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몇 번만 하면 가입…중장년층, 위험 제대로 모른 채 자산 굴린다[금융교육을 묻다]①
편집자주 금융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손안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투자와 대출이 가능해진 동시에 복잡한 상품의 구조와 위험을 헤아리고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도 커졌다.
중고령층의 금융 의사결정은 주식·펀드 투자뿐 아니라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인출할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에 어떻게 대비할지 등 노후 생활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 대전환 시대, 금융교육을 다시 묻다]
투자 열풍 속 이해는 뒷전…금융지식 공백 여전
금융상품 이용 경험과 이해력은 별개
"일회성 교육 넘어 노후 위험관리로 확장해야"
"유튜브에서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솔직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50대 후반 직장인 정모씨는 최근 퇴직을 앞두고 가입한 금융상품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은행 예금에 있던 자금 대부분을 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 넣었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계좌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반도체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도 눈을 돌렸다. 인공지능(AI) 업황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는 만큼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면 노후자금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정씨는 레버리지 ETF의 주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할 경우 음의 복리효과로 손실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개장 직후와 장 마감 직전에는 유동성공급자(LP)의 호가 제출 의무가 면제돼 시장가 주문 시 예상보다 불리한 가격에 체결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 밖에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서는 본인이 직접 운용상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운용수익에 대한 과세 방식이나 연금 수령 방법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또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할 경우 상환 부담이 어떻게 불어날 수 있는지도 선뜻 설명하지 못했다. 정씨는 "레버리지 ETF가 수익과 손실을 모두 키울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정도는 알았지만 장기 보유 시 수익률이 기대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잘 몰랐다"며 "퇴직연금이나 대출, 랩어카운트 같은 다른 상품도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정확히 아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금융회사 직원의 권유나 주변 이야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중고령층의 디지털 금융 이용이 일상화되면서 금융상품을 스스로 비교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늘고 있다. 그러나 금융상품 이용 경험을 쌓는 것이 금융역량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과 당국이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소비자 스스로가 상품 구조와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금융피해와 불완전판매 논란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노후 준비 복잡해지는데…제도 이해는 낮아
20일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10월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은행권·국민연금공단 등과 함께 고령층 집중금융교육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금융교육 기회가 부족한 지방 소재 노인시설을 중심으로 수요를 발굴해 수도권과 지방 간 교육 격차를 줄이고 고령층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권 유휴점포를 체험형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기대수명 증가로 은퇴자산이 노후기간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장수리스크가 커지면서 노후자산관리 금융교육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중고령층 대상 금융교육이 강화되는 배경에는 노후 생활과 밀접한 금융지식·제도에 대한 중고령층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중고령소비자 금융역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령층은 물가상승률과 위험분산 개념은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복리와 채권가격, 대출 관련 지식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특히 퇴직연금 DC형 관련 일부 문항의 정답률은 60%를 기록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 소득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가입자가 자신의 적립금이 어디에 운용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수령해야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 연금으로 받을 때와 일시금으로 받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않았다. 수급자가 시설 입소나 방문 서비스를 통해 간병 관련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장기요양보험 급여에 요양병원 입원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39%에 그쳤다. 노인장기요양 인정 신청을 하더라도 자동으로 등급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 응답자도 절반을 조금 웃돌았다.
이 같은 결과는 금융교육의 범위가 단순한 투자상품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고령층의 금융 의사결정은 주식·펀드 투자뿐 아니라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인출할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에 어떻게 대비할지 등 노후 생활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고령층 금융교육, 자산관리 넘어 노후 안전망으로
금융상품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예금·적금 중심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ETF, 파생결합상품, 변액보험, 연금저축, 신탁은 물론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서비스까지 선택지가 크게 늘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가입할 수 있지만 구조와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면 손실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고령층 금융교육이 다양한 상품 지식은 물론 은퇴 이후 현금흐름과 위험관리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고령층에게는 돌봄 비용 대비와 금융사기 예방, 디지털 금융 소외 방지까지 포함한 생활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허수정 금감원 금융교육기획팀장은 "고령층 금융교육에서는 여전히 디지털 리터러시와 디지털 금융 소외 방지가 중요한 과제"라며 "최근에는 고령층 안에서도 연령대와 역량에 따라 교육 내용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현재의 50·60대는 과거 세대보다 금융 이용 방식이 다른 만큼 기존의 고령층 교육 방식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금융환경도 계속 변하면서 연령대별 특성을 반영한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고령층은 온라인 교육보다 대면 교육과 체험형 교육의 효과가 클 수 있다"며 "금융사기 예방이나 디지털 금융 이용 교육도 직접 실습하는 방식이 병행돼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소득이 줄어드는 시기에 그동안 모아둔 은퇴자산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하고 투자상품에 가입할 때도 공신력 있는 기관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교육이 단순히 '소비자보호 캠페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중고령 소비자가 자신의 실제 재무 상태를 점검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재무진단 또는 금융자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등 대면 상담을 확대하는 방안이 보완책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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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원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뢰할 수 있는 무료 공적재무관리 서비스가 중고령층의 부채·생활비 등 현금흐름 관리와 완충 자산 마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보 접근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재무관리 서비스의 홍보를 강화하거나 기관 홈페이지 구성을 이용자가 접근하기 쉽게 배치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령층이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나 사망 이후 상속 문제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공공 상담서비스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금융지식이 긍정적 금융행동으로 연결돼 실질적인 금융 후생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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