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반도체는 광주로 "그럼 우리지역은"…이제 '지역 몫 나누기' 정치의 시작?
성장동력 광주 집중 현실로…동부권·중서부권 보상 논리 본격화 예상
군공항 이전·원전·용수 문제 산적…영광 원전 건립 등 새로운 변수 등장
각 지역별 요구 총족시킬 균형발전 비전 없을 시 지역갈등 우려
정부가 광주군공항 부지를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로 결정하면서 입지 논란은 사실상 종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말들이 벌써부터 나온다. 반도체 산업단지 유치 확정과 함께 통합특별시 내부에서는 "광주가 반도체를 가져가는 대신 다른 지역에는 무엇을 줄 것인가"를 둘러싸고 새로운 협상 국면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광주 군공항 부지를 호남권 반도체 산단 후보지로 공식화하면서 정부는 사실상 사업 추진 방향을 확정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 원 규모 투자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광주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생산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군공항 이전과 함께 고도제한 해제, 대규모 산업용지 확보, 첨단산업 집적이라는 효과까지 기대되는 만큼 광주가 가장 큰 수혜지역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6일 광주시청 5층 브리핑룸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의 서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송보현 기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인구와 재정, 일자리, 도시 성장 방향을 좌우할 초대형 국가사업이다. 따라서 광주 이외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우리 지역은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느냐"는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주청사 위치와 행정 기능 배치를 둘러싸고 이어졌던 논쟁도 결국은 권한과 자원 배분 문제였다. 반도체 프로젝트는 이 논의를 훨씬 더 큰 규모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동부권에서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유치 요구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제철소, 광양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산업 기반을 활용하면 화학소재와 첨단소재, 산업가스, 물류산업 등 반도체 연관 산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육성 중인 수소산업과 연계한 에너지 산업벨트 구축 요구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생산기지는 광주가 맡고 동부권은 소재·부품·장비와 수소 산업 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동부청사를 통합특별시 주청사 주소지로 선정한다고 발표된 이후 오히려 지역에선 "달랑 주소지만 놓고 정작 먹고살 길은 없다"는 정서가 확산한 바 있다.
지역 한 정가 관계자도 "석유, 화학 등 기존 산업의 붕괴로 인해 지역경제는 완전한 침체에 늪에 빠져있다"며 "통합이 어렵게 이뤄졌지만 이후 실질적인 변화는 광주만 가져갔고 동부권은 구경꾼이 됐다. 이러한 상황을 희석하려면 뭔가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서부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무안·목포·신안·해남 등을 포함한 중서부권은 군공항 이전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광주 군공항 이전 부담을 안게 될 경우 "반도체는 광주가 가져가고 우리는 희생만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실 신안, 해남을 중심으로 해상풍력 등 '에너지산업' 육성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현재로선 전남도청 기능은 약화했고, 특별시를 통해 얻을 이익도 그만큼 줄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김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수는 언론 등을 통해 "통합특별시 주청사 지정 문제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군민의 자존심을 걸고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에 대해선 "군민의 동의 없는 일방적 추진은 결코 있을 수 없다"며 "정부와 광주가 약속한 지원과 지역발전 사업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군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사업이 되도록 챙기겠다"고 했다.
내용을 보면 통상적인 입장 표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동안 광주 군 공항 문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모든 상황을 함축한 말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사실상 지역 간 '딜(deal)' 국면이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근본 배경이기도 하다.
광주권은 반도체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대신, 동부권에는 소재·부품·장비·수소 산업 등을, 중 서부권에는 공공기관과 행정기능, 국가 인프라 사업을 배치하는 방식의 권역별 역할 분담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특별시 체제에서는 과거 광주시와 전남도가 각각 추진하던 지역발전 전략을 하나의 틀 안에서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프로젝트를 계기로 권역별 발전 청사진을 새롭게 설계하지 못할 경우 지역 간 경쟁과 갈등이 오히려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전력과 용수 문제까지 겹쳐 있다.
반도체 산업단지가 본격 가동되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영광 한빛원전 추가 건설 또는 발전설비 확충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경우에도 "반도체는 광주가, 원전은 영광이"라는 새로운 지역 불균형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용수 공급 역시 영산강 수계와 서남권 수자원 활용 문제와 연결되면서 지역 간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광주 군 공항 부지 선정은 반도체 산업 입지 논란의 종착점이 아니라 통합특별시 내부의 새로운 정치적 협상의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반도체를 어디에 유치할 것인가"가 핵심 의제였다면 앞으로는 "반도체를 통해 발생하는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최대 정치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어떤 권역별 발전 전략과 균형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프로젝트는 통합특별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수도, 지역 갈등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정부 믿고 투자했는데"…끝나지 않는 '죽음의 계...
전남광주특별시 소속 한 관계자는 "이번 반도체클러스터 광주 유치 확정은 어렵게 이뤄낸 전남광주 통합이 성공이나 실패를 가르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며 "애초 통합과정에서 주요 갈등의 이유였던 '광주 집중화'가 실제가 될 수 있는 위기감이 지역 내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균형발전이란 당초 과제가 실현되기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민형배 시장에겐 큰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