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 작가 인터뷰
아뜰리에 아키 '일상의 계절학'…회화는 어떻게 이미지를 믿게 하나
"평범한 일상에도 예술과 역사가 녹아 있다"
미술사와 대중문화가 일상으로 들어온 순간

고흐가 작업실에서 영화를 본다. 홍콩 골목에는 왕가위 영화의 기척이 지나가고, 한강 풍경 한쪽에는 장수막걸리 병이 놓여 있다. 권능의 그림 앞에서는 먼저 사람을 찾게 된다. 저 인물은 누구이고, 저 사물은 왜 저기 있는가. 그런데 오래 보면 질문이 바뀐다. 유명한 얼굴들이 왜 여기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평범한 장소는 왜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권능 Kwon Neung, Where the Film Ended, the Painting Began, 2026, oil on canvas, 85 x 120 cm. 아뜰리에아키

권능 Kwon Neung, Where the Film Ended, the Painting Began, 2026, oil on canvas, 85 x 120 cm. 아뜰리에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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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아뜰리에 아키 P1에서 열리는 권능 개인전 '일상의 계절학: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중국 선전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작가의 국내 갤러리 첫 개인전이다. 1990년생인 그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 상하이, 홍콩, 마이애미 등에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회화 10여 점이 나왔다.


전시 제목은 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여름, 가을, 겨울, 봄이다. 권능은 "순서만 바꾸더라도 지금 이 일상의 시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에서 계절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감각의 배열이다. 같은 장소도 어느 날의 날씨와 기분, 기억에 따라 다른 장면이 된다.

그는 일상을 낮춰 보지 않는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명한 예술이나 역사, 이야기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발견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한강,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처 골목, 작업실과 식탁 같은 장소에 고전 회화와 현대 영화, 대중문화 캐릭터와 술병이 같이 놓인다. 알아맞히기 게임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지식이 아니다. 서로 멀다고 여긴 것들이 이미 생활 속에서 만나고 있었다는 감각이다.


권능 Kwon Neung, The Night Borrowed from Eternity, 2026, oil on canvas, 94 x 150 cm. 아뜰리에아키

권능 Kwon Neung, The Night Borrowed from Eternity, 2026, oil on canvas, 94 x 150 cm. 아뜰리에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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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은 대학 시절 홍콩 아트페어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를 실제로 마주친 경험이었다. 교과서와 이미지 속에서만 보던 작가가 자기 생활의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그는 "벽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미술사 속 작가들도 저렇게 자기 일상 안에서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그렸을 것이다. 권능의 그림에서 거장들은 소환되지 않는다. 초대된다. 높은 좌대에서 내려와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길을 걷는다.

권능은 인물을 고를 때 "인물다움"을 해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와 성격이 많아 특정 상황에 데려오기 쉽다. 반대로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처럼 알려진 바가 적은 인물은 상상할 여지가 넓다. 그는 인물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인물이 놓일 상황을 만든다. 그 뒤의 이야기는 관객이 채운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가 붙잡는 매체는 회화다. 이유는 오래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됐기에 아직 남아 있는 이상한 믿음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사진에 예수가 등장하면 예수 분장을 한 인물이거나 AI로 생성한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회화 속에 예수가 등장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 속 예수라고 받아들입니다." 회화는 허구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 허구를 믿게 만든다. 권능이 말하는 회화의 힘은 거기에 있다.

권능의 ‘We Still Believe in Images’는 상하이 아트페어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에 성화와 고전 회화, 대중문화 캐릭터와 동시대 인물을 한 화면에 불러들인 작품이다. 작가는 “회화 속 예수는 예수로 받아들여진다”는 감각을 통해, 이미지가 어떻게 믿음과 기억을 만들어내는지 묻는다. 아뜰리에 아키

권능의 ‘We Still Believe in Images’는 상하이 아트페어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에 성화와 고전 회화, 대중문화 캐릭터와 동시대 인물을 한 화면에 불러들인 작품이다. 작가는 “회화 속 예수는 예수로 받아들여진다”는 감각을 통해, 이미지가 어떻게 믿음과 기억을 만들어내는지 묻는다. 아뜰리에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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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 'We Still Believe in Images'도 그 지점에서 나왔다. 이미지를 믿는다는 것은 사실 여부와 다르다. "특정 이미지가 사실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미지들이 믿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는 가족사진이, 누군가에게는 SNS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성화나 영화 장면이 그런 이미지가 된다. 권능의 그림에서 이미지는 증거가 아니다. 기억과 감정과 지식이 한꺼번에 눌리는 방아쇠다.


선전이라는 도시도 그의 화면을 넓혔다. 그는 졸업 뒤 한국에 남는 대신 중국으로 갔다. "제 작품은 생활하는 공간이나 경험이 작품이 되다 보니,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하면 작업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홍콩, 상하이, 베이징을 오가며 그는 이미 섞여 있는 도시를 봤다. 프랑스식 건축과 중국적 생활, 외지인의 말투와 음식, 과거의 시간이 도시 표면에 겹쳐 있었다. 그가 그림에서 합치려 했던 동양과 서양, 현실과 상상은 이미 도시 안에 있었다.

권능 작가. 아틀리에아키

권능 작가. 아틀리에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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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반응은 빨랐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았고 판매 성과도 이어졌다. 작가는 부담을 숨기지 않았다. "관람객이나 컬렉터가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상업 갤러리 입장에서는 판매가 잘 되는 작품을 원하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는 오래 지켜본 선생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예전 작품이나 지금 작품이나 앞으로의 작품도 '권능'이라는 작가의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내 호흡대로, 내 방식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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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서면 그림 속 유명한 얼굴들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대신 막걸리병, 골목의 조명, 작업실의 밤, 식탁의 굴,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 같은 것이 남는다. 권능은 예술이 일상으로 내려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상이 이미 예술과 영화와 신화와 술병을 함께 견딜 만큼 넓은 장소였다고 말한다. 전시는 8월 8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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