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의 쇼크웨이브]'로봇이 스스로 골을 넣었다'‥K축구로봇, 값진 첫승 의미
첫 한국 개최 로보컵 2026…로봇들의 '축구 제전'
첫골, 첫승‥한국팀 순위는 낮았지만 자체 제작 로봇으로 성과
승부는 중국 로봇과 중국팀의 절대 우위
한국도 로봇 몸체 기술은 뒤졌지만 AI로 추격 시간 벌 수 있어
지난 3일 오후 3시50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 마련된 한양대와 에이로봇의 '히어로즈'팀 로봇 축구 경기가 시작됐다. 비록 인간 축구 경기는 아니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한국팀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관중들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객석을 메웠다.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로봇 '앨리스5'는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걸음걸이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지켜보는 이들도, 연구자들도 불안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로봇이 쓰러지는 것을 대비해 휠체어도 대기했다.
그래도 경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 로봇이 축구공을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 골대를 향해 볼을 찼다. '골인'이 선언됐다. 한국 로봇이 로보컵에서 기록한 첫 골이었다.
앨리스5가 첫 골을 기록한 순간 '와!'하는 탄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였다. 정식 게임 전 연습상황에서도 불안한 모습이었던 엄 대표의 얼굴은 '이제 됐다'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관중들도 '넣었다'며 환호했다. 로보컵 휴머노이드 대형 리그에서 우리가 기록한 첫 골 장면이다.
◆ 8년 전 스키장에서 넘어지던 로봇, 첫 골 이어 첫 승리까지= 로봇들의 축구대회인 '로보컵 2026'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렸다. 정식 경기는 2일부터 3일간 진행됐다. 이번 대회에 45개국 364개팀, 2879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기업, 대학 소속 연구진들로 구성된 팀마다 정성 들여 인공지능(AI)으로 학습시킨 로봇을 동행하고 대회에 출전했다.
대회의 핵심은 축구였다.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이 상대편 골대에 축구공을 넣어 승리하는 것은 인간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인간 축구대회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중국팀이 이번 대회의 상위권을 독차지한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개최된 로봇 스키 대회에 출전한 한양대-에이로봇팀의 '다이애나'가 질주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대회 규정상 통과해야 하는 적색과 청색 기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채 펜스와 충돌, 완주에 실패했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원본보기 아이콘기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로봇 스키대회에 참가한 한양대팀 로봇의 스키 질주를 지켜봤었다. 당시 로봇은 스키 국가대표 출신 연구원의 도움을 기반으로 완주를 노렸지만 완주에 실패했다. 8년을 시간이 지난 후 같은 연구진들이 만든 축구 로봇은 첫 골을 기록하고 첫 승도 거뒀다. 비록 결선 라운드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출생한 지 갓 한 달여가 지난 앨리스5와 한양대·에이로봇팀에는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지켜본 휴머노이드 로봇들도 실수 연발이었다. 공을 향해 걷다가 옆으로 넘어졌고, 방향을 틀다 주저앉기도 했다. 골문 앞에서 한참을 멈칫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환호하다가도 탄식했다. 관객들은 넘어진 로봇 움직이면 놀랐고, 넘어졌다 일어나면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반응과 "아직 완벽하진 않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한양대 에이로봇 팀이 로보컵 2026에 출전한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로봇이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넘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지만 최초의 골과 첫 승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원본보기 아이콘로보컵 휴머노이드 축구 리그 공식 결과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대형 부문 우승은 중국 칭화대 팀이 차지했다. 2위는 중국농업대, 3위는 베이징정보과학기술대였다. 한국팀은 이 리그에서 경쟁했지만, 중국의 높은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중국팀들은 자국산 상용 로봇인 부스터 로봇틱스(Booster robotics) 제품을 활용했다. 인간 팀원들은 축구를 하는 AI만 개발하면 된 것이다. 반면 한양대·에이로봇팀은 로봇 개발과 AI 학습을 함께해야 했다.
