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퇴근하는 좌석버스가 새 기종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천장 부근에 달린 하차 벨이었다. 설치하는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었겠지만, 앉아서 이동해야 하는 승객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모양새다.
정책과 제도 설계에도 수요 중심의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시장에 승부를 거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오려면, 투자와 제작의 선순환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조세제도를 비롯한 핵심 정책이 콘텐츠 산업이 가지는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는 문화와 경제라는 이질적 특성이 결합돼 있다. 계량화나 평가가 어려운 창의성에 대해 '시장'이 성과를 결정하는 구조인 만큼, 일반산업을 기준으로 마련된 제도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는 생산설비를 늘리면 똑같은 제품을 반복 생산할 수 있고, 공정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식당 같은 서비스업도 숙련된 인력과 운영 시스템을 갖추면 일정한 품질과 수익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콘텐츠는 같은 상품을 반복 생산할 수 없고, 창의성을 표준화할 수도 없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지원이란 결국 불확실성에 대한 완충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드라마 편당 제작비가 30억원을 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게임 제작비 지출액 평균액도 최근 4년 사이 400% 넘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제작비는 수익 발생 이전에 투입된다. 제작비를 많이 투입했다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없다. 흥행에 실패하면 손실은 고스란히 업체의 부담으로 남는다. 실패 위험을 수반한 대규모 콘텐츠 투자에 대해, 조세지원 제도를 통한 일정 부분의 비용 환급은 혁신을 장려하는 중요한 장치다.
물론 모든 산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조세지원 제도가 있다. 콘텐츠 기업 역시 수혜가 가능하다. 중소기업 등에 대한 특별 세액감면이나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적용되는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제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콘텐츠 기업의 활용은 제한적이다. 게임업체 대상으로 한 콘진원의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 등에 대한 특별 세액감면의 경우 13.5%, 연구개발 세액공제의 경우는 약 23%가 신청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의 일반 산업군의 평균 활용률이 대략 30~40%이고, 특히 기술 제조업은 50~60%로 알려진다. 상대적으로 콘텐츠 분야가 일반기업과 비교해 자격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개발 개념이 여전히 기술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경우, '출시' 이전의 모든 기획·개발·제작 과정, 가령 디자인, 캐릭터, 시나리오 구성 등이 연구개발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콘텐츠 기획 과정을 연구개발 관점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고,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주 인력에는 공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에 물리적 요건을 다소 완화하기는 했지만, 별도의 창작연구소 설립과 전담 인력 배치, 연구 노트 작성 등과 같은 기준은 중소 규모 콘텐츠 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기획과 창작 과정 자체가 핵심 경쟁력인 콘텐츠 산업에 일반 제조업을 기준으로 설계된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면, 미래 성공을 위한 선행 투자라는 점에서 '제작비' 기준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갈 필요가 있다. 현재 영상과 웹툰에 일부 적용되고 있는 제작비 세액공제를 게임과 음악 등 다른 콘텐츠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콘텐츠를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정책의 기준도 콘텐츠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지원은 특정 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장동력과 소프트파워에 대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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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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