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대사를 만나다] "韓·EU, 지정학적 역풍 공통점…경제안보 협력 강화해야"
우고 아스투토 주한 유럽연합(EU) 대사
"한국과 EU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와 선진 경제로서의 수렴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협력해야 한다."
우고 아스투토 주한 유럽연합(EU) 대사는 지난달 29일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유럽 방문과 한·EU 정상회담의 성과를 돌이켜보며 양측의 미래 협력 과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아스투토 대사는 "우리는 지정학적 역풍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제 관계에서 힘이 곧 정의라는 유혹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과 EU는 지난 60여년간 뜻을 같이해온 파트너다. 양측의 협력은 이제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보, 첨단 기술과 녹색·디지털 전환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아스투토 대사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신설된 경쟁력 파트너십과 2+2 무역·경제 대화 그리고 에너지 대화는 양국 경제의 회복력을 높이고 공급망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우고 아스투토 EU 대사와의 일문일답.
-이번 한·EU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와 미래 메시지는.
▲매우 긍정적인 정상회담이었다. 여러 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었으며, 양측 지도자들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발전해온 전략적 파트너십에 더욱 새로운 모멘텀을 불어넣었다. 현재 우리가 지정학적 역풍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만큼, 한국과 EU처럼 뜻을 같이하는 파트너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와 선진 경제로서 수렴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뭉쳐 협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논의가 진전됐는가.
▲양측 지도자들은 무역과 경제 문제 전반에 걸쳐 파트너십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이 우리 의제의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쟁력 파트너십'과 새로운 '2+2 무역·경제대화'를 신설한 이유다. 아울러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위기를 통해 우리가 석유와 가스 공급망에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확인했기에 친환경 에너지 믹스로의 전환을 가속하고자 '에너지 대화'도 개설했다. 한국이 선두주자인 인공지능(AI)이나 산업용 로봇, EU의 연구·혁신 경험 및 제조업 등 전방위적 주제에서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한국과 EU는 AI와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AI의 도입과 확산은 한국의 우선순위이자 EU의 우선순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혁신을 추진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민주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같은 가치가 중요하다. 녹색 및 디지털 전환, 연구·혁신 분야는 앞으로 한국과 EU가 더욱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60년간의 한·EU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는.
▲내 생각에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공동의 가치(Shared Values)'다. 우리는 현재 국제 관계에서 매우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는 과거의 유혹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맞서 밀어내야(push back) 하며 국제법이 지배하고 유엔(UN) 헌장이 존중되는 체제를 지켜내야 한다.
-현재 EU가 가장 관심을 두고 면밀히 주시하는 세 가지 프로젝트는.
▲우리는 한국과의 관계를 전반적으로(across the board) 중시하고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주목하는 세 가지 분야를 꼽자면 첫째는 연구 및 혁신, 둘째는 디지털 전환, 마지막 셋째는 경제 안보다.
-한국의 방위산업과 EU의 방위 구상은 어떻게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가.
▲한국의 방산이 매우 경쟁력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유럽 내 일부 EU 회원국에 무기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국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EU의 역할은 유럽 방산 시장의 분절을 해결하고 합리화, 공동 조달, 공동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다. EU가 보다 포괄적인 틀을 제공하고 일종의 '전력 승수(force multiplier)' 역할을 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한국과 EU는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군사 협력에 대한 규탄 성명을 냈는데.
▲유럽의 안보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병력, 탄약, 미사일 등 온갖 군사 물자를 공급하는 주요 조력자(enabler)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로부터 얼마나 많은 군사 기술을 얻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의 지속적인 불법 핵·미사일 활동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와 불법적인 핵확산 및 핵무기 증강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며, 기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비밀정보보호협정'은 향후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논의와 협상이 시작되는 단계이므로 협정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세부 사안을 미리 언급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협정은 우리가 2024년에 체결한 '안보·방위 파트너십'의 자연스러운 후속 결과물(corollary)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동아시아 평화, 안정, 지역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해 EU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인도·태평양 안보는 유럽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EU는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무역 및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EU는 2022년부터 정기적으로 'EU·인도태평양 장관급 회의'를 개최하며 협력을 강화하고 공통의 관심 분야를 파악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전 세계 GDP의 거의 50% 수준까지 확대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위해 EU가 제공할 수 있는 외교·안보적 지원은.
▲우리는 긴장 완화와 대화 노력을 기울이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적극 환영한다. 그리고 향후 가능만 하다면, 우리는 언제든 기꺼이 의미 있는 외교적 과정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다자주의 무역 체제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EU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일종의 '예측 가능성의 등불(beacon of predictability)'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의 특징은 규범에 기반한 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규범에 기반한 개방적인 무역 시스템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해 왔다고 믿는다. 한국은 2011년에 EU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이 분야의 선구자(pioneer) 역할을 했으며, 이 협정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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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우리 세대 안에 달성 가능하다고 보나.
▲중요한 것은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는 것이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핵확산이 만연한 세상에 직면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위험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주한 EU 대사로 있는 우고 아스투토 대사는 다자외교와 아시아 정세를 두루 섭렵한 정통 외교 전문가다. 그는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Sapienza University of Rome)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역사, 국제법,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국제기구협회(SIOI)에서 외무공무원 준비 과정을 수료한 '아시아·다자외교통'이다. 특히 아스투토 대사는 1987년부터 1988년까지 공군 소위로 군 복무를 마친 이른바 군필자이기도 하다.
아스투토 대사는 1991년 이탈리아 외교부 경제국 근무를 시작으로 주케냐 이탈리아 대사관 2등 및 1등 서기관을 거치며 정책 결정과 현장의 핵심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주서유럽연합(WEU) 이탈리아 대표부 및 주 EU 이탈리아 대표부 1등 서기관과 참사관,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 보좌 참사관을 역임했으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상임 이사회 이탈리아 대리인 및 주영 이탈리아 대사관 1등 참사관을 지내며 다자 경제 외교 경험을 쌓았다.
아울러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뿐 아니라 영어, 불어, 독일어(기초) 등 다국어에 능통한 아스투토 대사는 본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의 정세와 경제를 분석해 온 식견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외교가에서 근무해왔다. 그는 주인도 이탈리아 대사관 참사관 및 부대사를 거쳐 EU 대외관계청(EEAS)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과장, 아시아 및 태평양 부국장을 지내며 아시아 지역 외교 정책을 총괄했다. 이후 이탈리아 외교부 아시아 부국장 및 세계화 부국장을 거쳐 주인도·부탄 유럽연합 대사를 역임한 뒤 이탈리아 외교부 정치국 G7, 주요 20개국(G20) 부국장을 거쳐 지난해 9월 한국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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