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그후]③"쿠팡 따라가지마"…대형마트의 생존공식
규제 손질은 필수, 상품·체험 강화
전문가들 "쿠팡보다 마트만의 강점 키워야"
"대형마트를 살릴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습니다."
국내 대형마트 임원은 10일 청산 위기에 몰린 홈플러스 사태를 진단하며 이같이 말했다. 유통 시장은 급변하는데 10년 넘게 영업 규제가 계속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유통 규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손질하는 동시에 대형마트가 온·오프라인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규제 개선은 기업이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일 뿐, 소비자가 다시 찾는 매장을 만드는 것이 생존을 좌우한다는 진단이다.
앞으로 5년 유통시장 지각변동…대형마트 규제 풀어야
최우선 정책 과제는 영업규제 완화다. 2012년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온라인 유통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쿠팡을 중심으로 유통시장이 온라인으로 재편됐고,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상품 탐색부터 구매까지 대신하는 'AI 에이전트 커머스'까지 등장했지만 규제는 당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연승 한국마케팅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시장은 온라인으로 이동했는데 대형마트 규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교수는 "최근 대형마트는 임대 매장 비중을 늘리며 유통업보다 부동산업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면서 "의무휴업 규제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도 입점 소상공인의 생존과 연결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도 올해 초부터 협의체를 구성해 대형마트 규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회에는 온라인 주문 상품의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업계는 새벽 배송뿐 아니라 출점 제한과 의무휴업도 함께 풀어야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점포를 새벽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려면 자동화 설비와 물류 시스템, 추가 인력 등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규제 아래서는 투자비 회수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일요일은 대형마트의 핵심 영업일로 평일보다 매출이 15~50% 많다"며 "의무휴업은 하루 매출이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신선식품 재고 회전율을 떨어뜨리며 냉장·냉동 설비는 계속 가동돼 비용만 발생하는 등 운영 효율까지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완화는 매출 확대보다 운영 효율을 높이고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국 대형마트 351개 점포 가운데 218곳(62%)이 월 두 차례 일요일 의무휴업을 하고 있다. 전국 1600여 개 기업형슈퍼마켓(SSM)도 약 60%가 같은 규제를 받고 있으며, 대형마트와 SSM은 모두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된다.
다만 규제를 푼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충렬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의무휴업 폐지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노동 문제 등이 얽혀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규제가 일부 완화되면 숨통은 트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유통 환경 변화에 맞는 전략과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제 개선 방식도 일률적인 제도 변경보다 지역 여건을 반영한 유연한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진국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투자평가실장은 "의무휴업일을 주말로 할지 평일로 할지는 지방자치단체와 상인들이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면서 "현행 법령에서도 지역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 평일 전환이 가능하지만,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 중심 경영, 해외에도 눈 돌려야
승부는 소비자가 다시 찾는 매장을 만드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온라인과 똑같은 서비스를 따라하기보다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마트는 식품 경쟁력과 그로서리 강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롯데마트도 식품 특화 매장 확대와 점포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에 추가 투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이소 관계자는 "올리브영이나 다이소가 잘 되는 이유는 젊은층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경험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대형마트가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점포 혁신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장명균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커머스가 할 수 없는 경험을 얼마나 제공하느냐가 앞으로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신선식품 경쟁력을 높이고 체험형 공간, 키즈카페, 문화강좌 등 지역과 연결되는 생활밀착형 콘텐츠를 강화해야 고객이 다시 매장을 찾게 된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사태가 남긴 또 다른 과제는 경영 체계다. 장 교수는 "유통을 이해하는 장기적인 경영보다 투자금 회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대형마트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산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와 전문성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1인 가구 증가와 온라인 경쟁 심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규제 개선과 함께 투자 여력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대형마트가 온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며 "온라인을 따라가기보다 신선식품과 가족 단위 쇼핑과 같은 오프라인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강화하는 것이 대형마트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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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만으로는 대형마트 산업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구 감소와 소비 둔화로 내수 시장이 축소되는 만큼 해외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국 실장은 "내수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온라인과의 경쟁에만 매달리기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유통기업 해외 진출 지원사업을 통해 향후 3년간 기업들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할 계획인 만큼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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