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ARA 미공개 기록 222쪽 기증받아 공개
"1947년 독도는 한국 일부로 확립"…전후 독도 자료 보강
1948년 독도 폭격 사건 당시 미군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미국 기밀문서가 확인됐다. 전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미국 측 문서가 시기와 기관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 자료는 미군 내부 조사보고서가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확인·수집한 독도 관련 미공개 기록 222쪽을 기증했다고 7일 밝혔다. 자료에는 미국 극동공군사령부(FEAF)가 작성한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Report of Bombing of Liancourt Rocks) 등이 포함됐다.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은 독도의 서양식 명칭이다.
핵심은 1948년 6월 24일 작성된 FEAF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1947년 9월 리앙쿠르 암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됐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취지의 문구가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보고서는 1948년 6월 8일 미 공군의 폭격 훈련으로 독도에서 조업하던 한국 어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다뤘다.
독도 폭격 사건은 광복 이후 독도와 관련해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꼽힌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오키나와 기지를 출발한 미 공군 B-29 폭격기들이 독도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고, 조업 중이던 어민 1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부상자와 선박 피해 규모는 당시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건 직후 국내외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번 문서는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 이후 독도가 어떤 행정·군사적 인식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SCAPIN 677호는 일본의 통치 영역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1947년 독도는 미군 폭격연습장으로 지정됐고, 1948년 실제 폭격 훈련 과정에서 한국 어민 피해가 발생했다.
전갑생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자료 수집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그동안 일본은 독도가 미군 폭격연습장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독도에 대한 일본 측 권원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번 FEAF 보고서는 폭격 사건을 조사한 미군 내부 문서가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적었다는 점에서 기존 일본 측 주장과 다른 사료적 의미를 갖는다. 보고서에는 독도를 포함한 폭격장을 사용할 경우 사전에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통보하도록 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자료만으로 전후 미국 정부의 독도 인식 전체를 단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1951년 8월 딘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가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이른바 '러스크 서한'에는 독도가 "한국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없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겼다. 일본 정부는 이를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로 제시해 왔다. 반면 국내 연구자들은 러스크 서한이 비공개 외교문서였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최종 법적 판단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결정적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해 왔다.
학계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 자체도 복합적으로 해석한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의 초기 미국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 영토 범위에 포함됐으나, 1949년 말 이후 초안에서는 일본 영토로 보거나 명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연구가 있다. 최종 조약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하면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예시했지만 독도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 공백이 이후 한일 간 해석 충돌의 근거가 됐다.
이번 자료에는 1946년 울릉도사가 경상북도 지사에게 보고한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의 건' 문서와 울도군수 심흥택 보고서 필사본도 포함됐다. 심흥택 보고서는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뒤 울도군수가 "본군 소속 독도"라는 표현으로 관련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 내용은 기존에 알려졌지만, 낱장 문서 형태로 새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자료가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전후 독도 관련 1차 사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보완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폭격 사건의 책임 소재를 넘어, 당시 미군이 독도를 어떤 행정권과 관할권의 공간으로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전 교수는 "자료가 방대하고 디지털화가 이뤄지지 않아 하나하나 확인하며 사료를 수집했다"며 "이번 자료가 독도 연구와 교육에 잘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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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은 독도체험관 기획전시를 통해 이번 사료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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