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토목학회장·국토안전관리원장 대담
데이터 활용한 예방적 관리 중요
韓 인프라계획 잘하지만 부처간 이견조율↓
시설물 유지관리비용 2050년까지 1000조원

과거 1970, 198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 시기에는 기반시설을 최대한 빨리 확충하는 게 우선 과제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이 지나면서 이제는 양적 확충보다는 질적 관리가 중요해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프라가 국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도 직결된 터라 사후약방문식 대처보다는 예방적 관리체계를 보다 확고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경제 여건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인프라의 역할과 위상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인프라 관리 민관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한승헌 대한토목학회 회장,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 원장을 만나 현안과 향후 개선방향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토목학회는 기반시설과 관련한 국내 최대 전문가 집단으로 꼽힌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시설물·지하 안전 관련 국토교통부 산하 전문기관으로 전국 1~3종 시설물 18만여개를 직간접적으로 관리한다. 이들 전문가는 "관리 사각지대 인프라를 줄이는 게 재정부담을 낮추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책임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왼쪽)과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이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프라 관련 전문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왼쪽)과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이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프라 관련 전문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관리대상 18.7만대…사각지대까지 46만개 넘어
SOC 예산 새로 짓는 데만 집중…컨트롤타워 조율해야

지금 노후 인프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왜 필요한가.

△박창근 원장(이하 박): 오래된 시설물이 곧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노후화 속도와 규모다. 과거 1980~1990년대 압축성장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시설물이 동시에 노후화되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막연하게 불안을 조성할 게 아니라 어느 시설을 먼저 관리해야 하는지를 데이터로 판단하고 적기에 보수·보강, 성능개선을 추진하는 예방적 관리체계가 그래서 필요하다. 노후 인프라 대응의 핵심은 더 많이 고치는 게 아니라 '먼저 관리할 곳을 정확히 찾고' '한정된 재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투입'하는 것이다. 오래된 인프라가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인프라가 위험하다.


△한승헌 회장(이하 한): 현재 노후 인프라 관리시스템은 개별 시설물 단위로 돼 있다. 사후적 처방 관점이며 자산 관리적 관점이 미흡하다. 지금 인프라를 개선하면 가치가 얼마나 느는지, 수명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수술을 늦춰도 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정부 등 공적 관리대상 시설물이 18만7000여개 수준인데 사각지대에 있는 시설물까지 합하면 46만개가 넘는다. 모든 시설물에 대한 유지비용은 2050년까지 1000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점차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부족한 게 많다.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적기에 리빌딩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 인프라 관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인프라 계획수립은 잘하는 편이지만 부처 간 이견조율, 민간의 견제역할은 중하위권 수준이다. 숲으로 따지면 나무는 잘 심지만 숲 전체를 보면서 식재 전반을 관리하는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대형 인프라 중심으로 관리하는 탓에 소규모 시설은 관리가 미흡한 편이고 법적 강제력이나 재정수단 이행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박: 점검이나 관리체계를 갖추는 등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다. A·B등급 시설물이 전체 89% 수준이긴 하나 시설물의 급속한 노후화, 기후위험 증가로 안전등급 저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상시적 위험요인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인프라를 단순한 유지·보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자산으로 보고 장기적인 투자계획과 유지관리를 한다. '점검을 했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점검 결과를 어떻게 데이터화하고, 어떤 시설에 먼저 투자할지 판단하며 그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2023년 4월 교량 양쪽에 설치된 보행로 중 한쪽 보행로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정자교에서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4월 교량 양쪽에 설치된 보행로 중 한쪽 보행로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정자교에서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중복투자 줄이고 정책효과 검증
데이터 기반 평가체계 구축 필요

지난해 시범 수행한 국토인프라 평가체계가 기존 평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박: 기존 진단은 교량·터널 등 개별 시설물이 현재 안전한지, 보수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데 초점을 둬 전체 인프라 수준이 어떤지, 어디에 예산을 집중해야 하는지를 한눈에 알기 어렵다. 지난해 처음 나온 '건강진단서'는 시설군 전체를 보는 평가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현재 성능과 함께 유지관리 수준을 평가해 앞으로 전망도 다룬다. 다만 아직은 법적 판정자료가 아니라 전문가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정책 참고자료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도로시설 8종을 대상으로 했는데 철도, 공항 등 다른 시설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 진단을 토대로 실제 정책과 예산, 관리기준 개선으로 이어지는 환류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 미국 토목학회가 '리포트카드'라는 형식으로 시설물 평가를 진행하면서 추후 인프라 투자법(IIJA·1조2000억달러 규모)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냈다. 심판과 선수를 따로 두듯, 조사는 민간에서 하되 유지관리를 공적 영역에서 맡는 체계가 바람직하다. 국토안전관리원의 전문성을 살리고 행정부담을 줄이면서도 민간 학술단체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한 수요자 중심의 지속 가능한 기반시설 관리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다리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26.5.26 강진형 기자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다리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26.5.26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부처·기관별 칸막이로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박: 지방자치단체는 관리할 시설물이 많은데 재정이나 전문인력은 제한적인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다. 기관별로 따로 움직일 게 아니라 같은 시설물 정보를 공유하고 관리하는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민원이 많거나 눈에 잘 띄는 시설이 아니라 위험도, 이용량, 사고 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먼저 관리할 시설을 정할 필요도 있다. 안정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성능개선 충당금 제도가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사고 후 예산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재원을 미리 준비하는 예방적 체계다.


지자체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곳이 많다.

△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새로 짓는 데 집중한다. 지자체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재원을 신규 SOC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철도의 경우 인프라 가운데 유일하게 지방철도의 유지관리를 국가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나머지 인프라에 대해선 중앙정부로부터 재원을 받아도 지자체가 각자 알아서 하는 구조다. 지자체에만 맡길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조율하고 국가 책임성을 높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국가인프라기본법이 실효성 있게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박: 첨단산업 인프라가 서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부처별 계획만으로 한계가 있다.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존 법체계와 정합성을 갖추고 재원 확보, 투자 우선순위와도 잘 연계해야 한다. 중복 투자를 줄이고 정책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평가체계도 필요하다. 인프라기본법이 장기전략과 조정체계라면 별도로 추진 중인 노후 SOC 안전강화 특별법이 직접적 실행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AD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왼쪽)과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이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프라 관련 전문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왼쪽)과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이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프라 관련 전문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프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 인프라는 구상 후 마련해 실제 작동하기까지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자칫 독선과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다. 부처 간 협력, 조율과정이 중요한 것은 물론 외부의 건전한 참여·감시도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돌아가야 정부 예산도 절감되고 시간도 단축된다. 현재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일반산업단지는 송전선을 도로 지하에 설치해 지역 민원을 줄였는데, 이런 부분은 인프라 계획을 종합적으로 했기에 가능했다. 인프라 없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도 장밋빛 허상에 불과하다.


△박: 기업 투자는 빠르게 결정되는데 전력망이나 도로, 용수시설, 환경시설 인허가는 주민 수용성, 예산확보에 시간이 많이 든다. 인프라 소관 부처가 달라 업무 혼선이 생기는 경우도 잦다. 첨단산업 인프라를 새로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나 기존 시설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봐야 한다.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성능을 개선해 첨단산업 수요에 맞는 용량과 성능을 확보하면 새로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행정적 혼선을 줄일 수 있고 기존 인프라 노후화도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정리=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