한양대·에이로봇 팀원들이 로보컵 2026 기간 중 앨리스5 로봇을 보행시키고 있다. 지난 5월 조립이 완료된 앨리스5는 대회 기간에도 학습을 이어가며 보행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사진=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페이스북
원본보기 아이콘대회장을 점령한 중국 로봇들은 키가 1.2m 정도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다. 반면 한양대 에이로봇팀의 엘리스5 는 1.7m나 됐다.
부스터 로보틱스 로봇이 축구 경기에 특화한 손잡이 등으로 연구진들을 편하게 했다면, 앨리스는 키가 커 연구팀이 다루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런데도 한양대·에이로봇팀은 성인 남성 크기의 로봇으로 대회에 당당히 참가했다.
중국팀은 지난해 대회와 비교해 더 강해졌다. 공식 결과표에 따르면 대회를 2연패 한 칭화대 팀은 결승에서 중국농업대 팀을 6대 2로 꺾었다. 칭화대 팀은 예선 라운드에서도 상대편을 절대적인 격차로 격파했다. 칭화대팀은 전술적으로도 타 팀을 압도했다.
중형로봇 경기 부문에서는 독일팀이 우승하며 축구 명가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역시 중국 로봇을 이용해 대회에 참가해 완전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성적만 보면 우리 팀의 성과가 아쉬울 수 있다. 1승1무3패. 앨리스5는 대형 부문 최종 순위에서 1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귀한 첫 골과 첫 승은 연구진의 땀과 눈물이 빚어낸 결과다. 세계 정상과의 격차를 확인했지만, 희망도 얻었다.
◆ 중국 로봇은 벽이지만 춤추는 로봇과 축구 경기를 하는 로봇은 달라=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보인 것은 역시 중국 로봇이었다. 중국 인민일보는 대회 참가 38개 팀이 부스터 로보틱스 로봇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중국 로봇들은 대형, 중형, 소형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축구 로봇은 국내에도 공급된다. AI 기능과 성능에 따라 가격 차가 있지만 수천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다"고 전했다.
경기 관람 전에는 중국산 로봇의 압도적 우위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같은 중국산 플랫폼을 갖고 나왔어도 어떤 팀은 로봇이 공을 향해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인간처럼 포메이션 전략도 구사했다.
반면 어떤 팀은 로봇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좋은 하드웨어가 있더라도 경기력이 다른 이유는 각자 만들어낸 경기용 AI의 수준차다.
다양한 영상을 통해 퍼진 중국 로봇들의 칼군무와 텀블링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감독의 전략 부족으로 본선 32강에 가지 못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습이 연상됐다.
휴머노이드 축구의 승부는 결국 AI와 제어 소프트웨어에서 갈렸다. 공을 인식하는 능력, 자기 위치를 추정하는 능력, 넘어진 뒤 복구하는 능력, 보행 중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 어느 방향으로 슛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모두 맞물려야 했다.
로봇들은 사람처럼 몸싸움도 해야 했고, 넘어지기도 했다. 제대로 AI가 작동한 로봇은 스스로 일어나 다시 경기를 뛰었다. 그렇지 못한 로봇들은 사람에 의해 끌려 나왔다.
음악에 맞춰 로봇들이 군무를 추고, 무대 위에서 사람처럼 동작을 따라야 하는 장면은 강화학습 기반 동작 생성 기술이다. 하지만 축구장은 무대와 달랐다. 정해진 음악도, 정해진 동선도 없었다.
공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굴렀고, 상대 로봇은 앞을 막았고, 로봇들은 서로 부딪혔다. 같은 편 로봇에 패스하거나, 상대편의 골을 뺏기도 쉽지 않다. 강화학습으로 춤추던 중국 로봇들도 스스로 경기하기 위한 AI는 완벽하지 않았다.
