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창업국가의 첫 조건은 정부에 대한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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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대 10억원의 사업화·투자 연계까지 내세운 과감한 시도다. 청년실업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인공지능(AI)이 산업과 일자리의 구조를 빠르게 바꿔 가는 지금, 더 많은 국민의 창업을 장려하겠다는 방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선정 과정에서 지원자 정보가 유출돼 큰 비판을 받았지만, 사고와 별개로 창업 국가를 지향하는 정책적 시도 자체는 박수받아야 한다.


다만 한 번의 선발 행사와 지원금만으로 창업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세계의 인재와 자본이 모이는 이유도 정부 지원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창업으로 세상을 바꾸고 큰 부를 이룬 사례가 반복되고, 그 성공이 다시 새로운 창업과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창업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 흔해지면 뛰어난 인재들은 의대나 대기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다. 창업 국가를 만드는 것은 지원금이 아니라 창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믿음이다.

그 믿음의 첫 조건은 정부에 대한 신뢰다. 창업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시도해볼 일은 아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가족의 우려를 감수하고 투자자의 자금을 맡아 수년간 불면의 밤을 지새워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고통의 길이다. 창업자는 이미 시장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을 감수한다. 여기에 정부가 언제 규칙을 바꿀지, 발표한 일정이 실제로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위험까지 더해진다면 누가 창업에 뛰어들겠는가. 창업자는 규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규제가 엄격하더라도 기준과 일정이 명확하면 투자할지, 기다릴지, 철수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약속이 계속 미뤄지면 기업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한 채 비용만 감당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큰증권이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2월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시장은 이를 제도화의 출발 신호로 받아들였다. 기업들은 인력을 채용하고 플랫폼을 개발했으며 투자도 유치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은 약 3년 뒤에야 국회를 통과했고 시행은 다시 1년 뒤로 예정됐다. 그 사이 규제 샌드박스에서 시장을 개척한 일부 1세대 조각투자 기업은 사업을 접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모든 실패를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업성과 자본력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길을 열겠다고 약속한 뒤 정식 제도로 건너가는 다리를 제때 놓지 못했고, 그 사이 개척자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도 시행을 기다리다 시장에서 퇴장하는 사례가 반복될수록 인재는 창업보다 의대나 대기업 같은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자산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대선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약속됐다. 금융위원회도 법인 거래의 단계적 허용과 디지털자산기본법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다. 법인 참여는 일부 자산 처분에 머물러 있고, 현물 ETF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구체적인 시행 일정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올해 1분기 국회 통과를 공언했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거래소 지분규제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부안조차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몇 년째 신중한 검토를 이어가는 동안 일부 기업은 법인을 청산했고, 일부는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기업들 또한 매달 임차료와 인건비를 감당하며 속타는 심정으로 정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시간, 미국은 이미 다음 시장을 만들고 있다. 32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지니어스(GENIUS)법을 통해 제도권에 편입하며 달러의 국제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이 비정형 증권의 토큰화를 제도화하는 데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미국의 핵심 증권 인프라인 DTCC 산하 DTC는 러셀1000 종목과 주요 ETF, 미국 국채를 토큰화하는 서비스를 올해 10월 정식 출시할 예정이다. 이는 미술품이나 부동산 같은 비정형 자산을 넘어 미국 자본시장의 핵심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려는 시도다. 단순한 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정부가 결론을 내리고 실행하는 속도가 앞선 것이다. 한국이 제도화의 첫 단계를 논의하는 동안 미국은 이미 다음 시장의 표준을 만들고 있다. 이 속도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과 자본, 인재의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창업자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지원금이 아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로드맵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정책의 지연은 창업자에게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정책은 발표가 아니라 실행으로 완성된다. 정부의 약속을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제도 시행 전에 문을 닫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아무리 많은 지원금을 뿌려도 뛰어난 인재들은 창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창업 국가의 첫 조건은 더 많은 지원이 아니다. 정부의 약속은 지켜진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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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윤 디에스알브이랩스(DSRV)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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