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간 K기업들, 법률수지 적자 눈덩이[Invest&Law]
작년 적자 15억달러 돌파
올해는 5개월만에 예년수준 넘어서
美특허괴물, 고액수임료 발목
국내로펌 수입은 제자리 걸음
한국 기업들의 해외 법인 설립, 인수합병 실사, 라이선스 취득 등을 위한 자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법률서비스 무역수지 적자'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법률서비스수지는 한 나라가 외국과 소송, 법률 자문 등을 거래하면서 벌어들인 수입과 지급한 지출의 차이를 뜻한다. 국내 로펌이 외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받은 외화에서 국내 기업이 외국 로펌에 지불한 법률 자문료를 뺀 값이다.
예컨대 네이버가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기업 포쉬마크를 인수할 당시, 미국의 초대형 로펌인 커클랜드 앤 엘리스를 선임하며 천문학적인 법률 비용을 지출한 것은 법률서비스 지출에 들어간다. 한국 기업이 해외 로펌에 쓴 돈이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반면 국내 로펌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은 정체되면서 법률서비스 수지는 매년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률서비스 적자는 15억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불과 5개월 만에 과거 1년치 적자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법률서비스 무역수지 적자는 2022년 5억3760만달러에서 지난해 15억4030만달러로 3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5억~6억달러대에 머물던 적자 규모는 2023년(8억7350만달러), 2024년(11억4060만달러)을 거치며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흐름도 심상치 않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누적 적자액만 5억8430만달러에 달해 단 5개월 만에 2021~2022년 연간 적자 규모를 넘어섰다.
美 '특허괴물' 공세와 천문학적 수임료
법조계에서는 미국 시장 내 지식재산권(IP) 소송 증가와 선진국 대형 로펌들의 천문학적인 청구 요율(Billing Rate)을 지출 급증의 핵심 원인으로 보고 있다. 손도일 율촌 경영담당 대표(사법연수원 25기)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특허관리전문회사(NPE)들의 IP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며, "미국 탑티어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청구 단가(빌링 레이트)가 높아 한 건당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의 자문 및 소송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법률수지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선진국 로펌과의 엄청난 수임료 격차도 적자 폭을 키우는 주된 요인이다. 다른 대형로펌의 국제그룹장은 "국내 로펌들도 선진국 법률 시장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며 글로벌 역량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 기업들은 이중 비용과 신뢰도 문제로 해외 로펌을 직접 찾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규제 촘촘한 美·유럽… '현지법' 장벽
법률 업무의 특성상 로컬법(현지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불가피하게 적자 규모를 키우는 요소다. 현지 법인 설립, M&A 실사, 라이선스 취득 등은 철저히 현지 법률과 인허가 기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갈등, 미국 수출 규제, 조세 관련 보조금 이슈 등이 불거지며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현지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요구된다. 예컨대 동남아 진출의 경우 국내 로펌의 해외 지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부 유출 없이 원스톱 소화가 가능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현지 규제가 워낙 촘촘하고 까다로워 현지 로펌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전언이다.
해외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법률서비스 수입이 수년째 9억달러대에서 정체된 점은 적자 폭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과거에 비해 굵직한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투자) 성격의 거래나 펀드 투자가 눈에 띄게 정체되면서, 국내 법률 시장으로 새롭게 유입되는 자금이 막대한 해외 지출 규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로펌, 비용 누수 차단 안간힘
국내 로펌들은 해외 자문 역량과 투자를 늘리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김앤장,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 화우, 지평 등 대형 로펌들은 현지 주요 기관과의 네트워크와 규제 환경에 대한 축적된 경험으로 해외 로펌과 협업하더라도 서면 작성부터 협상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대규모 합작법인 설립 등의 업무에서도 한국 로펌이 전체적인 소통을 전담하고 필요한 이슈에 대해서만 미국 로펌의 조언을 받아 고액의 비용 청구를 원천 차단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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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지평 국제그룹장(연수원 31기)은 "한국 로펌이 현지 로펌을 통제하고 딜과 계약 협상을 주도하면 할 수록 균형추를 한국 로펌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핵심을 수행하고 부족한 부분만 현지 로펌에 부탁하는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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