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를 넘어 '판단'으로…AI가 바꾼 공장 풍경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5월 27일 부산시 강서구 화전산업단지에 소재한 조선기자재 업체 한라IMS에서 관계자로부터 지능형 자율유지보수 통합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산업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5월 27일 부산시 강서구 화전산업단지에 소재한 조선기자재 업체 한라IMS에서 관계자로부터 지능형 자율유지보수 통합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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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조업의 인공지능(AI)은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 AI는 연구개발(R&D)을 돕고, 설비가 멈추기 전에 이상을 감지하며, 숙련 작업자의 눈을 대신해 불량을 찾아낸다. 사람이 수십 년간 축적한 경험을 학습해 의사결정까지 지원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제조 AI 전환)는 더 이상 미래의 개념이 아니라 제조 현장에서 진행 중인 변화다.


8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지원한 산업 AI 솔루션 실증사업 사례를 보면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 업종은 달라도 AI가 향하는 방향은 비슷했다. AI가 공장의 한 공정을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R&D부터 생산, 품질관리까지 제조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R&D는 빠르게, 생산라인은 안정적으로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된 곳은 생산라인이 아니라 연구소였다. 반도체 장비기업 주성엔지니어링은 사내 폐쇄망 기반 생성형 AI를 구축해 R&D에 활용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방대한 기술문서와 설계 자료를 일일이 찾는 대신 AI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즉시 검색하고 설계 과정에 활용한다. 반복적인 자료 검색에 쓰던 시간을 줄이고 연구와 설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가 실험 결과까지 예측하는 체계로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KIAT 관계자는 "제조 AI가 생산라인보다 R&D 단계에서 먼저 성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AI가 기업의 기술 자산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라인에서는 AI가 설비를 지켜본다. 자동차 부품업체 화신은 전기차 배터리팩 케이스 생산공정에 AI 기반 예지보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설비에 부착된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징후를 미리 알려주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설비가 멈춘 뒤 원인을 찾고 수리했다면 이제는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정비 시점을 알려준다.


성과도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AI는 설비 이상을 최대 72시간 전에 예측했고, 작업자는 적기에 공구를 교체하면서 돌발 정지를 사실상 없앴다. 화신은 향후 5년간 약 28억원의 비용 절감과 2500억원 규모의 신규 수주 기반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M.AX로 가는 길②] AI, 공장의 '눈'이 되고 '머리'가 되다 원본보기 아이콘

사람의 눈도 AI가 배우기 시작했다

품질검사는 제조업에서 숙련도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공정 가운데 하나다. 작은 흠집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랜 경험이 필요했고, 검사 결과도 작업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조선기자재 기업 동화엔텍은 열교환기 용접 과정에서 발생하는 형상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분석해 품질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품이 완성된 뒤 불량을 확인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 과정에서 품질 이상을 미리 찾아낸다. AI 도입 이후 검사시간은 약 30%, 재작업은 약 20% 줄었다.


화학업체 율촌화학도 AI 비전 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필름 생산공정에서 수천 개의 클립을 작업자가 일일이 확인하던 업무를 AI가 대신 분석한다. 검사 시간은 30분 이내로 단축됐고 판독 정확도는 95% 이상으로 높아졌다. 회사는 이를 통해 연간 약 10억원 규모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AI의 역할은 생산 공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조의 출발점인 원료 관리에도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강업체 와이케이스틸은 AI 기반 철스크랩 비전 솔루션을 도입해 원료 검수 체계를 바꿨다. 철스크랩 검수는 오랫동안 작업자의 경험에 의존해왔지만, AI가 반입 원료의 종류와 등급을 자동으로 판정하면서 데이터 기반 검수 체계로 전환됐다.


AI 도입 이후 육안 검수와의 판정 일치율은 90% 이상으로 높아졌고, 5명의 작업자가 10개 야드를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납품업체와의 등급 분쟁도 줄었다. 단순히 작업 효율을 높인 것이 아니라 공급망 신뢰까지 높인 셈이다.


제조 AI, 이제는 확산의 시간

업종은 다르지만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AI가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쓰던 판단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구원의 설계를 돕고, 설비 고장을 예측하며, 품질을 미리 판단하고, 원료를 분석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더 이상 공정을 자동화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장의 '눈'이자 '머리'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많은 중소·중견기업은 자금과 전문인력, 데이터 품질 문제로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M.AX 얼라이언스와 MINI 얼라이언스를 추진하는 이유도 AI 혁신을 산업단지와 협력업체, 지역 제조 생태계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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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IAT 원장은 "AI는 몇몇 첨단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핵심은 일하는 흐름(워크플로)을 개선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제조기업에 특화된 AI 해결책을 적극 확산하고, 산업 공통 문제 해결을 위한 제조 관련 정보자료의 공유·활용 생태계 구축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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