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최민식이 해부한 허문오의 열패감과 파멸
그리고 찌질한 인간에 대한 연민
강의실 맨 끝줄 학생의 글에 빠진 국문학과 교수가 있다.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멈추지 못한다. 단번에 재능을 파악하고 비밀 문학 수업을 제안한다. 각별한 애정에는 이유가 있다. 20년째 후속작이 없는 실패한 작가다. 성공한 동기 김수훈(허준호)의 그늘에서 살아왔다. 작품을 무시당했고, 첫사랑도 뺏겼다. 이강(최현욱)은 김수훈의 집을 드나들며 일상을 관찰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허문오(최민식)는 그 글에 완전히 사로잡힌다.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이 그리는 열패감의 초상이다. 최민식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창작자로서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로 해석했다. "외형적 출세에 대한 집착이 비극의 단초다. 과거 김수훈의 '쓰고 싶은 얘기가 없으면 아예 안 쓰는 게 낫지 않나'라는 독설에 평생을 시달린 인간이다. 자존감이 높고 내면이 단단하다면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고 넘겼을 거다."
인정받지 못한 자의 결핍은 다른 방식으로 분출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자기의식이 타자의 인정 없이는 스스로 확인될 수 없다고 봤다. 인정받지 못하면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는 것이다. 허문오가 이강의 재능을 발굴하고 소유하려는 충동도 같은 맥락이다. 최민식은 인정 욕망이 시종일관 꿈틀댄다고 해석했다. "이야기를 향한 열망은 끝까지 죽지 않는다. 유일한 돌파구가 이강의 글이고, 거기에 함몰되는 거다."
이강의 글도 균열을 가속한다. 처음엔 관음적 시선에 동조할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이중적인 아버지가 김수훈이라고 인식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잃는다. 작가로서 윤리의식은 물론 이성마저 온데간데없어진다. 결말에서 이강이 쓴 모든 이야기는 복수심으로 만들어낸 허구로 드러난다. 허문오를 침몰시킨 건 이강의 글이 아니다. 인정 욕망을 투영한 자기 자신이다.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와 비교하면 허문오의 문학적 색채는 옅다. 도스토옙스키의 작법을 가르친다거나 시제나 서술 방식을 수정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문학적 멘토라기보다 열등감에 잠식된 권위적 캐릭터에 가깝다. 최민식은 부정하지 않았다. "기존 구도에 한국적 서스펜스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작품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파국을 초래한다는 인과(因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민식은 이강의 복수심이 비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앓았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눈앞에서 가망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 말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허문오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열등감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서 괴로웠던 적만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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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은 고통에 함몰된 허문오가 안쓰럽다고 했다. 가정을 잃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매스컴에 얼굴이 다 나온 뒤에도 이야기를 놓지 못해서다. 참치캔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얼마나 아플까, 그 고통의 무게가.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된다. 찌질하지만 감싸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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