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레텔리에르 암살 관여
지난해 ICE에 체포돼 추방 위기
자국 반정부 인사 암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뒤 40년 넘게 미국에 살며 보호를 받아온 전직 칠레 비밀 요원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추방 위기에 처했다.
11일 연합뉴스는 뉴욕타임스(NYT)를 인용해 70대 고령의 전 칠레 군인 아르만도 페르난데스 라리오스의 사연을 보도했다.
페르난데스의 현 상황을 처음으로 알린 미 조지워싱턴대 부설 탐사보도센터인 '내셔널 시큐리티 아카이브'에 따르면 그의 미국 내 활동 이력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9월 미국으로 잠입한 페르난데스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독재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칠레의 경제학자·외교관인 오를란도 레텔리에르의 미국 내 출퇴근 경로, 차량 정보, 사무실 위치 등을 수집한 뒤 이를 다른 칠레 요원에게 넘기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2주 뒤 레텔리에르는 워싱턴DC에서 미국인 동료와 함께 차량 폭탄 테러로 숨졌다. 1987년 페르난데스는 다른 암살 공모자 6명과 함께 살인 가담 혐의로 기소됐으나 칠레 정부는 그를 미국에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페르난데스와 접촉해 그를 설득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페르난데스는 1987년 1월 칠레를 떠나 브라질로 가 그곳에서 미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았다.
페르난데스는 브라질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자신은 레텔리에르를 감시하려는 목적이었으며 살인에 가담할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가 계속되자 그는 당시 테러가 피노체트가 개입된 활동이었음을 인정했다. 결국 페르난데스는 1987년 2월 외국 공무원 살인 사건 사후 방조 혐의로 27개월에서 8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페르난데스가 수감되자 미 국무부는 가석방 위원회에 그의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결국 그는 수감 5개월 만에 석방돼 칠레 추방을 면한 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최근까지 거주해왔다.
페르난데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끈질긴 자백 요구와 초고속 석방의 배경에는 냉전 당시 칠레 등 중남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미국 정보기관들의 노력과 뒤틀린 양국 관계가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70년 남미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하자 이를 무너뜨릴 방법을 고심했다. 이후 1973년 군인이었던 피노체트는 CIA의 막후 지원 속에 쿠데타에 성공했다. 이후 미 행정부는 피노체트 정권이 인권 유린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하지만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취임하며 피노체트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 레텔리에르 테러 사건까지 터지자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이 페르난데스의 자백 등을 근거로 레이건 대통령에게 칠레 정책을 변경하도록 설득했다는 게 NYT의 설명이다.
석방 후 페르난데스는 레텔리에르 암살 개입 외에도 1970년대 피노체트 정권의 대량 학살에 관여한 혐의로 2003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판결을 받기도 했으나 이행을 거부하고 미국에서 거주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끝까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페르난데스의 희망과 다른 현실이 닥쳐왔다. 그는 2005년 사법기관의 증인 및 정보제공자를 위한 특별 비자를 신청했지만, 체류만 허가됐을 뿐 특별 비자는 발급되지 않았다. 특별 비자 발급 요청이 거절된 뒤 20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ICE는 페르난데스를 자택에서 체포한 뒤 마이애미 구금 시설로 이송했다. 지난 1월 미 국토안보부는 페르난데스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면서 그를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NYT는 "미국 정부는 칠레와의 관계가 오랫동안 나빠졌음에도 페르난데스를 냉전 시대의 유용한 협력자로 여겼다"며 "결국 그는 추방돼야 할 범죄자가 됐고, 이는 미국의 동맹관계와 우선순위가 얼마나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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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의 추방 여부는 다음 달 5일 재판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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