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미술공간 '미디어 술래' 展
장애예술의 감각은 어떻게 빛·소리·진동이 되나

검은 극장 안, 객석은 비어 있다. 무대 위에는 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남자가 여러 명 있다. 같은 얼굴이다. 한 사람은 페인트 통을 들고, 한 사람은 롤러를 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칠해진 판을 옮긴다. 어딘가 공사장 같고, 어딘가 리허설 같다. 곽요한의 2채널 영상 '창조의 순간'에서 창작은 영감이 번쩍이는 장면이 아니라, 무너진 것을 다시 칠하고 옮기고 세우는 노동에 가깝다.

곽요한, ‘창조의 순간’, 2026, 2채널 비디오.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인물들이 빈 극장 무대 위에서 판을 칠하고 옮긴다. 뇌경색 이후의 신체적 제약과 상실을 바탕으로, 창작을 번쩍이는 영감이 아니라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노동으로 보여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곽요한, ‘창조의 순간’, 2026, 2채널 비디오.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인물들이 빈 극장 무대 위에서 판을 칠하고 옮긴다. 뇌경색 이후의 신체적 제약과 상실을 바탕으로, 창작을 번쩍이는 영감이 아니라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노동으로 보여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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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열리는 '미디어 술래術來'는 장애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다룬 전시다. 제목이 먼저 묻는다. 기술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보통 기술은 앞에 선다. 새롭고 빠르고 정확하다는 말로 예술을 끌고 가려 한다. 이 전시는 반대로 배치한다. 영어 부제는 'When Technique Follows'. 기술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뒤를 따른다. 전시는 16일부터 8월 21일까지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열린다. 곽요한, 김유석, 박성민, 박유석, 박은영, 이요 등 6개 작가·팀이 참여했다.


전시가 피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 낙관론이다. 장애예술이 디지털 기술을 만나 '극복'의 서사가 된다는 식의 익숙한 문장. 다른 하나는 감동의 소비다. 조금 다른 몸과 감각을 아름답게 포장해 관객에게 착한 감정을 돌려주는 방식. '미디어 술래'가 흥미로운 것은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는 데 있다. 장애는 결핍의 이름으로만 놓이지 않고, 기술은 보조장치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술은 이미 다르게 세계를 감각해온 몸을 뒤늦게 번역하는 장치에 가깝다.

전시장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꾸 몸을 얻는다. 바람은 김유석의 '식물로봇'에서 보라색 빛을 받은 식물 모듈이 되고, 관객의 움직임은 박은영의 투명 구체 안에서 빛과 물의 반응으로 돌아온다. 원래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기척도 대개 늦게 온다. 이 전시는 그런 늦고 약한 감각을 서둘러 설명하지 않고, 모터와 센서와 빛 속에 잠시 머물게 한다. 기술은 여기서 감각을 대신하지 않는다.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임시의 몸에 가깝다.


박은영, ‘Untitled’, 2026, 인터랙티브 설치.투명 구체와 물, LED, 센서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보이지 않던 생명의 기척은 이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 미세한 흔들림으로 뒤늦게 몸을 얻는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박은영, ‘Untitled’, 2026, 인터랙티브 설치.투명 구체와 물, LED, 센서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보이지 않던 생명의 기척은 이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 미세한 흔들림으로 뒤늦게 몸을 얻는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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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선명하게 질서를 뒤집는 장면은 박성민의 'Antigravity'다. 청각장애 무용수 강혜라의 몸짓이 먼저 있고, 소리는 그 뒤를 따른다. 보통 음악이 무용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몸이 음악을 낳는다. 전자음악과 현악4중주, 무용이 한 무대에 놓였지만 중심은 귀가 아니라 손끝이다. 사진 속 무용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뒤편의 연주자들은 그 움직임 이후에 온다.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몸이 남긴 파문처럼 들리는 순간이다.

박유석의 'Cylinder Movement'와 이요의 '이후에 기척이 있다'는 그 파문을 공간과 물질 쪽으로 밀어붙인다. 박유석의 어두운 공간에서는 관객의 몸, 빛의 순환, 소리가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 내가 움직이면 공간이 듣고, 공간이 반응하면 내 몸도 다시 조심스러워진다. 이요의 구조물에서는 모터의 진동과 마찰음이 캔버스로 옮겨간다. 회화는 벽에 걸려 조용히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떨고 울리는 표면이 된다. 소리는 귀에만 도착하지 않는다. 뒤늦게 손과 피부, 몸의 긴장으로 온다.


이렇게 보면 '미디어 술래'에서 기술은 새로움의 주인공이 아니다. AI, 라이다 센서, 모터, LED, 우퍼 스피커, 다채널 오디오는 화려한 장비 목록처럼 보이지만, 전시가 끝내 붙드는 것은 장치의 성능이 아니다. 형상이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순간, 바람이 빛으로 잠시 붙잡히는 순간, 손끝의 움직임이 소리보다 앞서는 순간, 캔버스가 이미지이기 전에 떨리는 물질이 되는 순간이다. 기술은 그 순간들을 빠르게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더 늦게, 더 가까이 감각하게 만든다.


박성민, ‘Antigravity’, 2026, 퍼포먼스.청각장애 무용수 강혜라의 몸짓을 전자음악과 현악4중주가 뒤따른다. 음악이 무용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고 소리가 그 뒤에 도착하는 감각의 역전을 보여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박성민, ‘Antigravity’, 2026, 퍼포먼스.청각장애 무용수 강혜라의 몸짓을 전자음악과 현악4중주가 뒤따른다. 음악이 무용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고 소리가 그 뒤에 도착하는 감각의 역전을 보여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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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술래'의 작품이 모두 친절하지는 않다. 어떤 작품은 설명을 읽어야 작동 원리가 들어오고, 어떤 작품은 기술 구현의 장치가 감각보다 먼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전시가 남기는 질문은 또렷하다. 기술은 예술가에게 무엇을 해주는가. 더 정확히는, 기술은 누구의 감각을 따라가고 있는가. 빠르고 매끄러운 기술은 대개 표준화된 몸을 전제로 한다. 이 전시의 기술은 조금 다르다. 느린 반응, 뒤늦은 기척, 흔들림, 진동, 번역되지 않는 몸짓을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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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서면 '장애와 기술'이라는 큰 표어보다 작은 감각들이 남는다. 페인트칠하는 손, 보라색으로 흔들리는 식물, 무용수의 손끝, 어둠 속 빛의 궤적, 떨리는 캔버스. 이 전시는 장애예술이 기술을 통해 정상성에 가까워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이제야 다른 감각의 속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술래는 앞서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놓친 것을 찾기 위해 뒤따라가는 사람이다. 이 전시에서 기술은 술래다. 전시는 8월 21일 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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