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할 수 없어도 계속 점검"…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지키는 법
아소모 세계유산센터장 "종묘 개발, 영향평가·절차 따라야"
사도광산엔 "위원국 합의 이행 점검"…"의도적 유산 파괴는 전쟁범죄"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은 세계유산위원회에 특정 국가의 행동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대신 각국이 등재 신청과 함께 스스로 수용한 약속, 위원회의 합의와 정기적인 점검, 세계유산영향평가와 공동체 참여를 유산을 지키는 장치로 제시했다. 일본 사도광산의 역사 해석부터 종묘 주변 개발, 전쟁으로 파괴된 팀북투 복원까지 서로 다른 현안을 관통한 답은 '절차와 협력'이었다.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이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의 라운드 인터뷰에서 세계유산 보존과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24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의 라운드 인터뷰는 예정 시각보다 늦게 시작됐다.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길어져 뒤늦게 취재진 앞에 선 아소모 센터장은 먼저 양해를 구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문답에서 그는 사도광산과 종묘, 분쟁지역 유산을 차례로 언급하면서도 세계유산 체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 안에 자리한 많은 세계유산이 종묘와 같은 개발 압력에 직면해 있다"며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제도를 갖추고, 주변 개발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전문가, 시민 등 이해관계자 간 협의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다만 그는 "대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진 절차와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점"이라며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소모 센터장은 종묘를 "한국과 한국 문화, 한국인의 역사 자체"라고 평가했다. 그는 "10년이나 20년 뒤 후손들이 '예전에는 종묘라는 사원이 있었는데 개발로 사라졌다'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종묘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8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 등 세운지구 일대 주민들이 국가유산청의 시뮬레이션 실증 촬영 불허와 관련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2026.1.8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어 국가유산청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모인 기관"이라며 "국가유산청이 내놓는 조언과 판단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유산센터는 종묘 보존과 주변 개발 문제를 두고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 일본 사도광산에 대해서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의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소모 센터장은 "세계유산위원회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작동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결정을 강제할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가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21개 위원국이 내리는 결정을 따르겠다는 자발적인 의지를 나타내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당사국이 보존상태 보고서를 제출하면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가 결정문 이행 여부와 유산의 보존 상태를 검토하고, 이를 다시 세계유산위원회가 판단하는 방식으로 관리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관련 결정문을 자국의 노력을 인정한 결과로 해석한 데 대해서는 "결정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위원국의 합의로 채택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모두 중요한 파트너"라며 "유네스코와 세계유산센터는 양국 간 대화와 협력을 계속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과 분쟁으로 파괴되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한층 단호한 입장을 내놨다. 말리 팀북투의 문화유산 복원을 이끈 경험이 있는 아소모 센터장은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전쟁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유산도 1∼2초 만에 파괴될 수 있지만, 다시 복원하려면 수십 년이나 수세기가 걸릴 수 있다"며 "유산이 파괴되는 것은 건물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이를 돌봐온 사람과 공동체의 역사, 정체성이 함께 훼손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서는 분쟁 발생 이후의 복원보다 사전 예방과 대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유산의 위치와 상태를 미리 조사·기록하고, 위기 상황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보존·복원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이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의 라운드 인터뷰에서 세계유산 보존과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원본보기 아이콘복원 과정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북투에서는 외부 공사업자를 불러 복원한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지켜온 공동체가 직접 복원하도록 했다"며 "이라크 모술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복원은 건물을 다시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공동체가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선언'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세계유산이 직면한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아소모 센터장은 "부산선언은 이번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라며 "기후변화와 개발, 분쟁 등 세계유산이 직면한 위기를 인식하고 세계유산이 문제 해결과 공동체 지원, 교육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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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로 맞닿은 두 손의 형상을 한 세계유산 로고를 언급하며 "부산선언이 강조한 협력은 세계유산 로고가 표현하는 의미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세계유산위원회의 다섯 가지 전략목표인 신뢰성·보전·역량 강화·소통·지역사회에 '협력(Collaboration)'을 여섯 번째 목표로 더한 데 대해 "대화와 합의, 협력은 세계유산을 보존해 미래세대에 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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