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튼 브라운·바이레도부터 자체 브랜드까지
향으로 고객 기억 사로잡는다
국내 5성급 호텔들이 객실 어메니티(편의용품)를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브랜드 자산으로 육성하고 있다. 객실 경쟁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향'을 앞세운 감각 경험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는 동시에, 이를 호텔 밖에서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확장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14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주요 럭셔리 호텔들은 최근 객실 어메니티에 글로벌 프리미엄 향 브랜드를 적극 도입하거나 자체 브랜드(PB)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호텔 시장은 객실 규모와 시설, 수영장, 라운지 등 하드웨어 경쟁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브랜드 경험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했다. 특히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직접 연결돼 있어 고객이 호텔을 오래 기억하도록 만드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침대와 조식이 호텔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고객이 호텔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기억을 가져가느냐가 브랜드 가치를 결정한다"며 "어메니티는 고객이 호텔 브랜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접점"이라고 말했다.
15년째 같은 향 쓰기도…글로벌 향 브랜드와 손잡는 호텔
서울 신라호텔은 영국 프리미엄 브랜드 '몰튼 브라운'을 2011년부터 객실 어메니티로 도입해 지금까지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왕실의 인증을 받은 명품 향수로 유명한 몰튼 브라운은 도입 당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랜드였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바디케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신라호텔은 호텔 1층에 몰튼 브라운 매장을 별도로 운영하며 객실 경험을 실제 구매로 연결하고 있다.
롯데호텔앤리조트의 시그니엘 서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 '딥디크'를 어메니티로 꾸렸다. 시그니엘 오픈 당시 국내에서 희소성이 높았던 브랜드로, 시그니엘의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와 부합해 선정됐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조선 팰리스는 바이레도의 '르 슈망' 컬렉션을 사용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르 슈망은 럭셔리 컬렉션 전용으로 제작돼 조선 팰리스에서만 제공된다. 프랑스어로 '길'을 뜻하는 이름처럼 여행에서 마주하는 모험과 희망을 담았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웨스틴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화이트 티 알로에 컬렉션'을 운영 중이다. 친환경 용기와 비건 원료를 적용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웰니스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파르나스호텔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IHG)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따라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발 다프리크' 라인을 객실에 적용하고 있다.
'호텔 향'도 자체 브랜드 시대
외부 브랜드와의 협업 대신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롯데호텔이다. 롯데호텔은 자체 브랜드 '에미서리.73(Emissary.73)'을 개발했다. '사절(Emissary)'과 호텔롯데 창립연도인 1973년을 결합한 브랜드로 글로벌 향료 전문기업과 약 2년간 협업해 호텔별 시그니처 향을 개발했다. 샴푸,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바디로션, 핸드워시 등 객실 어메니티에 적용한 뒤 고객 반응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공식 온라인몰을 통해 일반 소비자 판매도 시작했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은 SK그룹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수페(Soofee)'를 객실 어메니티로 사용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원료를 적용한 비건 화장품으로 '숲의 청정함을 경험하다'를 콘셉트로 개발됐으며, 숲을 그대로 담은 듯한 자연의 향을 통해 호텔 경험을 일상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JW 메리어트 서울도 호텔만의 브랜드 경험을 반영한 어메니티를 객실에 적용하고 있다. 글로벌 체인 호텔이지만 고객이 객실에서 경험하는 향과 사용감을 브랜드 정체성의 일부로 전달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더 플라자는 2010년 국내 특급호텔 중 가장 먼저 '향기 마케팅'을 시작했다. 시그니처 향인 '퍼퓸 데 브와'는 유칼립투스와 플로럴 향을 조합해 깊고 풍부한 숲속의 향을 선사한다. 다수 고객들의 요청으로 2015년 디퓨저로 출시됐다. 이후 룸스프레이와 핸드크림을 차례로 내놓으며 제품군을 넓혔다.
객실 경쟁 심화…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는 호텔
호텔업계가 향을 둘러싼 브랜드 경쟁에 나서는 배경에는 수익구조 변화가 있다. 객실 공급 확대와 경쟁 심화로 숙박 매출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지면서 식음료(F&B), 멤버십, 웰니스에 이어 라이프스타일 상품 판매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객실 서비스의 일부였던 어메니티는 최근 향수와 디퓨저, 캔들, 바디케어 제품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하며 독립적인 브랜드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객이 호텔에서 경험한 향을 일상에서도 소비하도록 유도해 체크아웃 이후에도 브랜드와의 접점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실제 롯데호텔의 에미서리.73은 올해 2분기 판매율이 전 분기보다 18%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객실이 프리미엄 향 브랜드에는 체험형 쇼룸 역할을 하고, 호텔에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PB 상품 판매까지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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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향은 다른 서비스보다 모방이 어렵고 브랜드를 일상으로 확장하기 쉬운 자산인 만큼 앞으로 호텔들이 자체 향 브랜드와 라이선스 사업을 더욱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향뿐 아니라 침구, 가운, 디퓨저, 캔들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해 호텔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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