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국제화, 30년 금기 깨다]③"원화 ETF 발행·수출입 원화계좌 규제 완화"…로드맵 이후 과제는
로드맵, 개방 확대와 리스크 관리 병행해 안정성 담보
규제 완화했지만 주요국 통화보다 자유로운 거래에 한계
로드맵 다음 단계는 ‘원화 유동성의 깊이’ 확보
“금융상품 다양화·경상거래 계좌 규제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원화 국제화를 위한 선결 과제로 '편리하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점과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런 의미에서 외환거래 규제 완화와 다양한 인센티브가 이번 로드맵에 포함된 것은 이전보다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화의 완전한 통용성과 태환성을 보장하려면 전면 개방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원화 상장지수펀드(ETF) 발행 등 금융상품을 다양화해 원화 수요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호주달러 국제화와 닮은 듯 다른 원화 국제화
정부가 로드맵을 통해 공개한 원화 국제화 모델은 중소개방형 통화이자 자유교환 통화인 호주달러의 국제화와 닮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호주는 1983년 대부분의 외환 규제 조치를 없앴다. 이후 런던 등 국제 금융시장에서 호주달러 예금 시장을 활성화했고, 채권 이자소득세를 면제해 자금 유입 요인을 높였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24시간으로 연장하고, 해외 기관에 시장 개방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호주달러 국제화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호주 정부는 호주달러의 완전 자유화를 위해 외환 규제를 대부분 폐지했고, 우리나라는 원화 국제화를 위해 신고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의 단계적 자유화를 채택했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호주는 대부분의 해외 금융기관에서 호주달러를 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지만, 한국은 역외원화결제기관 제도를 신설해 취급 기관을 늘리더라도 그간 신뢰성을 인정받은 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RFI)의 본사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비교적 좁은 개방 형식에 그친다. 다만 외국인이 국내(외은지점·국내 시중은행)에 별도 계좌를 열지 않고 역외에서 원화를 보유할 수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적해온 계좌개설 마찰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방과 안전판까지'…원화 진입장벽 낮춘 실효적 조치
학계에서는 완전 개방은 아니더라도 '열어두되 지켜봐야 한다'는 제안이 우선 수용됐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계는 그간 원화 역외 거래를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의존했던 구조에서 벗어나는 한편, 비거주자의 원화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이번 로드맵으로 이를 위한 기본 토대는 갖췄다는 평가다. 정부가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권시장 접근성 제고, 원화 채권 역외 대차거래 허용, 경상거래 인센티브 확대, 현지통화 직거래 체계(LCT) 활성화 등 원화를 더 많이 쓸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면서다.
단순히 원화 접근성을 넓히는 수준을 넘어 유동성 백스톱(안전판)·국내 외국환은행의 커스터디(보관·관리)업 참여 확대 등 리스크 관리를 세트로 묶어 실질적인 안정성을 담보한 것도 '실질적'이라는 반응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접근성을 넓히기 전에 시장 깊이랑 결제 배관부터 깐 순서가 좋고, 리스크 관리도 구색 맞추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외환 규제 완화와 비거주자가 비거주자를 상대로 한 역외 원화증권 발행이 가능해진 점은 비거주자의 원화 자산 접근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뉴욕·런던에서 원화표시 채권이 발행되면 비거주자 원화자산 수요가 생기고, 그게 역외 원화 풀을 키우는 선순환의 입구가 된다"며 "딤섬본드·사무라이본드·캥거루본드처럼 역외 통화표시 채권시장은 국제화의 정석 통로"라고 짚었다.
일정 금액 이하(액수 추후 확정) 발행을 사후보고로 전환할 계획인 만큼 로드맵 시행 후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로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화 국제화의 주요 모델로 꼽히는 호주의 경우 비거주자가 유로·호주달러채권을 발행하거나 단순 은행 간 해외 전송을 할 경우 발행사나 투자자는 액수와 관계없이 호주자금세탁방지청에 사후보고하면 된다.
