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장기 추세선 바뀌기 시작"…김용범의 '脫일본론'
"日의 길 가장 먼저 벗어나는 나라 될 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성장경로에 이미 들어섰는지도"
AI 생산능력·자본시장 개혁 맞물려 성장 문법 전환
"국가가 기업에 우선 공급해야 할 것은 '시간'…병목 적기에 제거해야"
한국 경제가 예정된 미래처럼 여겨졌던 일본식 장기 저성장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 청와대 경제정책 사령탑에서 나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에 따른 일시적 반등을 넘어 생산능력 확대와 자본시장 개혁이 맞물리면서 경제의 장기 추세선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바이바이 동아시아 정체론'에서 "시장은 한국 경제의 장기 추세선을 다시 그리고 있다"며 "한국은 일본의 길을 가장 충실히 따라온 나라에서 그 길을 가장 먼저 벗어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실장은 "경제에는 사이클이 있고 추세가 있는데, 경제사를 실제로 바꾸는 것은 사이클이 아니라 장기 추세의 기울기"라며 "나라의 미래를 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순간은 10년, 2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고 했다.
불과 지난해 초반만 해도 한국의 미래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경로는 일본이었다. 강한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으로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작은 내수시장과 고령화, 취약한 자본시장 속에서 장기 저성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김 실장은 실제로 한국은 2022~2024년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가장 깊은 비관을 통과했다고 봤다.
김 실장은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수출을 짓눌렀고 코스피는 미국 증시와의 동조 흐름이 깨지며 장기간 부진했다"며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고 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이 확산했고, 2024년 말 정치적 혼란까지 겹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를 반도체 사이클, 금융, 정치의 위기가 한꺼번에 밀려온 시기였다며 "한국 경제를 설명하던 단어는 성장보다 쇠퇴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변곡점은 2025년 중반이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실장은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졌고, 공교롭게도 그 변곡점은 새 정부 출범 시점과 거의 겹친다"며 "같은 시기에 AI가 촉발한 반도체 슈퍼사이클도 본격화됐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정책의 방향과 산업 사이클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중요한 것은 2025년의 연간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추세선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출생과 고령화, 가계부채와 수도권 집중, 반도체 의존은 여전히 구조적인 한계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짚으면서도 "우리 자신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성장경로에 이미 들어섰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 역할 강화 예고…"국민 전체 성장으로 이어져야"
아울러 김 실장은 생산능력이 제조업의 엔진을 키우는 작업이라면 앞으로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생산이라는 엔진이 아무리 강해도 그 힘을 전달하는 변속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는 최고 속도를 낼 수 없다"며 "지금 한국이 바꾸려는 것이 바로 그 변속기"라고 밝혔다. 이어 "제조업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강한 제조업 위에 강한 자본시장이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하나 더 얹으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간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기업을 보유하고도 기업 이익이 주주가치와 국민 자산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았다. 김 실장은 가계 자금은 혁신기업보다 부동산으로 흘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는 고착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조업의 생산능력만 높이고 자본시장의 전달 능력을 고치지 못하면 산업의 호황이 국민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면서 "그간 정부가 해온 상법 개정과 자사주 제도 개편, 국민성장펀드와 생산적 금융은 그 성과를 기업가치와 국민 자산으로 연결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만을 한국에 가능성과 경고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했다. 김 실장은 "기축통화도, 거대한 내수도, 대규모 이민도 없는 나라지만 세계 AI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노드를 확보하면서 선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장을 기록했다"고 했다. 다만 "산업의 초격차가 곧 국민 전체의 풍요를 뜻하지는 않는다"며 "수출과 기업이익이 급증해도 그 성과가 소비와 자산, 비(非)IT 산업으로 충분히 퍼지지 않으면 경제는 'K자형'으로 갈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생산능력이 새로운 국력…국가가 적기에 병목 제거해야"
김 실장은 지난 11일 올린 '생산능력이 새로운 국력이다'는 또 다른 페이스북 글을 통해 팹(Fab) 증설은 성장투자이면서 기술격차를 지키는 방어투자라는 논리도 폈다. 김 실장은 "오늘의 공급 부족이 내일의 경쟁자를 키운다"며 "지금 필요한 전략은 경쟁자가 성장한 뒤 가격 경쟁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공급 공백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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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재정지원과 세제 지원도 중요하지만 AI 시대 생산능력 경쟁에서 국가만이 공급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라고 했다. 기업은 팹을 지을 수 있지만 전력망과 용수, 송전망, 국가산단, 교통망과 인허가 절차를 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국가의 역할은 기업을 대신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풀 수 없는 병목을 적기에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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