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美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과 디지털화폐 인프라의 지향점
이종렬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최근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미 달러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자국 통화 입지를 다지고 디지털 금융 영토를 넓히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글로벌 결제망에서 원화의 활용성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다. 다만, 도입에 앞서 글로벌 디지털 금융 시장의 엄정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글로벌 실증사례들은 규제 정비가 곧바로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MiCA 법안을 마련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일본, 호주 등 주요국은 선제적으로 규제 틀을 완비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 확보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자국 통화 표시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모는 글로벌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1% 미만, 소수점 단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달러화 중심의 강력한 '시장 고착 효과(Lock-in Effect)'가 존재한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탈중앙화 금융(DeFi) 생태계는 초기부터 달러화(USDT·USDC) 중심으로 유동성 풀을 구축했다. 결국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결제망에서 안전 자산이자 지배적 통화인 달러를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시장 수요가 맞물리면서 타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설 자리는 지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실마리와 올바른 방향성은 국제결제은행(BIS)의 2026년 연례경제보고서 제3장 '화폐에 대한 신뢰 안착: 스테이블코인을 넘어선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BIS는 이 보고서를 통해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한다. 특정 자산에 가치를 연동하고자 하나 시장 충격 시 상환 가치가 흔들리는 리스크(run risk)가 상존하며, 다수의 퍼블릭 블록체인 간 인프라 파편화로 결제 시스템으로서의 확장성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신원 확인이 결여된 비수탁형 지갑 사용 등으로 금융 무결성(financial Integrity)에 우려를 낳기도 한다. 이에 따라 BIS는 대안으로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이라는 검증된 '2계층 화폐 시스템(two-tier monetary system)' 위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토큰화(tokenisation)'와 이를 유기적으로 묶는 '통합원장(unified ledger)' 구축을 제시한다.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따른 리스크 대응 방안의 선제적 수립이다. 대규모 인출 방지 및 자산 운용 제한 등 건전한 발행 요건을 다듬고, 외화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맞서 자금세탁방지(AML) 등 금융 무결성을 지킬 대응책을 구축해야 한다. 규제 차익을 노리는 스테이블코인의 무분별한 확장을 통제할 글로벌 공조도 필수적이다. 둘째, 금융 결제 시스템의 디지털 혁신과 공적 통화 인프라 고도화다. 구체적 이정표가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이다. 이는 BIS가 제시한 '통합 원장' 개념을 이식한 국가적 인프라 실험이다.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토큰과 상업은행 예금 토큰을 단일 플랫폼에서 작동시키며, 채권·부동산 등 다양한 토큰화 자산(RWA)까지 스마트 계약으로 연계해 안전하게 거래하는 확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도전에 대응하고 통화 주권을 수호하는 열쇠는 단지 개별 코인 발행에 그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면밀히 준비하면서 공적 금융 인프라 고도화를 병행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국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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