원들이 1대1 면담이나 평소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고민이나 요구사항을 상사에게 직접 이야기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면서 "상사와의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직원들은 직장 내 노조 대표자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솔직한 소통과 제도적 지원의 결합은 의견 불일치가 심각한 노사 분쟁으로 심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재 역할을 해준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에서는 노조를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별, 직종별로 가입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직장을 옮기더라도 노조를 탈퇴할 필요가 없다. '휴가 수당(Holiday pay)'제도를 통해 이직하더라도 이미 적립된 휴가 수당은 사라지지 않으며 퇴직 연금 역시 마찬가지로 이전이 가능하다.
◆비정규직도 언제든 정규직으로 전환…기회는 어디에나 존재= 덴마크 사람들은 평균 7번 이상 직장을 옮긴다. 일본·한국과 달리 한 회사에서 평생을 일한다는 기대감 자체가 없다. 이직은 직장 생활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리카이 작가는 "누군가 일자리를 잃더라도 덴마크는 실업 수당과 사회 보장 제도를 통해 견고한 안전망을 제공한다"면서 "동시에 덴마크 기업들은 경력직 채용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주가 직원들을 비교적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만큼, 역으로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데도 한층 적극적이고 열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이직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곤 한다"면서 "언제든 다른 곳에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없다는 점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하리카이 작가는 "예를 들어 육아 등을 이유로 일시적으로 파트타임 근무를 하더라도 고용 형태 때문에 사회적 낙인이 찍히지 않으며 언제든 다시 풀타임(Full time) 근무로 복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근무시간을 줄였다가 이후 풀타임으로 복귀해 관리직 위치까지 승진한 여성들을 여러 명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직이 완벽하게 풀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전히 괜찮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회사를 그만둬도 어떻게든 잘 살아갈 수 있다'라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확신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커리어를 바꾸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주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오후 4시에 퇴근해도 성과가 나는 이유= 하리카이 작가는 "오후 4시 퇴근은 확실히 매우 빨라 보이고, 일본 사람들도 이 사실에 많이 놀라곤 한다"면서 "덴마크의 노동시간 단축은 단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다기보다는 노동운동,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 확대, 공공 보육 시설 확충 등 여러 발전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서히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1960년대부터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 단체교섭을 통해 근로시간이 단계적으로 단축되기 시작했다"면서 "맞벌이 가구가 보편화됨에 따라 덴마크는 남성이 장시간 일하고 여성이 집에서 머무는 사회에서 남녀 모두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가정의 책임도 함께 나누는 사회로 차츰 변화해나갔다"고 했다.
덴마크 통계청에 따르면 덴마크 근로자 1인당 연간 노동 시간은 1966년 약 1960시간이었으나 2023년 1370시간으로 꾸준히 줄어왔다. 한국 연간 노동시간은 1800시간이 넘는다. 그럼에도 덴마크는 유럽에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여성과 남성의 고용 비율도 동등한 수준이다.
하리카이 작가는 제3의 시간이라고 명명한,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충전해서 일하는 데 사용해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봤다. 일과 삶은 서로를 긍정적으로 보완하는 상호 보완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 시간 퇴근에 자신의 삶에서 안정감을 가져야 다음 날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덴마크 사람들은 오후 4시에 퇴근하기 위해 업무 시간은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건강을 위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쓰는 일도 흔하다.
하리카이 작가는 "고용주들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출근하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가치를 진심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고용주들은 직원들의 건강과 웰빙(Well being)을 매우 중시하며, 수 시간 동안 계속 앉아만 있는 대신 온종일 자세를 바꿔가며 일하도록 권장한다"고 말했다.
◆리더는 지시하지 않고 조력자 역할= 하리카이 작가는 "덴마크도 과거에는 유럽의 다른 많은 국가에 존재했던 위계 질서적인 관계가 그대로 존재했다"면서 "오늘날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는 여러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서히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는 노동운동, 농민들의 협동조합 운동, 복지국가의 발전, 교육 개혁,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그리고 경영 철학의 변화 등이 포함된다"면서 "노동운동은 노동자와 고용주가 단순히 상사와 하급자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위치의 협상 파트너여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덴마크 조직은 '참여형 리더십'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관리자가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직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성공을 돕는 역할을 하도록 정의한 것이다. 하리카이 작가는 "덴마크 기업에서는 관리자는 직위 때문에 다른 사람들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대신 좋은 관리자란 올바른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들을 지원하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조력자(Facilitator)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말해 리더십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좋은 조력자가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어릴 때부터 덴마크 사람들은 '좋은 리더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남을 지원하며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란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 형성은 어린 시절의 교육 방식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고 하리카이 작가는 전했다. 그는 "덴마크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표현하고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키우도록 장려받는다"며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권위자로 여겨지지 않으며 대신 아이들을 지원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며 각 아이가 자신감과 독립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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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차원에서도 덴마크 대기업들은 관리자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정식 리더십 교육을 제공한다. 하리카이 작가는 "노보 노디스크는 리더십 개별과 경영진 교육 프로그램을 매우 중시한다"면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리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리더가 어떻게 직원과 조직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깊이 탐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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