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MD의 생존전략
데이터 분석 등 업무시간 대폭 단축
"예측불가능 신선식품 눈으로 직접 확인"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한 전복 가두리 양식장. 초복을 보름여 앞둔 바다에서는 어민들이 전복 먹이인 다시마를 양식장 안으로 넣고 있었다. 잠시 뒤 바닷속 그물망이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자 손바닥만 한 전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날 GS더프레시 수산 상품기획자(Merchandiser·MD) 김광태씨는 장화를 신고 양식장 가장자리로 다가가 전복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먹이로 쓰는 다시마 상태와 양식장 관리 방식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이날도 그의 하루는 새벽 첫 KTX를 타는 것으로 시작됐다. 서울에서 나주까지 이동한 뒤 차량과 배를 갈아타고 청산도까지 왕복 이동거리만 약 1000㎞. 성수기에는 이런 일정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이어진다.


'유통의 꽃' MD가 진화 중이다. 인공지능(AI)이 상권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파악해 수요 예측과 가격 결정까지 맡게 되면서 가장 먼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등 반복 업무를 AI에 맡기고 상품 기획과 신규 브랜드 발굴, 협력사와 소통, 소비자 경험 확대를 위해 '현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는 위기론이 확산하는 시점에서 유통업계의 AI전환(AX) 실태를 점검하고 유통 시장의 미래를 예측했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위치한 GS더프레시 전복지정양식장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위치한 GS더프레시 전복지정양식장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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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업무 파트너"… 업무 시간 대폭 단축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22년 11월30일 미국의 오픈AI가 인류 첫 생성형 AI 챗GPT를 공개한 뒤 상품 발주를 넣고 판매 실적을 점검하는 일상은 지금도 MD의 몫이다. 다만 일하는 방식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판매 데이터를 정리하고 경쟁사 가격을 비교하며 검색 트렌드를 일일이 분석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다면, 이제는 AI가 그 과정을 대신한다. 생성형 AI는 회의록을 작성하고 상품 설명 초안을 만들며 마케팅 이미지 시안까지 그려낸다.


AI로 인해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MD의 시간'이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MD 업무에서 트렌드 조사부터 AI를 도입했다. 과거에는 패션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오가며 검색량과 키워드를 직접 취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가 검색량 데이터와 핵심 키워드를 자동으로 분석해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 노자민 무신사 커머스 유니섹스남성실장은 "예전에는 트렌드 리서치에 하루 8시간 중 1~2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AI가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며 "구글 미트(Google Meet) 회의 내용도 AI가 자동으로 요약해 파트너사에 전달할 수 있어 불필요한 행정 업무가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컬리 역시 AI를 생산성 향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도입한 '크리에이티브 AI(Creative AI)'는 프로모션 배너와 상품 소개 페이지 제작 등 반복적인 시각 작업을 지원한다. 기존에는 MD와 디자이너, 마케터가 여러 번 수정 작업을 했던 업무를 AI가 상당 부분 보조하면서 부서 간 협업 속도도 빨라졌다. 컬리 관계자는 "크리에이티브 AI 도입으로 MD들은 반복적인 제작 업무보다 상품 소싱과 큐레이션 전략 수립 등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위치한 GS더프레시 전복지정양식장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위치한 GS더프레시 전복지정양식장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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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예측 불가능"…산지서 만들어진 100원의 차이

MD는 이렇게 단축된 업무 시간을 현장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김 MD가 이날 완도를 찾은 이유도 초복을 앞두고 전국 매장에 공급할 전복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국내 전복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완도는 여름철이면 대형마트 MD들의 발길이 가장 바쁜 곳이다. 6월 말부터 추석까지의 기간이 1년 전체 전복 소비량의 약 5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대목이기 때문이다. 최근 전복이 대중화되어 연중 소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보양식 수요가 몰리는 여름철 물량 확보는 유통사의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과거에는 유통사 MD가 산지를 이만큼 자주 찾지 않았다. 유통망 권력을 쥔 대형 유통업자에게 산지 공급업자들이 직접 찾아와 납품을 애원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전국의 산지 시세와 품질, 가격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소비자나 경쟁사가 가격을 비교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경쟁사보다 100원이라도 싸고 신선한 차별화 상품을 내놓으려면 MD가 산지 시세 동향을 샅샅이 공부하고 발로 뛰어야만 하는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김광태 GS더프레시 수산 MD가 전복 먹이인 다시마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한예주 기자

김광태 GS더프레시 수산 MD가 전복 먹이인 다시마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한예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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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생물(生物)을 다루는 수산 시장은 알고리즘이 침범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는 예측 불가능한 시장이 됐다. 예전에 많이 잡히던 어종이 사라지는가 하면, 제주 바다에나 있던 난류성 참다랑어가 최근 완도·통영 앞바다에서 무더기로 잡히는 등 특수성이 강하다. 태풍 한 번에 조업이 전면 중단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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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MD는 "바다는 변수가 너무 많아 AI를 깊게 쓸 수가 없다"며 "어떤 바다에서 양식하는지, 먹이(다시마·미역)는 뭘 먹이는지, 가두리 양식장 물 칸을 몇 개나 쓰고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품질을 가르는 차별화 포인트인데, 이건 현장에서 직접 보고 어민들과 스킨십을 하며 얘기해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선식품 MD들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전남 완도군에 위치한 GS더프레시 협력사의 전복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전남 완도군에 위치한 GS더프레시 협력사의 전복 모습. 완도=한예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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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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