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차' 기다리던 테슬라 차주들이 소송에 나선 이유[테슬라 독주…현대차 반격]
"9년째 완전자율주행 미구현"…계약해제 요구
FSD 환불 관련 전세계 첫 정식 판결 주목
테슬라 "도입 시점 약속한 적 없어…지연은 규제 탓"
"테슬라는 FSD(Full Self-Driving) 때문에 사는 거죠."
지난 2020년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테슬라 전시장. 모델X 계약서를 작성하던 황윤구 법무법인 동인 대표변호사는 영업 담당자가 확신에 찬 어조로 건넨 이 말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고 주차까지 마치는 '완전자율주행'의 세계. 어릴 적 SF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 자동차를 실제로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황 변호사는 차량 가격 외에 1000만원에 달하는 FSD 옵션을 주저 없이 추가했다. 차량 가격을 모두 합하면 1억 500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도 황 변호사가 구매한 FSD는 국내에서 사실상 '먹통'인 상태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기능을 제외하면 당시 설명 들었던 완전자율주행 기능은 여전히 구현되지 않았다. 국산 차량에서는 수십만원짜리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는 '좁은 주차장에서 차량 앞·뒤 원격 제어'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동인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난 황 변호사는 "결국 천만 원짜리 옵션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며 허탈해했다.
수년째 FSD 활성화를 기다리다 참다못한 황 변호사가 차량 구매처와 테슬라코리아에 내용증명을 보내며 FSD 도입 로드맵을 요구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무책임한 메아리였다. 대표이사 명의도 없이 회사 직인만 달랑 찍힌 답변서에는 "정부 규제와 승인 문제 때문"이라는 원론적인 핑계만 적혀 있었다. 센터에 문의해도 누구 하나 책임 있게 설명하는 직원이 없었다.
글로벌 거대 기업의 불성실한 태도는 결국 집단소송으로 이어졌다. 황 변호사가 테슬라 동호회 카페에 소송 동참을 제안하자, 순식간에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이 몰렸다. 현재 이 소송에는 황 변호사를 포함한 99명의 차주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테슬라 FSD 매매대금 반환 청구 소송단'이 꾸려진 배경이다. 소송을 직접 대리하는 법무법인 동인의 황 변호사는 이번 사안의 본질이 '기술 개발의 지연'이 아닌 '명백한 계약 위반'에 있다고 못 박았다.
황 변호사는 "테슬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아주 작은 글씨로 국가별 규제 상황에 따라 FSD 제공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면책 공지를 해왔다. 하지만 언젠가 제공된다고 해서 소비자가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리적으로 이는 '불확정 기한부 계약'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행 시기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 언젠가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계약인데, 대법원 판례상 이런 계약은 '상당한 기간' 내에 이행돼야 한다"면서 "자동차 자체 보증기간은 4년인데, 테슬라가 국내에서 FSD를 판매한 지는 벌써 9년 가까이 됐다. 차 수명이 다해 폐차하거나 중고로 팔 시점이 될 때까지 옵션을 쓰지 못했다면, 이는 명백한 채무불이행이자 불완전 이행이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져 온 재판은 테슬라의 FSD 도입 시점 고시 여부와 국토교통부 규제에 따른 이행 지체의 귀책 사유 여부 등이 쟁점이다. 테슬라코리아측은 "차량 구매계약서에 '특정 시점까지 레벨5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해 제공한다'는 내용의 확정적 약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홈페이지에 '일부 지역에서는 FSD 실제 적용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면서 기능 구현 지연의 원인을 국토부 규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 5월 진행된 변론에서도 테슬라 측은 2019년 홈페이지 광고 자료를 제시하며 "FSD 옵션에는 오토파일럿, 자동차선 변경, 자동 주차, 차량 호출 등의 기능이 포함돼 있었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미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고들이 계약 전체 해제를 요구한다면 이미 구현된 기능까지 모두 없던 것으로 돌리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차주들은 "차량 자체나 하드웨어를 반환하라는 것이 아니라 FSD 프로그램 옵션 계약 자체를 해제하겠다는 것"이라며 "당시 단순 오토파일럿이 아니라 완전자율주행을 기대하고 900만원 이상 옵션 비용을 지급했다"고 맞서고 있다.
테슬라 코리아 홈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FSD 기능과 관련해 '일부 관할 지역에서는 규제 인가에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테슬라 코리아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최근 테슬라가 구형 차량(하드웨어 3.0)을 타깃으로 출시가 거론되는 'FSD 라이트(Lite) 버전'에 대해서도 황 변호사는 "본질을 흐리는 상술"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소비자가 구매한 것은 부분 자율주행이 아니라 완전자율주행 옵션"이라며 "라이트 버전 역시 핵심 기능을 다 빼놓고 시늉만 내겠다는 건데, 수박을 샀는데 호박을 주면서 계약을 이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는 16일 진행되는 최종 변론에서 테슬라 측은 FSD 라이트 버전 도입 가능성에 따른 '일부 기능 이행' 주장과 국토부의 규제를 이유로 귀책 사유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너만 월급 140만원 더 줄게, 대신"…대기업도 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테슬라의 FSD 과장 광고 및 사망 및 부상 사고 등과 관련한 소송이 수십건이 진행 중이다. 다만 미국은 계약서 내 '소송 금지 및 중재 조항'으로 인해 법원 판결이 아닌 중재판정소의 환불 결정만 있었고, 영국 역시 소액 사건 수준에 그쳤다. 따라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은 FSD 환불을 둘러싼 '세계 최초의 합의부 정식 판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올가을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