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韓, 미·중 AI 추격 아닌 세계 연결할 '공공 운영체계' 만들어야"
"한국, 공공서비스 AI 국제연대 설계할 조건 갖춰"
소버린 AI, '국산 모델' 아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는 구조'로
ODA·개발은행·데이터센터 연계…"5천만 시장을 수십 개국 생태계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국의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을 뒤쫓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견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 AI 운영체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이 미·중과 모델 성능이나 내수시장 규모를 놓고 정면 승부하기보다 의료·교육·행정 등 공공서비스에 AI를 적용하는 국제 협력 모델을 만들고 이를 한국의 AI 데이터센터와 산업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김 실장은 22일 밤 페이스북에 'AI 시대, 국가는 세계를 연결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AI 시대에도 진짜 중요한 과제는 기술 순위 싸움이 아니라 세계가 작동하는 운영 방식을 만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앞서 AI 시대에는 국가가 단순한 산업 지원자를 넘어 시장과 생산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 적용 범위를 국제 협력과 AI 외교전략으로 확장한 것이다.
김 실장은 한국이 세계 AI 패권 경쟁의 중심에서는 다소 비켜서 있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핵심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대체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인구 5000만명의 내수시장만으로 미국과 중국의 데이터·자본 규모를 따라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김 실장은 "어떻게 혼자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움직이는 판을 만들 것인가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며 "영국과 캐나다, 일본을 비롯한 중견국 역시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기에는 시장이 작고, 글로벌 빅테크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기술적 종속이 불가피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분석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각국 정부에 공공부문 AI를 일정 기간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도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시장 선점을 위한 포석으로 봤다. 의료·교육·행정 시스템에 특정 기업의 AI 표준이 한번 자리 잡으면 교체 비용이 커져 장기적으로 해당 생태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당장의 비용을 아끼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모든 국가가 같은 선택을 하면 거대 생태계의 하부로 흡수된다"며 "각자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집단적 종속이라는 결과를 낳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이 공공서비스 분야의 AI 도입·운영 방식을 개발해 다른 국가가 자국 실정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자 연대를 제시했다. 미국이 플랫폼, 중국이 인프라, 유럽이 규범 경쟁에서 각각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의료·교육·행정처럼 복잡한 법률과 규제, 사회적 신뢰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공공서비스 AI 시장은 아직 지배적 사업자가 없는 영역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실장은 "한국이 지역 의료 공백과 교육 격차, 복잡한 행정 절차를 AI로 해결하는 사례를 축적할 경우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국가가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 기준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韓, 독자적 디지털 생태계와 비패권국 신뢰 갖춰"
한국이 이 같은 국제 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독자적인 디지털 생태계와 비패권국으로서의 신뢰를 꼽았다. 그는 한국이 검색과 메신저,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에도 자국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며, 소버린 AI 역시 단순히 국산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소버린 AI에 대해 "필요할 때 글로벌 기술을 활용하되 특정 생태계에 갇히지 않고 언제든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종속되지 않는 구조'"라고 정의했다.
한국이 다른 국가를 압박할 패권적 힘이 없다는 점도 약점이 아니라 협력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류를 통한 문화적 호감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경험을 함께 갖춘 만큼, 상대국이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협력 대상으로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독자적인 언어와 제도를 가진 국가를 예로 들었다.
김 실장은 다만 데이터 주권은 해당 국가에 남겨두고 공동 개발한 모델도 공동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이전하거나 수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대등한 지분 구조를 보장해야 기술 원조가 새로운 형태의 수탈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재원 조달은 초기에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개발은행의 위험 분담, 한국 기업과 현지 사업자의 공동투자, 이용량에 따른 서비스 비용 지급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에 조성되는 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도 국제 협력전략의 핵심 기반으로 제시했다. 협력국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데이터센터를 직접 건설하지 않고 한국의 연산 자원을 이용하도록 하면, 해당 국가는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능력을 확보하고 한국은 데이터센터의 안정적인 해외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러한 구조가 정착되면 개도국의 데이터와 공공서비스 경험이 한국의 AI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고도화된 시스템이 다시 협력국과 연산 수요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도와주는 일이 곧 우리의 경쟁력이 되고, 5000만 시장의 한계는 수십 개국을 아우르는 거대한 생태계로 확장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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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국제전략을 실행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재정당국, 외교부 등에 분산된 AI·산업·외교 정책을 먼저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세계의 운영 방식을 조직하려는 국가는 먼저 자기 내부부터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 스타트업, 연구자, 데이터센터 사업자를 하나의 국가전략 아래 결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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