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엔비디아와 동침, K반도체 딜레마 …폐쇄망·NDA 가동[디지털 트윈의 두 얼굴]①
엔비디아 기술로 '자율형 공장' 속도 내는 삼성·하이닉스
'폐쇄망·NDA' 방어에도, 공정 데이터·노하우 노출 우려
"기술 자립 못 하면 산업 기반 흔들릴 수 있어"
K반도체가 딜레마에 빠졌다.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엔비디아 플랫폼 도입이 불가피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십 년간 축적한 공정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가 외부 플랫폼에 노출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삼성전자 close 증권정보 005930 KOSPI 현재가 309,500 전일대비 0 등락률 0.00% 거래량 11,116,572 전일가 309,500 2026.07.06 10:57 기준 관련기사 삼성 갤럭시 워치로 폭염 노동자 건강 지킨다…'열 스트레스 관리' 고도화 "99조원 갈 것" 삼전 실적에 코스피 운명 달렸다…'폭풍 상승' 다시 시작될까 프랭클린템플턴 "韓 반도체 쏠림 심화…저평가 우량주 발굴해야" 와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close 증권정보 000660 KOSPI 현재가 2,338,000 전일대비 87,000 등락률 -3.59% 거래량 2,051,785 전일가 2,425,000 2026.07.06 10:57 기준 관련기사 프랭클린템플턴 "韓 반도체 쏠림 심화…저평가 우량주 발굴해야" 'KB 삼성전자SK하이닉스 50 펀드', 설정액 1000억원 돌파 혼란스러운 7월 증시...현명하게 대응하려면 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엔비디아 핵심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폐쇄형 네트워크 구축, 비밀유지계약(NDA) 체결 등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이중 방어막을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별 기업의 방어만으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공정 데이터를 지킬 수 없다고 경고한다. 미국 법에 따라 언제든 데이터가 열람될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이 존재하는 만큼 산업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국가 차원의 인프라와 제도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메모리 양대사, AI 팩토리 전환 가속
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정 설계부터 운영·개선까지 반도체 생산의 전 과정을 엔비디아 기술 위에서 돌리는 방향으로 바꿔가고 있다. 단순 설비 자동화를 넘어 공정 설계·운영·최적화 등 전 단계에 AI와 디지털 트윈을 도입해 제조 패러다임을 재편하는 것이다.
핵심 도구는 디지털 트윈이다. 실제 공장을 3차원 가상공간에 그대로 복제해 놓고, 공정을 미리 돌려보며 최적의 조건을 찾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가상 시뮬레이션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로 평택 1공장 등 주요 생산 시설의 디지털 트윈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설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잡아내는 통합 관제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에 새기는 노광 공정에는 엔비디아의 연산 프로그램 쿠리소(cuLitho)를 도입해 설계 정확도를 높이고 개발 기간을 줄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 미국 테일러 공장 등 해외 생산 거점에도 디지털 트윈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도 옴니버스로 공장 디지털 트윈 구축에 착수해 지난해 관련 기술 검증(PoC)을 마쳤다. 엔비디아의 개발 도구인 쿠다-X(CUDA-X)와 피직스네모(PhysicsNeMo)를 활용해 설계·제조 시뮬레이션 속도도 끌어올리고 있다. 2030년까지 사람 개입 없이 공장 스스로 배우고 판단하는 자율형 팹(공장)을 만든다는 목표다.
