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다리에 스스로 침 놓으며 버틴다"…서울역 지하도, 통계도 없는 이들의 실체
지난 22일 오후 서울역 지하도.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등은 서울역 일대에서 외국인 노숙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역파출소는 최근 만취한 덴마크 남성 노숙인을 계도했고, 지난해 3월에는 치매 증세를 보이는 70대 미국 남성이 광장을 떠돌다 발견되기도 됐다.
돈 벌러 왔다 거리로…외국인 노숙인 증가
통계도 관리 주체도 없는 '안전망 사각지대'
당사자 위험, 치안 저해 우려…"제도 필요"
"왜 나만 차별하냐는 말이야. 왜 나만!"
지난 22일 오후 서울역 지하도. 중국 연길시에서 온 주광호씨(62)는 일터에서 쫓겨난 경험을 풀어놓다 벌컥 울분을 토해냈다. 주씨는 2014년 방문취업(H-2) 비자로 한국에 왔다. 지금은 발급이 중단됐지만, 당시 중국동포에게 주로 발급되던 체류자격이다. 그는 "일용직을 하다 사업주가 괴롭혀 떠났다"며 "건강이 나빠지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노숙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마찬가지로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김기봉씨(65)와 김기룡씨(62) 형제도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길림성에서 한국으로 왔다. "몸만 나으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년 전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형 김씨는 병원 치료도 받아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픈 다리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침을 놓거나 민간 무료병원에서 진통제를 맞으며 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다 사고나 질병으로 노동 능력을 상실한 뒤 거리로 내몰리는 외국인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관리할 제도는 사실상 공백으로 나타났다. 별도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 데다 관계기관의 역할도 명확하지 않아 민간 지원단체가 신원 확인부터 의료·귀국 지원까지 떠맡고 있다. 장기간 노숙으로 주취 난동이나 범죄 노출 등 치안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서울시에 따르면 노숙인은 2023년 3041명에서 2024년 3067명, 지난해 3110명으로 늘었다. 다만 국적별 통계는 따로 집계하지 않아 외국인 규모는 알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3년 주기로 전국 노숙인을 집계한 결과 2024년 기준 1만2725명, 거리 노숙인의 75.7%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등은 서울역 일대에서 외국인 노숙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역파출소는 최근 만취한 덴마크 남성 노숙인을 계도했고, 지난해 3월에는 치매 증세를 보이는 70대 미국 남성이 광장을 떠돌다 발견되기도 됐다. 여권을 분실해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원센터가 영사관과 협의한 끝에 미국으로 송환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노숙인의 상당수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노숙 생활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재외동포(F-4) 비자나 취업·여행비자로 입국한 뒤 체류기간이 만료됐거나 사고와 질병으로 노동 능력을 잃으면서 거리에 나앉게 된 사례가 많았다. 거리 생활이 길어질수록 알코올 의존과 정신질환, 만성질환이 심화하면서 범죄에 노출되거나 취약계층으로 내몰렸다.
현행 노숙인 지원 체계는 원칙적으로 내국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은 공공 노숙인 시설 입소나 의료 지원을 받기 어렵다. 병원으로 이송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수천만원에 이를 수 있다. 불법체류자는 귀국 절차가 복잡해 거리 생활이 길어지기 십상이다.
법무부와 경찰도 법적 권한을 이유로 적극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민간에서 영사관을 설득하고 무료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연계하는 임시 처방이 반복되고 있다. 노숙인을 지원하는 단체·기관에선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신원 확인을 꼽는다. 여권 등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지만 영사관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신원 확인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인도적 차원에서 외국인 노숙인을 관리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다. 제한된 인력·예산으로 의료기관 연계부터 영사관 협조, 귀국 절차까지 떠맡고 있다.
외국인 노숙인에 대한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로 장기간 방치될수록 치안·행정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사자의 위험뿐만 아니라 주취 소란과 폭행 등으로 번질 수 있고 역사 등 공공장소에서 시민과의 마찰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신원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와 피해 회복, 사후 관리에도 어려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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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외국인 노숙인을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사회 안전망에 구멍을 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는 "관리 주체 없이 민간에서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불법체류자는 귀국 절차를 보다 신속하게 진행하고, 합법 체류자나 긴급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겐 최소한의 의료·사례 관리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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