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OW]망하는 홍보의 비결
AD
원본보기 아이콘

지방자치단체의 홍보가 망하는 데도 지름길이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가 쏟아내는 보도자료를 수년간 받아 본 경험으로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책 대신 사람을 판다. 보도자료 사진 한가운데엔 어김없이 구청장이 서 있다. 정책을 알리는 자료인지, 구청장의 근황을 알리는 자료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홍보의 주어가 '구'가 아니라 '구청장'이 되는 순간 그 홍보는 행정이 아니라 정치가 된다.

둘째, 주민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부지런히 알린다. 구청장이 어느 행사에 참석해 누구와 악수했는지, 어떤 단체를 격려 방문했는지 등의 동정(動靜) 소식이 그것이다. 정작 주민이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우리 동네 골목길 포장은 언제 되는지, 어린이집 대기는 왜 줄지 않는지, 재개발 절차는 어디까지 왔는지. 이런 정보는 뒷전이고, 아무도 묻지 않은 근황만 열심히 배달한다.


셋째, 지나간 뉴스만을 양산한다. 이미 끝난 행사, 몇 달 전 발표한 사업을 표현만 바꿔 다시 내보낸다. 홍보 실적은 건수로 집계되니 내용보다 개수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받아 보는 쪽에선 '또 그 얘기' '그게 그거'라는 피로감만 쌓인다.

이 세 가지를 충실히 따르면 홍보는 확실히 망한다. 문제는 망하는 것이 홍보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자체장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행정가다. 주민 입장에서는 정파를 떠나 일 잘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구정(區政)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주민은 판단할 근거를 잃는다. 결국 구청장의 실제 성적표를 아는 사람은 지역 직능단체장이나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이들 정도로 좁혀진다. 이들은 전체 유권자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95%는 이름과 소속 정당, 그리고 선거철 현수막의 인상만으로 한 표를 던지는 셈이다.


홍보가 인물 자랑으로 흐르고 주민이 구정에서 멀어지는 이 악순환이 지자체만의 책임은 아니다. 관심을 거둔 쪽에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출근길에 달라진 횡단보도, 집 앞 버스정류장의 의자는 어떤지, 새로 생긴 무더위 쉼터, 정비된 골목 하나에 눈길을 주는 데서 구정 감시는 시작된다.


세금은 많이 내는 것 같은데 해주는 게 없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뭘 잘하고 못하는지 성의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떠먹여주지 않는다고 타박할 게 아니라 어디에, 어떤 유익한 밥상을 차려놨는지 둘러보는 관심은 있어야 한다. 정당 색깔이 아니라 일하는 실력으로 단체장을 골라내는 것은 결국 주민의 일이고, 그 혜택도 고스란히 주민 자신에게 돌아온다.

AD

망하는 홍보의 비결은 세 가지지만 흥하는 구정의 비결은 하나다. 주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도 구청도 잊지 않고, 주민 스스로도 자각하는 것이다.


김민진 사회부 지자체팀 부장 ent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