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위한 쉬운 공소장'
대검, 지난해 250쪽 자료 배포
현장선 '업무부담' 이유로 외면
문해력 낮은 지적장애 피고인
방어권 행사 어려움 겪어
조력 못 받는 발달장애인 피의자

250쪽 ‘장애인 위한 쉬운 공소장’ 샘플 만들어놓고, 활용 안하는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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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이 지난해 배포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공소장'이 일선 검찰청에서 외면 받고 있다. 사법부가 장애인의 방어권 보장과 법률문서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을 실제 재판에 도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 강우찬)는 지적장애인 원고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리며, 기존 판결문에 원고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판결문을 첨부했다. 어려운 법률 용어 대신 "원고가 이겼습니다. 재판에 들어간 돈은 구청이 냅니다", "판사도 당신이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등 직관적인 문장과 요약 그림을 곁들였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제공하라는 대법원 예규에 따른 첫 사례다.

반면 검찰의 상황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11월 총 250쪽 분량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공소장 연구개발' 용역 자료를 발간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일 전국 검찰청에 죄명별 양식을 배포했다. 해당 자료를 만들기 위해 실제 성인 발달장애인 5명(지적장애 4명, 자폐성 장애 1명)이 참여해 감수를 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 담긴 쉬운 공소장 예시는 다음과 같다. "공소장은 검사가 법원에 보내는 글입니다. 검사가 법원에 '이 사람이 잘못을 했으니 처벌해 주세요'라고 알립니다. 검사는 김갑동이 시계 2개를 훔친 절도죄를 저질렀다고 봅니다."(37쪽) 해당 자료는 발달장애인 관련 주요 범죄 사실을 75건으로 추리고, 이를 공소장에 어떻게 쉽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활용도다. 대검찰청은 공소장 활용 실적을 묻는 질의에 "현재 실무상 개별 사건의 특성과 필요성에 따라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으나, 대검에서 별도로 이를 활용한 사건 수를 작성·관리하고 있지 않아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범청 지정 등 구체적인 안착 계획에 대해서도 대검은 "운영 성과, 실무 활용도 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므로 향후 법원과의 협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배포 후 6개월이 넘도록 현장에서 쉬운 공소장이 쓰인 실적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제도가 겉도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일선 검사들의 '업무 부담'이 꼽힌다. 쉬운 공소장을 활용하려면 기존 법률 용어로 작성된 일반 공소장과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소장을 이중으로 작성해야 한다. 대검 인권기획담당관 재직 관련 자료 발간을 주도한 권내건 법무법인 트리니티 변호사는 "사건 처리에 쫓기는 일선 검찰청 입장에서는 일이 두 배로 늘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실제 운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형사재판의 출발점인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지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피고인은 자신이 어떤 혐의로 기소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형사 절차 전반에서 파악하지 못해 방어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발달장애인이 피의자·피해자로 연루된 사건은 7879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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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기간 한국장애인개발원(발달장애인지원센터)을 통해 조력을 받은 건수는 389건(약 4.9%)에 그쳤다. 충분한 조력을 받지 못한 발달장애인 피의자의 검찰 송치율은 2025년 9월 기준 98.4%로 집계됐다. 전체 피의자의 검찰 송치율(23.8%)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법 용어 순화 등 실질적인 조력 제도의 현장 안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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