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통제권 갖겠다는 트럼프
유럽 방위비 인상 발표에 기분 풀려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올해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사용해선 안되는 금기어로 '월드컵'이 선정됐다고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정상회의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절대 꺼내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존심을 굽혀가며 미국팀 승리를 위해 나섰지만 미국의 8강행이 끝내 좌절되면서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이었다고 한다.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린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신화연합뉴스

신화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유럽 정상들이 이런 암묵적 합의에 이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중미 월드컵과 관련해 국제적 논란과 조롱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7일 열린 미국과 벨기에의 16강전이었다. 미국 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이 직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출전 정지 상태가 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기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자국 선수의 징계 문제로 FIFA 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 FIFA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뒤 징계 유예 결정을 내렸고, 발로건은 16강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국제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했다는 공정성 논란이 즉각 불거졌다.


문제는 결과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체면을 걸고 나섰던 그 경기에서 미국은 벨기에에 4-1로 대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전 세계 소셜미디어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이미지가 쏟아졌다.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가 좋을 리 없다는 판단에, 나토 사무총장과 유럽 정상들이 사전에 입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나토회의 시작부터 그린란드 통제권 포문 연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그러나 유럽 정상들의 조심스러운 준비가 무색하게,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 개최지인 튀르키예 앙카라에 도착하자마자 유럽 국가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이란 전쟁 당시 유럽이 미국을 돕지 않아 나토에 크게 실망했으며, 오히려 유럽 국가들보다 튀르키예가 더 많은 도움을 줬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소유권 문제를 다시 꺼내 들며, 이번에는 한층 노골적으로 '그린란드가 미국의 통제를 받아야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나토 유럽 회원국들이 이를 계속 반대할 경우 유럽에 주둔한 미군을 모두 철수시킬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눈앞에 둔 유럽으로서는 가장 아픈 곳을 정면으로 찌른 셈이다. 회의 초반이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냉랭하게 출발한 정상회의는 끝날 무렵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반전의 계기는 회의 이후 발표된 '앙카라 정상회의 선언'이었다. 유럽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대폭 올리기로 약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을 사실상 수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 전부터 나토가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으로 국방비를 인상하라고 압박해 왔다. 그동안 상당수 서유럽 국가들은 '올리는 시늉만 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번 선언에서는 나토 회원국들이 당장 50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신규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산 무기로 채워질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대표단도 이번 방문 기간 개별적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 막바지에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나토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선생님, 사랑합니다'를 합창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준비된 이벤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식이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크게 누그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반의 험악한 기류와 달리 이번 정상회의가 '무사히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성과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고,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 생산 허가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요청해 온 사안이지만, 사거리가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 중심부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미국이 확전을 우려해 생산 허가는 물론 수출조차 막아 왔던 무기다. 이번에 규제가 풀리면서 우크라이나의 전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돈은 있어도 만들 곳이 없다… 유럽 재무장의 딜레마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이번 정상회의는 동시에 유럽 안보의 근본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독일을 중심으로 2030년 이전까지 8000억 유로, 우리 돈 약 1376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재무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의 대미 의존도는 여전히 크다. 재원은 마련할 수 있다 해도, 정작 무기 조달이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보다 무기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종전 이후 안도감과 전쟁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면서, 냉전 종식 이후에는 무기 개발을 사실상 등한시해 왔다. 그 결과 방위산업체들은 크게 위축됐고 생산 공장 대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첨단 방위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은 물론 한국·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밀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심각한 것은 현대전의 핵심으로 꼽히는 드론, 전투용 로봇, 군용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분야를 담당할 기업이 유럽에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유럽에 남아 있는 방산 기업들은 탱크나 구형 전함 같은 재래식 무기는 잘 만들지만, 드론과 군용 AI는 기존 방산업체에 반도체·AI 신기술이 융합된 기업이 필요한데 유럽에는 이런 업체가 거의 전무하다. 돈이 있어도 만들 수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에서 방위 전략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미국이나 다른 동맹국에서 무기를 수입해 와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미국 역시 이란 전쟁으로 무기 소모가 많아 자체 주문량조차 다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유럽이 지금 주문을 넣어도 언제 인도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오히려 드론과 로봇 생산 시설을 크게 늘렸다. 러시아가 2029년께 기존 전력을 회복하고 유럽으로 확전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남은 시간은 3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 미국이 유럽 주둔 병력을 크게 감축하거나 전력을 축소하면 유럽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정말 나서 줄 것인가'… 흔들리는 나토 5조의 신뢰

유럽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한 뒤 언제 확전에 나설 것인가, 그리고 그때 미국이 나토 방위조약 5조에 따라 실제로 군사 개입에 나서 줄 것인가다. 과거의 미국 정부라면 개입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방위조약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그린란드처럼 동맹국이 소유한 영토마저 미국에 필요하면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계도 유럽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극도로 나빴던 미·러 관계와 달리, 현재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위한 각종 회담을 개별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특사가 이란뿐 아니라 러시아를 오가며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공식적으로 관계를 정상화한 상태에서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확전을 걸어올 경우, 미국이 정말 나서 줄 것이냐는 의구심이 유럽 내에서 커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미국의 여력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미국은 현재 이란 전쟁에 상당히 발목이 잡혀 있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던 전력의 상당수를 이란 쪽으로 돌려놓은 상태다. 설령 개입 의지가 있더라도 당분간 유럽 방면에 직접 나서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AD

이런 판단 속에 유럽에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자강론이 힘을 얻으며 자체 안보 투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자강 체제가 완비되기 전에 러시아가 먼저 움직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뾰족한 답이 없다. 결국 유럽이 기다리는 것은 미국의 다음 대선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친(親)유럽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지 못한다면 유럽의 안보 환경이 한층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월드컵이 금기어가 됐던 이유[시사쇼] 원본보기 아이콘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