◆한국팀, 직접 만든 로봇의 성과= 한양대·에이로봇 팀의 앨리스5는 1승 외에도 큰 성과를 남겼다. 앨리스5는 경기 외 시간 행사장을 걸어 다니며 관객들의 시선을 받았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보행과 축구 능력이 향상돼갔다. 이런 성과는 '최고 자체 개발 휴머노이드 로봇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앨리스5는 키가 1.7m나 된다. 성인 남성 수준이다. 이는 고위험·고강도 산업 환경에서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키가 큰 로봇은 물리 법칙상 균형 제어와 정밀 제어가 어려운 데다 신속하게 기동하는 것도 불리하다.
개발 주역인 한재권 한양대 교수는 아쉬움과 가능성을 함께 밝혔다. 한 교수는 "마지막 경기, 정말 장렬하게 잘 싸웠고 모든 로봇이 투입된 총력전이었다"며 "완성된 지 한 달 남짓 된 새로운 버전의 로봇 앨리스5는 이번 로보컵 대회를 통해 실전 완성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이어 "이제 어떤 곳이든 잘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그 짧은 시간 이렇게나 빠르게 로봇을 완성해내는 우리 연구원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에서 엄 대표가 개인 특별상인 '실비아 코라데스키 로보컵 상'을 수상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 상은 로보컵 창립 이사이자 초기 기획 선구자인 고(故) 실비아 코라데스키 교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로보컵 커뮤니티 발전과 로봇공학 분야에 기여한 여성 공학자에게 수여된다. 엄 대표는 남편인 한 교수와 함께 한국 휴머노이드 산업 발전을 위해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엄 대표는 첫 승을 '값진 승리'라고 표현했다. 엄 대표는 이제 태어난 지 딱 한 달 열흘 된 앨리스5가 대회 첫날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넘어졌다고 회고했다. 엄 대표는 "거꾸로 고꾸라지며 머리가 부러져버린 앨리스들을 우리 하드웨어 연구원들이 밤을 새워 다시 되살려냈다"며 "그사이 소프트웨어 연구원들은 보행을 완성했다"고 했다. 그는 "단 하룻밤 만에 로봇을 되살려내는 건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난관을 극복하고 다음 날 경기에서 앨리스5가 스스로 서고, 걷고, 공을 찼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7m짜리 거구의 로봇이 핸들러 없이 스스로 축구를 한 것"이라며 "그것도 100% 자율 축구 경기"라고 했다. 그는 이어 "3차전 경기 결과는 3대 0, 앨리스가 드디어 첫 승리를 거뒀다"며 "대회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산 로봇에 대항해 처음으로 가져온 승리였다. 값진 승리"라고 밝혔다.
엄 대표는 "이번 로보컵의 가장 큰 성과는 보행을 완성했다는 것"이라며 "언젠가 사람과 공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가는 길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가 남긴 숙제도 분명하다. 한국 로봇은 성장했지만 분명한 격차도 있고 추격 가능한 지점도 확인했다. 명현 카이스트(KAIST) 교수는 "로봇 분야에서 AI의 챗GPT나 알파고처럼 극적인 순간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아직은 극복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고 했다.
명 교수는 난제로 축구 경기중 군집 대형이나, 다른 로봇과의 협업 같은 예를 들었다. 명 교수는 특히 "하드웨어 부분은 우리도 따라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결국 승부는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AI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넘어지는 로봇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한국 휴머노이드 산업의 상황은 위기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공급망, 독일의 축적된 소프트웨어, 미국의 AI 연구 생태계와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로봇이 스스로 골을 넣는 장면은 한국이 아직 이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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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컵 2026의 최종 순위표는 중국의 승리였지만, 중국 로봇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2018년 스키장에서 넘어지던 로봇을 봤던 기자에게, 2026년 인천 축구장에서 본 첫 골은 대단한 전진이었다. 로보컵은 2050년 인간 수준의 축구 로봇을 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한국 휴머노이드가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면 이루지 못할 목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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