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의 거짓말
금리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금융의 욕망이 가장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조나단 비어는 적정 금리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대출 시장으로 들어간다. 암호화폐 생태계가 내세운 높은 수익률은 혁신의 증거처럼 보였지만, 책은 그 아래 깔린 신용 구조와 담보, 유사 예금 모델,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의 취약한 연결고리를 추적한다.
2021년 수익률 버블과 2022년 대붕괴를 따라가다 보면, 문제는 암호화폐만의 일탈이 아니라 금융이 반복해온 오래된 착각에 닿는다.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꿨고, 이자는 공짜 돈이 아니라 누군가가 떠안은 불확실성의 가격이었다. 금리의 역사에서 셀시우스 붕괴, 지분증명 수익률까지 이어지는 구성은 다소 전문적이지만, 암호화폐 시장을 탐욕의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 금융의 압축판으로 보게 한다. (조나단 비어 지음 | Ark 127 옮김 | 논스랩)
둠루프
세계화는 한때 모두를 부유하게 만드는 약속처럼 언급됐다. 에스와르 S. 프라사드는 그 약속이 어떻게 불평등, 보호무역, 정치 양극화, 미·중 패권 경쟁을 서로 밀어 올리는 파멸의 고리로 바뀌었는지 추적한다. 무역과 자본의 흐름은 협력의 통로가 아니라 무기가 됐고, 달러 패권은 미국의 불안정성에도 여전히 세계가 붙잡는 기묘한 안전장치로 남는다.
시야는 넓다. 통화 경쟁, 국제기구의 약화, 중견국의 외교, AI와 디지털 화폐의 위험까지 한꺼번에 묶어 세계질서의 균열을 읽는다. 다만 모든 위기를 하나의 순환 고리로 설명하는 만큼 독서의 밀도는 높고, 낙관은 적다. 그래도 혼돈을 개별 사건이 아니라 경제·정치·지정학이 서로 물고 도는 구조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묵직하다. (에스와르 S. 프라사드 지음 | 박재영 옮김 | 21세기북스)
주식 투자의 그릇
주식은 숫자의 게임처럼 보이지만, 처음 계좌를 여는 사람에게 먼저 닥치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후지모토 시게루는 직장과 집에서 흔들리는 40대 가장 신페이가 90세 현역 트레이더를 만나 투자에 입문하는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수익, 심리, 기준, 결단, 직관, 기회로 이어지는 구성은 주식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돈 앞에서 겁먹은 사람의 시야를 넓히는 데 가깝다.
시게루의 조언은 화려한 종목 발굴법보다 오래 시장에 남는 태도 쪽에 기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고, 두려움은 대개 모르는 데서 오며, 투자는 결국 자기 판단을 키우는 일이라는 메시지다. 투자 경력 71년의 고수담이라는 포장은 다소 드라마틱하지만, 초보 투자자가 손실의 공포와 첫 수익의 흥분 사이에서 배워야 할 기본기를 이야기로 낮춘 점은 읽기 쉽다. (후지모토 시게루 지음 | 박선영 옮김 | 다산북스)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
여름은 길어 보이지만, 사실 금세 닳아 없어지는 시간에 가깝다. 권혜영의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는 퇴사 뒤 실업급여로 버티는 인물의 무중력 같은 시간을, 김혜진의 '줄넘기'는 이별 뒤 공원을 맴도는 인물이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을 붙잡는다. 희귀 띠부씰과 미끄럼틀, 매일 같은 자리의 줄넘기처럼 사소한 사물과 행동이 여름의 이상한 리듬을 만든다.
두 편 모두 큰 사건보다 반복의 미세한 흔들림에 기대어 움직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시간,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지나고 나면 조금 다른 자리에 가 있다. 워터프루프북이라는 형식까지 더해져, 이 책은 휴가철 장식품처럼 가볍게 보이지만 실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품은 조급함과 상실감을 오래 붙잡는다. (권혜영·김혜진 지음 | 민음사)
파시즘 신화
파시즘은 거짓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그보다 더 끈질긴 힘, 곧 신화를 본다. 프로이트와 보르헤스, 칼 슈미트를 나란히 세워 파시즘이 어떻게 이성과 사실의 자리를 증오와 초월의 서사로 바꿔치기했는지 추적한다. 무솔리니에게 헌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프로이트의 곤혹스러운 장면은, 반파시스트 지식인조차 신화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책의 밀도는 가볍지 않다. 정신분석, 문학, 법학, 정치신학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보르헤스의 문학적 미궁과 슈미트의 친구-적 구분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파시즘의 어두운 심장을 비춘다. 그래도 오늘의 정치가 다시 강한 지도자, 음모론, 가짜뉴스, 적대의 신화에 기대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 난해함은 우회로가 아니라 필요한 길처럼 읽힌다. 파시즘은 과거의 괴물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쉬운 이야기로 바꾸려는 욕망 속에서 되살아난다. (페데리코 핀첼스타인 지음 | 안규남 옮김 | 에디투스)
나르시시즘 문화
나르시시즘은 더 이상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의 성격만을 뜻하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래시는 이 말을 시대의 증상으로 밀어 올린다. 공동체가 약해지고, 역사 감각이 사라지고, 정치적 무력감과 소비문화가 일상을 덮을 때 사람들은 타인과 세계보다 자기 보존과 자기 연출에 매달린다. 1970년대 미국 사회를 해부한 고전이지만, SNS와 자기계발 담론이 넘치는 지금 더 섬뜩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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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속내 들켰다" 韓청년들의 '주식 집착'…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나르시시즘을 남의 병으로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나, 더 안전한 나, 더 매력적인 나를 관리하라는 시대의 명령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신에게 매달리면서도 더 공허해진다. 래시의 문장은 쉽지 않지만, 질문은 선명하다. 자기 자신을 끝없이 돌보는 사회는 왜 타인과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리는가. (크리스토퍼 래시 지음ㅣ김태희 옮김ㅣ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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