학계에선 환투기 세력에 대한 모니터링과 대처가 쉽지 않은 만큼 로드맵에서 보여준 단계적 접근이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역외 외환시장 개방은) 관리·감독하는 정부와 투자자의 입장이 정확히 상반되는 지점"이라며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을 개방하는 게 맞지만, 환율이 급상승하거나 헤지펀드들의 관리가 안 될 경우 대처가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로드맵에 담긴 내용은 속도감 있게 실행돼야 한다는 게 공통된 주장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중간 단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며 "(로드맵 적용 이후) 모니터링상 리스크가 없다는 점이 나타나면 전향적인 형태로 진행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주식시장 등 국내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는데 여기서의 복원력도 확인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규제 수위만 낮춰…제어 없이 쓸 수 있는 통화 아냐
실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완전 자유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변정규 다이와증권코리아 FICC본부 상석본부장은 "원화 국제화의 전제는 '자유롭고' '편안한' 거래"라며 "달러나 유로같이 제어 없이 쓸 수 있는 통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가제가 아니라 (완전히) 풀어줘서 자유롭게 송금하고 받을 수 있게 해야 이 전제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외국환은행의 비거주자 외화자금 차입(기존 5000만달러 및 상환기관 1년 초과 시 재정경제부 신고), 원화자금대출(동일인 10억~300억원 은행신고·300억원 초과 시 한국은행 신고) 등의 신고기준 금액을 2배 이상으로 늘린 데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현재도 외환 스와프를 통해 달러를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인데, 현재 300억원인 한도를 600억원으로 늘린다고 해서 그만큼 대출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거 규제가 100점 만점에서 50점 수준이었다면 40점 정도로 낮춘 셈으로, 효과와 실적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로드맵 이후엔…원화 ETF 발행·노스트로 계좌 규제 완화·원화 차관 확대 등 검토 제언
자본시장에서 원화 투자 유입 요인을 위해서는 추후 원화 상장지수펀드(ETF) 발행 등 상품군 확대도 고려할 만한 지점으로 꼽힌다. 호주달러와 캐나다달러도 자본 시장 활성화와 자국 통화 국제적 수요 증가, 외환 관리 유연성 확보를 위해 통화 ETF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호주달러 ETF(FXA)의 시가총액은 1억470만달러(약 1450억원·7월17일 종가 기준), 캐나다달러ETF(FXC)의 경우 7676만9000달러(약 1064억원)에 달한다.
박 교수는 "마침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도 이번에 '투자상품 가용성' 항목을 한 단계 올렸다"며 "뉴욕·런던에 원화 채권, 원화 ETF 같은 게 늘면 비거주자의 원화 자산 수요가 생기고, 그게 역외 원화 풀을 키워서 MSCI가 원하는 역외시장 깊이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향후 경상거래에서도 원화 결제 인센티브 제공 이외의 원화의 쓰임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시장에서는 일례로 해외 송금과 외환결제 등을 처리하기 위한 노스트로(Nostro) 계좌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원화는 역외 이전에 제한이 있고, 신용공여 면에서의 당국 규제 역시 엄격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외환시장 관계자는 "현재 반도체, IT 첨단 산업의 수출품은 공급난이라서 웃돈 주고 사는 상황"이라며 "노스트로 계좌 규제가 완화돼 원화로 결제하기 용이해지면 관련 대기업과 그 협력사, 중소기업들은 달러 헤지를 할 필요가 없어져 근본적으로 원화 쓰임이 확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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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차원의 해법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외원조 규모 세계 4위(연간 23조원)인 일본의 경우 유상차관이 전체에 68%를 차지하고, 엔화 비중이 원칙상 100%다. 따라서 1년에 약 15조6000억원가량 엔화가 해외 시장에 풀리는 효과를 거둔다. 한국도 현행 유상 차관(대외 원조의 30~40% 수준) 비중을 늘리고, 80% 수준인 원화 원조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의 전체 차관 규모는 연 5조4000억원 규모다. 정 선임위원은 "원화 차관이나 ODA 확대로 해외에서의 쓰임이 완전히 풀린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일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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