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열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前 숍CJ 법인장이 본 인도의 속살
"수출보다 투자, 속도보다 관계가 중요"

냉장고가 하늘로 올라갔다. 신시열 당시 CJ오쇼핑 인도 법인장이 현지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삼성 양문형 냉장고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은 4층. 현지 직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잠시 뒤 사다리차 대신 인부 여덟 명이 왔다. 그들은 밧줄과 도르래를 걸고, 포장도 뜯지 않은 냉장고를 건물 외벽을 따라 천천히 끌어올렸다.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저자인 신시열 씨엔에스 네이처 대표. 허영한 기자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저자인 신시열 씨엔에스 네이처 대표.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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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그는 인도 시장을 이해한 첫 교본처럼 기억한다. "인건비가 워낙 싸니까 사다리차 한 대보다 사람 여덟 명을 쓰는 거예요. 그래서 인도에서는 공장 자동화도 생각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계가 더 합리적인 사회가 있고, 사람이 더 싼 해법이 되는 사회가 있다. 같은 문제라도 가격과 시간의 질서가 다르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신 대표는 코닥 미국 본사와 CJ·한솔 등에서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했고, 2012년부터 약 5년간 CJ오쇼핑의 인도 합작법인 숍CJ를 이끌었다. 신간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는 인도 전망서라기보다, 현장에서 사람을 뽑고 상품을 팔고 조직을 운영하며 배운 시행착오의 기록에 가깝다. 그는 인터뷰 첫머리부터 말했다. "인도통인 제가 생각해도 너무 어렵고 힘든 시장입니다."

한국 기업은 인도를 말할 때 자주 숫자에서 출발한다. 14억 인구, 젊은 노동력, 높은 성장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 대표는 "수세미 하나씩만 팔아도 14억 개"라는 식의 계산을 가장 경계한다. 인도는 28개 주로 나뉘고, 언어와 종교, 소득과 유통망이 다르다. 우타르프라데시주 한 곳의 인구만 2억 명을 넘는다. 그는 "2억 명이 넘는 주에도 단일한 STP(Segmentation·시장 세분화, Targeting·표적 시장 선정, Positioning·위상 정립의 약어)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희윤의 책섶]냉장고가 하늘로 올라갔다…'14억 인도'라는 달콤한 착각 원본보기 아이콘

가격도 쉽지 않다. 지난해 뉴델리에서 만난 한 여성 화장품 바이어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 제품을 정말 수입하고 싶어요. 대신 중국 가격으로 주세요." 신 대표도 웃으며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답했지만, 돌아서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고 했다. 품질은 한국을 원하고, 가격은 중국을 원한다. 그 간극을 버티지 못하면 인도 소비재 시장은 금세 막힌다.


그런데 다른 장면도 있다. 2014년 한 호텔 식당에서 그는 옆자리 여성이 대학생 조카 여덟 명에게 똑같은 구찌 토트백을 하나씩 건네는 모습을 봤다. 다르면 다툴까 봐 같은 제품을 여덟 개 샀다는 것이다. 한국 제품을 중국 가격에 달라는 바이어와 명품 가방 여덟 개를 한자리에서 나누는 가족. 둘 다 인도다. 평균으로는 이 나라가 잘 잡히지 않는다.

일하는 속도도 다르다. '노 프라블럼'은 문제가 없다는 보증이 아닐 수 있다. '원 미닛, 서'의 1분은 한 시간이 되거나 다음 날로 넘어가기도 한다.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몸짓도 한국인의 눈에는 거절처럼 보인다. 신 대표도 처음에는 그것을 거짓말이나 태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도에서 화를 내는 상사는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책과 인터뷰에서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한 원칙은 짧다. "화내면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느긋함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책은 아니다. 신 대표가 말하는 기다림은 태도가 아니라 전략에 가깝다. 한국 기업은 빠른 매출과 손익을 원하지만, 인도는 그렇게 열리지 않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삼성·LG·현대차가 1990년대 중반 들어가 뿌리내리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잠깐 들어가 뭘 빼먹겠다는 생각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인도 마하슈트라에 설립된 현대자동차 인도 푸네공장 생산라인. 신시열 대표가 말한 인도 비즈니스의 핵심은 ‘빨리 파는 일’보다 ‘오래 뿌리내리는 일’에 가깝다. 수출품을 넣으면 매출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과 투자로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현대자동차그룹

인도 마하슈트라에 설립된 현대자동차 인도 푸네공장 생산라인. 신시열 대표가 말한 인도 비즈니스의 핵심은 ‘빨리 파는 일’보다 ‘오래 뿌리내리는 일’에 가깝다. 수출품을 넣으면 매출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과 투자로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현대자동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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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넥스트 차이나'라는 말을 조심한다. 중국처럼 대량 수출로 풀겠다는 기대가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한국 사이에는 매년 무역 불균형이 생긴다. 인도 입장에서는 한국 제품이 계속 들어와 적자를 만드는 구조다. 신 대표는 물건만 팔 게 아니라 공장, 산업단지, 인프라, 금융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배를 탄 동반자라는 몸짓을 보여줘야 합니다."


AI 시대의 인도도 같은 방식으로 봐야 한다. 인도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강하고, 한국은 제조업과 하드웨어에 강하다. 신 대표는 데이터센터를 예로 들었다. GPU와 냉각 장치, 전력 설비, 전선, 장비가 모두 필요하다. 인도가 AI 인력의 나라라면, 한국은 그 AI를 떠받칠 물리적 기반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추상적인 협력이 아니라 공장과 전력과 장비의 문제다.


그는 인도가 자신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시장이기도 하고, 스승이기도 하고,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주 크고 전망 좋은 시장이지요. 하지만 내가 뭘 빼먹을 수 있는 과자나 빵은 아닙니다. 그곳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어울렁더울렁 더불어 살면서 같이 커나가야 합니다."


순진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신 대표가 말하는 진정성은 마음씨가 아니다. 먼저 들어가고, 오래 버티고, 상대의 속도에 맞춰 손실을 견디는 시간이다. 냉장고는 결국 4층에 올라갔다. 여덟 사람이 아래에서 줄을 잡고, 누군가는 위에서 조금씩 당겼다. 인도 시장도 그렇게밖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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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 신시열 지음 | 이콘 | 240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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