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500조 ETF 시장이 흔드는 주춧돌, '왜그더독'에 갇힌 한국 증시
코스피, 하루만에 6700선까지 급락
초고위험 파생상품 득세 변동성 극대화
스트레스 테스트 구축 등 전체적 수술
지난달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세계적인 금융 미디어들은 우리 자본시장의 해묵은 취약점을 정조준해, 서늘하게 다룬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외신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바라보는 우리 증시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경제의 기초체력에 비해 지나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형적인 변동성'에 있었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며 코스피는 지난 14일과 금일(16일) 6000선으로 내려앉았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시장의 하방 경직성을 받쳐주어야 할 자본시장 생태계는 오히려 특정 초고위험 파생 상품들의 득세로 변동성이 극대화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지수가 하락할 때 완충 장치가 작동하기는커녕, 투기성 자금이 변동성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키며 시장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일 종목 상장지수펀드(ETF)'의 폭발적인 성장이 변동성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분산투자'라는 펀드의 고전적 원칙은 깨지고 있다. 이런 바람을 타고 개별 대형주 한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단일 종목 ETF의 자산 규모가 불과 1년 만에 2.3배로 급팽창했다. 우리 시장 역시 단일 종목 및 개별 레버리지 ETF 순자산 규모가 10조원대를 돌파하며 덩치를 키웠다. 문제는 이 기형적인 상품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특정 초우량 대형주의 주가 등락을 수배로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500조원 규모로 거대하게 성장한 전체 국내 ETF 시장의 자금 흐름이 역으로 기초자산인 현물 주식 시장을 사정없이 뒤흔들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전형적인 '왜그더독(Wag the Dog)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투기 자본과의 결합 가능성이 우려스럽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단일 종목 ETF는 자본시장법상 안정성을 위해 반드시 한 개 종목에 채권 등을 일정 비율 섞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의 규제 환경은 전혀 다르다. 미국은 순수하게 개별 종목과 스와프 계약만으로 2배, 3배의 레버리지 및 인버스 상품을 무제한으로 설계할 수 있다. 만약 미국 뉴욕 증시에서 우리 반도체의 핵심축인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기반 단일 종목 레버리지 및 인버스 ETF'가 본격적으로 출시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글로벌 헤지펀드의 막대한 숏(매도) 세력과 투기 자본이 결합하는 순간, 국내 본주(현물)의 주가는 우리 금융 당국의 통제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글로벌 투기판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 시장이 날아오를 때 일시적인 수혜를 보는 듯해도, 변동성 쇼크가 발생하면 우리 반도체 주식 생태계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거대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이처럼 금융 시장이 투기판이 되는 동안 금융 당국은 무엇을 했는지를 물어봐야 할 것이다. 당국은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이나 장기 투자 인프라 구축에는 소홀한 채 오로지 거래대금 활성화와 양적 성장에만 취해 구조적 위험을 방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증시가 기형적인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는 비결은 탄탄한 장기 기관투자가의 역할에 있다. 미국 증시는 거대한 퇴직연금 자본이 매달 기계적이고 꾸준하게 우량주로 유입되며 시장의 벼랑 끝 변동성을 흡수하는 단단한 완충 장치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장기 자본을 유인할 근본적인 인프라를 마련하기는커녕, 눈앞의 지수 하락 압박을 막기 위해 연기금의 국내 주식 리밸런싱을 인위적으로 유예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오히려 증시에 장기적인 기형적 변동성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고위험 파생 상품의 출시를 방임함으로써 시장의 왜곡을 방조한 정책적 패착이다.
코스피가 장중 6800선도 무너지며 급락한 가운데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 등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323.91포인트(4.45%) 내린 6,960.50으로, 코스닥지수는 16.11포인트(1.94%) 내린 813.32로 개장했다. 2026.7.14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제라도 금융 당국은 단기적인 지표 포장 마인드에서 벗어나 시장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면적인 제도 수술에 나서야 한다. 우선 단일 종목 및 테마형 ETF의 과도한 레버리지 배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유동성 공급자(LP)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로, 500조원의 ETF 자금이 특정 만기일이나 대외 쇼크 발생 시 자산 시장을 파괴하지 않도록 금융당국 차원의 실시간 현·선물 연계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어 단기 투기성 상품에 매몰된 자금을 생산적인 우량주로 유인할 수 있도록 거대 연기금의 기계적 자산 배분 독립성을 보장하고 퇴직연금의 국내 주식 장기 투자에 대한 파격적인 유인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주춧돌이 흔들리는데 인테리어만 바꾼다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꼬리가 몸통을 집어삼키기 전에 시장의 자생력과 건전성을 지킬 진짜 해법을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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