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시키고 수당 '0원'…'포괄임금 금지법' 속도
IT·제조 등 산업 전반 편법 여전
근로시간 축소·수당 미지급 적발
국회, 금지·제한 법안 심사 진행
"예외가 원칙이 된 현실이었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은 특정 업종에 국한하지 않고 산업 전반에 뿌리 깊게 만연해 있다. 정부가 올해 네 차례 실시한 권역별 릴레이 기획감독 결과를 보면, 포괄임금제를 명목으로 근로시간을 축소하거나 법정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IT·게임업부터 제조업, 금융업, 콜센터까지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예외적으로 인정된 포괄임금제가 산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인 임금체계 원칙처럼 자리 잡은 셈이다.
'예외가 원칙' 된 현실
청년층이 밀집한 성남 판교테크노밸리를 대상으로 한 2차 감독에서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Crunch Mode·고강도 근무 체제)'를 악용한 사례가 적발됐다. IT·게임업체들은 두 달 동안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을 시키고도 구두 지시였다는 이유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근로시간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제조업 중심의 경남 창원국가산단(3차 감독)에서는 계약서상 명시된 월 48시간의 고정 연장근로수당 외에는 야근 수당을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법정 한도인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순간 사내 전산망에 실근로시간 자체를 입력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조직적 '꼼수'도 드러났다.
서울 중구와 영등포구 일대 금융업 및 콜센터 업종 감독에서도 부조리는 이어졌다. 관리자라는 이유로 근로시간 측정을 생략해 야간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수당 산정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채 "고정OT 초과분이 없다"며 내역 조회를 거부한 사례가 적발됐다. 또 화장품 제조업체는 출퇴근 기록을 누락해 근로자 310명의 연장수당 1억2300만원을 체불했고, 서울 구로·가산디지털단지에서는 세탁업체가 연장근로 한도를 412차례 위반하고 연차 유급휴가 미사용수당 4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법보다 먼저 굳어진 관행
이처럼 포괄임금제가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오남용되는 배경에는 해당 제도가 근로기준법상 명시된 제도가 아니라는 법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사용자가 실제 일한 시간을 기초로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따른 가산수당을 산정해 지급하는 것을 엄격한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법원은 근로 형태나 업무 성질상 근로시간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수당을 급여에 미리 포함하는 포괄임금 계약을 인정해 왔다. 1974년 포괄임금제를 처음 인정한 대법원 판례다(73다1258).
이후 대법원은 포괄임금제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을 ▲근로시간 산정이 객관적으로 어려울 것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을 것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할 것 등 세 가지 기준을 엄격히 요구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다면 포괄임금이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법정수당에 미달할 경우 해당 계약을 무효로 판단해 왔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08다6052 판결 등). 하지만 이러한 법원의 엄격한 예외 기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예외적으로 허용된 포괄임금제가 사실상 원칙처럼 운영돼 왔다.
국회 '포괄임금 금지법' 추진
이러한 편법 관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국회도 법적 명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포괄임금계약 자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전현희·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다. 두 개정안은 기본급을 미리 산정하지 않거나 연장·야간·휴일수당을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고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포괄임금계약으로 정의하고 체결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전 의원안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근로자 동의와 근로자대표 협의,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제한적 방식을 취하고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등 형벌을 부과하도록 했다. 김 의원안은 예외 없는 '전면 금지'를 내세우며 연차휴가 미사용 보상금을 포함하는 계약까지 금지 유형에 추가하고 업무 개시·종료 시각의 일·주·월 단위 전자적 기록·보존을 의무화했다.
실질임금·근로시간 측정 등 노사 갈등 '뇌관'
노동 실무현장에서는 공짜 야근에 대한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임금체계 및 실근로시간 관리 등 노사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양측 모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경영계는 근로시간 측정 강화와 포괄임금제 금지 입법 추진에 대해 현행 제도 유지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기업의 74.7%가 '현행 유지'를 희망했다. 포괄임금제 금지가 고정OT까지 포함할 경우 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은 물론 근로자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포괄임금·고정OT 도입 사업장의 79.3%가 실제 근로시간이 약정시간보다 적어도 약정된 수당을 전액 지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제도 폐지 시 일부 근로자의 실수령액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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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기록 의무 강화에 따른 우려도 제기된다. 분 단위의 근로시간 관리가 이뤄질 경우 휴게시간이나 사적 용무 등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조사결과 대기업의 52.5%가 포괄임금제 금지에 반대하는 이유로 '실근로시간 측정에 따른 노사 갈등 심화'를 꼽았다"고 밝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괄임금제 개편은 노사와 기업 규모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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