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2.0]③책상 지키는 AI, 현장이 답이다
AI 시대 MD 생존전략
현장 불만은 AI가 해결못해
콘텐츠 강화도 현장서 찾아야
서울 롯데마트 본사에서 하루를 시작한 1998년생 주재영 롯데마트·슈퍼 수산팀 회·초밥 담당 MD는 쉴 새 없이 전화기 벨이 울렸다. 그의 아침은 '소통'으로 시작된다. 전국 대형점과 중형점, 소형점의 수산 담당자들과 잇달아 통화하며 회 상품의 선도와 품질, 판매 상황을 일일이 점검한다. 수산물은 하루만 지나도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매장 직원들의 세심한 관리가 곧 상품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장 점검도 빼놓지 않는다. 주 MD는 원물 품질을 확인하고 소비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노량진수산시장을 수시로 찾는다. 롯데마트 수산 코너 운영 방식이 외부 협력사가 직접 판매하는 수수료 방식에서 본사가 원물을 직접 매입해 전 점포에서 상품화하는 '직매입 체제'로 바뀌면서 MD의 역할도 더욱 커졌다. 대량 매입으로 원가를 낮추는 동시에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지 가격을 확인하는 일도 매일 반복된다. 제주와 노량진, 인천 등 주요 산지에 직접 전화를 걸어 광어 시세를 확인하고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 주 MD는 "여러 산지의 시세를 비교해야 협상에서도 적정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직접 발품을 팔고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 결국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점포 직원들과의 끈끈한 인간관계와 실시간 소통이 핵심이다. 인공지능(AI)가 점포 현장의 불만이나 미세한 선도 저하까지 다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 MD는 "하루에만 50~60통의 전화를 받는다. 밤낮도, 쉬는 날도 없지만 현장과의 스킨십과 열정이 없으면 신선 MD는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양평점에서 주재영 롯데마트·슈퍼 수신팀 상품기획자(MD)가 점포 수산 담당자와 상품 판매 현황 및 고객 반응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예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완판 만드는 '감성 소구'…"책임감은 AI가 대체 못해"
모니터 너머 데이터가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은 실시간으로 분당 매출이 찍히는 홈쇼핑 라이브 방송 현장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롯데홈쇼핑의 간판 프로그램 '최유라쇼'를 담당하는 9년차 황효은 주방팀 MD의 하루는 PD, 쇼호스트, 협력사와의 치열한 '팀플레이 미팅'으로 채워진다. 1시간 방송에 목표 매출만 5억~6억원에 달하다 보니, 물량 세팅부터 마케팅 포인트(USP) 선정까지 MD의 개입과 책임감이 절대적이다.
특히 주방용품은 글로벌 소싱의 경우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황 MD가 론칭해 완판을 기록한 프랑스 명품 칼 브랜드 '리옹 사바띠에'는 기획부터 방송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프랑스 현지 공장을 직접 방문해 수작업 제조 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유럽인 손에 맞춘 칼의 셰이프와 사이즈를 "한국 등 아시아인 체형에 맞게 줄여달라"고 오더메이드 설득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황 MD는 "홈쇼핑의 주 타깃인 5060 세대에게 물건을 팔려면 단순한 기능 반복 안내가 아니라 '감성 소구'가 핵심인데 이는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특히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매스(Mass) 고객을 대면하고 심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에, 회사와 협력사 사이에서 조율하는 MD의 '책임감'과 '인간적 신뢰'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뷰티 시장은 감성적 요소가 지배하는 분야"
CJ올리브영도 마찬가지다. AI와 데이터 분석 도구의 발전으로 판매 데이터뿐 아니라 검색어, 리뷰, SNS 반응 등 다양한 이종 데이터를 참고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 수요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그러나 올리브영 MD들은 "뷰티 시장은 단순히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성적 요소와 트렌드 변화가 지배하는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AI는 기존에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추천을 해줄 뿐이다. 아직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해 데이터조차 쌓이지 않은 인디 브랜드나 신상품의 성장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고객 니즈와 숨은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장에 제안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MD의 고유 영역이라는 뜻이다.
'콘텐츠' 경쟁력 키우는 오프라인 전통 유통 채널인 백화점 MD는 직접 성수와 홍대, 이태원 등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팝업스토어와 입점을 제안한다. 어떤 브랜드를 들이고, 어떤 팝업을 열고, 어떤 콘텐츠를 결합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MD의 판단이 좌우한다.
백화점 간 경쟁도 콘텐츠 선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화제성 높은 팝업스토어를 잇달아 선보이고, 대형 지식재산권(IP) 콘텐츠를 유치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입점 제안을 검토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지금은 현장에서 브랜드를 발굴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며 "SNS에서 화제가 되는 브랜드를 먼저 찾아가 미팅을 제안하고 경쟁사보다 먼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다.
7~8년 경력 베테랑 MD 수요는 늘어
유통업계는 경력을 갖춘 MD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협상과 조율, 협력사 관리, 브랜드 육성은 경험에서 나오는 역량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대형 유통기업들은 신입보다 실무 경험을 갖춘 경력 MD를 중심으로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 초년생들이 전문몰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대형 유통사로 이동하는 경력 경로가 자리 잡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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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한 헤드헌팅 관계자는 "AI 덕분에 일부 매뉴얼이나 단순 전산 작업은 대폭 줄어들 수 있겠지만, MD의 진짜 역할은 내부 유관 부서와 업무를 조율하고 협력업체들과 긴밀한 직접 소통을 통해 양사에 도움이 되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일"이라며 "결국의 흐름을 유통에 옮길 수 있는 실행력과 실행 기반의 협상력, 소통 능력이 MD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신입보다 적어도 7~8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 노련한 네트워크를 가진 베테랑 MD에 대한 니즈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크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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