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한 장은 농담, 500장은 시대였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아이 든 쇼핑카트부터 셀피 군중까지
웃음으로 기록한 소비사회의 50년
장바구니 안, 아이가 앉아 있다. 과자 상자와 장난감, 비닐 포장 사이에서다. 2004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마틴 파는 아이를 찍었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물건이 아이를 포위한 사진에 가깝다. 한 장만 보면 우습다. 비슷한 장면이 수백 장 쌓이면 웃음의 성질이 달라진다. 농담이 아니라 시대가 된다.
서울 도봉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16일 개막한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영국 사진가 마틴 파(1952~2025)의 작고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70년대 흑백사진부터 말년의 작업까지 14개 연작, 사진 500여점과 사진책 90권을 전관에 펼쳤다. 전시는 10월18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파는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생전, 손현정 학예연구사에게 물었다. "30년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많이 달라졌어?" 건강이 악화되면서 한강과 서울을 다시 찍으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그는 돌아오지 못했고 질문만 이곳에 도착했다.
마틴 파가 처음부터 원색의 조롱꾼이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그는 웨스트요크셔 예배당과 연회장, 아일랜드의 비 오는 거리와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를 흑백으로 찍었다. 더블린 오코넬 브리지에서는 종이 상자를 머리에 뒤집어쓴 행인이 빗속을 걷는다. 훗날의 유머가 이미 보이지만 카메라는 아직 멀리 서 있다. 쇠락하는 생활을 비웃기보다 사라지기 전에 붙들려는 사진에 가깝다.
15일 서울 도봉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 거장 마틴 파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연작 '삶의 비용'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변화는 1980년대 초에 왔다. 미국의 윌리엄 이글스턴과 스티븐 쇼어, 관광엽서 사진가 존 하인드의 선명한 색에서 자극받은 그는 컬러필름과 플래시를 들고 영국 뉴브라이턴 해변으로 갔다. 쓰레기와 녹슨 난간, 아이스크림을 흘리는 아이와 휴가 나온 가족들이 화면에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마지막 휴양지'(1983~1985)였다. 휴가의 낭만보다 대처 시대 노동계급의 지친 여가를 찍었다는 찬사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논쟁은 매그넘 포토스에서도 이어졌다. 흑백과 휴머니즘을 중시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파와 자신이 서로 다른 태양계에 속한다고 여겼다. 파의 입회 여부를 두고 매그넘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 가운데 하나가 벌어졌고, 그는 1988년 준회원이 된 뒤 1994년에야 정회원이 됐다. 파가 바꾼 것은 사진의 대상만이 아니었다. 전쟁과 혁명 대신 슈퍼마켓, 해변, 파티와 음식도 한 사회를 증언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수영을 못했지만 평생 해변을 찍었다. 부모는 열성적인 조류 관찰자였고, 파 자신도 카메라를 든 거장보다는 어수룩한 탐조객처럼 보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를 대단한 사진가로 의식하지 않는 동안, 그는 가장 대단하지 않은 표정을 기다렸다.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는 순간, 관광사진을 찍느라 명소를 등지는 순간, 무료한 연인이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가 가장 설득력을 얻는 지점도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들이 떼로 몰려올 때다. '작은 세계'에서는 아크로폴리스와 피라미드, 알프스 앞의 관광객들이 국적만 달리한 채 비슷한 자세를 취한다. '상식'에서는 햄버거와 케이크, 선탠한 피부, 치아와 기념품 등 270여점이 빽빽한 격자를 이룬다. 한 장씩 보면 시각적 농담이다. 반복해서 보면 소비자의 몸과 물건을 분류한 인류학 도감이 된다. 무엇을 샀는지로 자신을 설명하고, 어디에 갔는지보다 그곳에서 어떤 사진을 남겼는지를 중시하는 인간의 습관이다.
물론 500여점이라는 규모가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관람객이 한 사진에 머무르기보다 다음 웃음거리를 찾게 만들고, 시대와 장소가 다른 이미지들을 '마틴 파다운 사진'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평평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전시가 힘을 회복하는 곳은 속도를 늦추는 초기 흑백사진과 남북한 연작, 그리고 사진책 열람 공간이다. 파에게 사진책은 완성된 사진을 담는 보관함이 아니었다. 사진의 순서와 충돌을 통해 한 시대를 편집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가 25년 넘게 모은 사진책 1만2000여 권이 테이트에 소장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관객에게는 '북한'과 '남한'이 가장 불편하고 재미있는 방이다. 그는 1997년 패키지여행으로 평양에 들어가 동상과 주체사상탑, 시장과 어린이를 찍었다.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았다"고 했다. 이듬해부터 2007년까지는 남대문시장과 대형마트, 에버랜드와 제주도를 돌았다. 평양에서는 국가가 보여주는 배경을 찍었고, 서울에서는 시장이 넘치게 만든 배경을 찍었다. 한쪽 벽에는 기념비가, 다른 쪽에는 과자 봉지와 장난감이 가득하다. 서로 다른 체제였지만 사람은 어디서나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앞에 선다.
올해 파리 주드폼이 마련한 사후 회고전의 제목은 '글로벌 워닝(Global Warning)'이었다. 관광과 소비에 대한 그의 오랜 농담이 환경 파괴와 불평등의 경고로 어두워졌다는 해석이었다. 서울은 'We Are Martin Parr'를 택했다. 경고를 듣는 타인이 아니라, 사진 속 행동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뜻이다. 파는 소비사회를 밖에서 고발한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역시 관광객이었고 소비자였으며, 카메라와 사진책과 기념품을 끊임없이 모은 수집가였다. 그의 사진이 단순한 조롱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안전지대에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장바구니 속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됐을 것이다. 마틴 파가 다시 서울에 왔다면 무엇을 찍었을까. 계산대 앞에서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 음식을 먹기 전 사진부터 찍는 사람, 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선 사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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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내 오지 못했다. 대신 그가 찍으려 했던 다음 장면만이 전시장 밖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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