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부장' 3분 액션 장면 100% AI 제작
가요계 작곡가 절반 이상 가이드보컬에 활용
1월 인공지능기본법 시행에도 표기 의무 빈틈
"학습 데이터·저작권·표시 기준 등 마련해야"
인공지능(AI)이 국내 콘텐츠 제작 현장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배경 처리나 시각특수효과(VFX)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상업 드라마의 핵심 액션 장면을 만들고, 대중음악의 작사·작곡 초안과 가이드 보컬 제작에도 활용되고 있다. 제작 방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저작권 인정 범위와 AI 생성물 표시 기준 등 관련 제도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4분기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콘텐츠 업체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32.1%로 집계됐다. 방송·영상 분야도 31.9%에 달했다. AI 도입 업체의 62.7%는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활용했다. 사업 기획(43.7%)과 콘텐츠 창작(32.8%)이 뒤를 이었다. 생성형 AI가 문서 작성이나 번역 등 단순 보조 업무를 넘어 콘텐츠 기획·창작·제작의 핵심 공정으로 들어온 셈이다.
방영 중인 SBS 드라마 '김부장'은 달라진 제작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2회에 걸쳐 등장한 약 3분 분량의 액션 장면은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 포섭된 주인공 김부장이 북파돼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과거를 그린다. 눈 덮인 도로 위 총격전부터 자동차의 강물 추락, 대형 폭발과 수중 인양 장면까지 이어지지만 주연 배우 소지섭의 실제 촬영분은 한 컷도 없다.
실사로 구현했다면 세트와 야외 로케이션, 폭파 등 특수효과와 후반 VFX 작업에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될 장면이다. 제작사 측은 약 3분의 시퀀스 전체를 AI로 제작해 상업 드라마에 삽입한 국내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류재환 모피어스스튜디오 부대표는 "몇 초짜리 VFX 컷을 AI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시퀀스 전체를 AI로 작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부장'은 제작진이 기획 단계부터 AI 영상을 어떻게 활용할지 목표가 분명했다"며 "AI가 좋은 기획과 스토리를 가진 창작자에게 새로운 창작 도구이자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물론 버튼 한 번으로 영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영상 전문가가 장면을 사전에 설계한 뒤 여러 생성 모델을 조합하고 인물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를 반복적으로 점검한다. 모피어스스튜디오가 지난 2월 출시한 '에이크론'은 프롬프트 입력부터 이미지·영상·음향 생성과 편집까지 여러 AI 모델을 조합해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제작 플랫폼이다.
음악 제작 현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부 제작자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곡의 주제와 감정에 맞는 가사나 후렴구 후보를 얻고, 음악 생성 프로그램으로 멜로디와 리듬의 초안을 만든다.
특히 가수가 정식 녹음에 들어가기 전 임시 음원을 만드는 '가이드 보컬' 작업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작곡가의 목소리를 AI 음성으로 변환해 데모 음원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 K팝 작곡가는 "작곡가의 60~70%가 가이드 보컬 제작에 AI를 쓰고 있다"며 "AI가 여러 대안을 내놓으면 악기를 조율하고 곡의 전체적인 느낌을 결정하는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한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와 앨범 제작에서도 AI 활용 사례가 잇따른다. 그룹 XG의 '이즈 디스 러브(IS THIS LOVE)' 뮤직비디오는 기획 단계부터 AI를 핵심 연출 수단으로 활용했다. 가수 송가인의 신곡 '꽃이 아니면 어떤가' 역시 앨범 이미지와 콘셉트 사진, 뮤직비디오 제작에 AI 기반 기법을 적용했다.
반응은 엇갈린다. 실제 촬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판타지 이미지를 시각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부자연스러운 인물의 움직임과 얼굴, 뭉개지는 질감이 몰입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는 제도다. 배우의 얼굴이나 가수의 목소리를 합성하고 기존 저작물을 AI 학습에 활용할 때 적용할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정비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행 저작권법과 문화체육관광부·한국저작권위원회 안내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단순한 명령어 입력을 통해 생성된 AI 산출물 자체는 저작물로 보호받기 어렵다. 반면 사람이 AI 결과물을 창의적으로 수정하거나 선택·배열해 새로운 결과물을 구성했다면 인간이 기여한 부분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AI 활용 사실을 대중에게 어디까지 공개할지도 숙제다. 지난 1월22일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은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사업자에게 AI 기반 운용 사실과 결과물이 AI로 생성됐다는 점을 알리도록 했다.
다만 외부 AI 서비스를 활용해 영상이나 음원을 제작하는 콘텐츠 제작자는 원칙적으로 직접적인 의무 대상이 아니다. 제작 공정 일부에 AI를 활용했을 경우 이를 작품에 어느 수준까지 표시할지는 사실상 업계 자율 기준과 계약에 맡겨져 있다.
김형석 작곡가는 "이제는 전 국민이 AI로 작사·작곡할 수 있는 시대"라며 "창작 로그 기록과 분배 투명성, 블록체인 기반 관리 체계를 확립하지 못하면 저작권의 주도권이 협회가 아닌 IT 플랫폼으로 넘어갈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AI에는 분명한 '골든타임'이 있다"며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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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음악 프로듀서도 "AI 활용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어떤 저작물을 AI 학습에 사용했는지, 사람이 창작 과정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를 기록하고 기여도에 따라 권리와 수익을 배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 마련이 늦어질수록 창작자는 자신의 음악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저작권 관리의 주도권도 대형 기술 플랫폼으로 쏠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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