가성비의 역설…'자발적 종속' 구조
문제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부터 시뮬레이션 플랫폼, AI 개발 도구까지 스마트 팩토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 묶음으로 제공한다. 기업이 이 패키지를 도입하는 순간 공장의 데이터 형식과 작업 방식이 전부 엔비디아 방식에 맞춰진다. 이후 설비를 새로 들이거나 공정을 바꿀 때도 이미 깔아 놓은 엔비디아 환경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싸고 빠른 선택이 된다. 다른 회사 플랫폼으로 갈아타려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고 그 사이 공장이 멈출 위험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다. AI 개발 분야에서 GPU를 쓰면 자연스럽게 엔비디아의 개발 도구 쿠다(CUDA)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수년간 굳어졌고, 쿠다는 사실상 전 세계 AI 개발의 표준이 됐다. 제조 현장에서도 같은 전략이 통하면 기업들이 성능을 좇다가 스스로 엔비디아에 묶이는 자발적 종속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인공지능안전연구소장)는 "엔비디아는 과거 GPU 독점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트윈과 피지컬 AI 영역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당장 이 정교한 시스템을 대체할 기술과 플랫폼이 마땅치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고 지적했다.
폐쇄망·NDA 가동…"그래도 안전 장담 못해"
물론 기업들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옴니버스 기반 디지털 트윈 서비스를 외부 네트워크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폐쇄형 프라이빗 네트워크 환경에서 운영하고 플랫폼 공급사와 계약 단계에서 NDA를 체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공정 데이터를 외부 프레임워크와 완전히 분리해 별도 관리하며 생산·물류·물리 시뮬레이션 등 핵심 솔루션은 자체 플랫폼 위에서 운영하고 옴니버스는 디지털 트윈 구현을 보조하는 하위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외부 플랫폼을 도입하면서도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정도 대응으로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디지털 트윈과 피지컬 AI가 결합되면 AI가 현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학습하는 구조로 전환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정 노하우를 포함한 현장 데이터가 외부 플랫폼에 역으로 학습될 수 있다. 수십 년간 축적한 K반도체의 제조 경쟁력이 플랫폼을 타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계약에 데이터 유출 방지 조항을 넣고 사업장 내 온프레미스(폐쇄형 서버)를 구축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며 "폐쇄형 서버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엔진과 운영체제(OS),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네트워크 통신 규격의 원천 기술은 여전히 빅테크가 쥐고 있다"고 꼬집었다.
법적 허점도 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약관이나 NDA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플랫폼 연동을 위한 클라우드 소재지가 미국에 있으면 미국 당국이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클라우드 액트(Cloud Act)에 따라 국가 보안 사태나 미국 정부 요청이 있을 경우 미국계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는 법적으로 강제 열람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과거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데이터 주권을 지키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엔비디아와도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두고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등 정교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며 현실 세계의 센서나 카메라 정보를 무분별하게 연동하면 불필요한 기업 노하우까지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며 "학습 데이터 최소화 기술로 꼭 필요한 정보만 걸러 AI에 학습시키고 협상 단계에서 특정 데이터를 학습에서 제외하는 조건을 계약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 방어 넘어 국가 거버넌스 시급"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거버넌스 구축이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자체 보안 인프라를 갖출 여력이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중견·중소 제조기업 대부분은 별도 데이터 보호 체계 없이 글로벌 플랫폼 생태계에 편입되고 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은 당장 이윤 추구가 우선이라 10~30년 뒤의 종속 리스크를 보기 어렵다"며 "국가가 중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모니터링하고 연구개발(R&D) 대안을 세우는 거버넌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도 "반도체 슈퍼사이클 국면에서는 종속의 심각성이 가려져 있지만 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원천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슈퍼사이클 이후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도 "설계·공정·생산 데이터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 자산"이라며 "국내 AI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확충, 안전한 데이터 공유 체계,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보안 기술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제도적·기술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능한 전략으로는 월드 모델 국산화와 국가 주도의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이 거론된다. 월드 모델은 현실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와 규칙을 통째로 학습한 AI다. 이를 갖추면 실제 공장이나 도로 같은 다양한 환경을 가상으로 만들어 어떤 작업이든 미리 돌려보고 계획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월드 모델 고도화에는 방대한 데이터와 고도의 제조 기술이 필수적인데 미국은 현지 제조 인프라와 생산성 부족으로 이 분야를 일방적으로 독점하지 못했다"며 "한국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과 공정 데이터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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