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모빌리티 혁신의 성패, 속도 아니라 신뢰에 달렸다
모빌리티의 미래는 더 이상 자동차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자동차는 배터리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통신, 데이터, 도시 인프라와 결합한 이동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2030 모빌리티 혁신성장 로드맵'도 이러한 변화를 전제로 한다.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드론, 전기차, 수소차, AI 물류, 디지털트윈 도시를 하나의 모빌리티 생태계로 묶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방향은 옳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이미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배터리 안전성이나 차량용 운영체제, 사이버보안, 데이터 처리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여기에 자율주행과 플랫폼 서비스가 결합하면 자동차는 단순한 소유재가 아니라 교통·물류, 도시 운영을 연결하는 기반시설이 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국가 차원의 로드맵은 필요하다.
다만 기술의 가능성을 곧바로 사회적 준비상태로 오인하면 위험해진다. 모빌리티 혁신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기준이나 관제, 사고책임, 시민 수용성 등을 함께 갖춰야 한다. 정부는 '언제 상용화할 것인가'보다 '어떤 조건에서 안전하게 허용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자율주행 정책의 핵심은 차량 대수나 누적 주행거리가 아니다. 사고율, 긴급개입 횟수, 원격제어 개입 횟수, 시스템 해제 상황, 기상조건별 성능, 최소위험상태 진입 능력이 더 중요하다. 시민은 홍보용 미래상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안전지표를 믿는다. 실증도시를 만들더라도 국민에게 공개되는 지표가 없다면 자율주행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불투명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데이터는 기업의 학습 자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신뢰의 근거여야 한다. 엄격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UAM, 임무를 신뢰성 있게 수행해야 할 드론도 마찬가지다.
생활형 모빌리티는 국민 체감도를 좌우하는 분야다. 국민에게 모빌리티 혁신은 거창한 구호보다 출퇴근이 편해졌는지, 교통취약지역 이동이 쉬워졌는지, 환승과 결제가 간편해졌는지, 물류비가 줄었는지로 평가된다.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수요응답형 교통, 퍼스널 모빌리티, AI 물류는 모두 필요한 방향이다. 이 분야는 기술보다 운영이 어렵다. 플랫폼 간 데이터 공유, 민간과 공공의 역할 분담, 요금체계, 안전관리, 사고책임, 운영비 부담이 해결되지 않으면 서비스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도시·공간 전환도 신중해야 한다. 디지털트윈이나 고정밀 공간정보, AI 모빌리티 시범도시는 미래 모빌리티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드론, 로봇이 도시에서 움직이려면 도로와 건물, 주차장, 물류거점, 충전시설이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시범도시에서 가능한 모델이 기존 도심과 농어촌에서 그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도시는 이미 만들어진 공간이다. 좁은 도로, 부족한 주차공간, 노후 건축물, 복잡한 보행환경, 지역별 교통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미래도시 구상은 전시성 사업에 그칠 수 있다.
결국 모빌리티 혁신의 방향은 '더 새로운 이동수단'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연결된 이동 체계가 돼야 한다. 자동차는 앞으로 전동화·소프트웨어화되고,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고장 가능성, 사이버보안 위험, 정비 난이도, 사고책임 문제도 커진다. 미래차 정책은 기술개발과 보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안전기준을 비롯해 검사제도·정비체계·보험제도·데이터 거버넌스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로드맵의 장점은 모빌리티를 자동차 한 분야로 보지 않고 항공과 물류, 에너지, 도시, 플랫폼까지 넓게 연결했다는 데 있다. 반대로 가장 큰 위험은 너무 많은 미래기술을 한 번에 담으면서 정책 우선순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UAM, 드론, 수소, AI 물류, 디지털트윈을 모두 동시에 선도하겠다는 목표는 종합적이지만 실제 예산과 인력, 제도 역량은 제한적이다. 모든 것을 하겠다는 전략보다 무엇을 먼저 검증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첫째,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자율주행이나 전기차 배터리, 퍼스널 모빌리티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고속도로 자율주행 화물, 교통취약지역 수요응답형 교통, 공공 드론, 상용차 전동화처럼 공공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UAM과 장기 미래기술은 단계적으로 검증하되 단기 성과처럼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데이터 플랫폼은 기업 지원 인프라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설명 가능한 안전지표 공개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다섯째, 신도시 실증뿐 아니라 기존 도시와 농어촌에서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모빌리티 혁신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다만 혁신이라는 단어가 안전과 책임의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 미래 모빌리티의 성공은 자율주행차가 몇 대 달리는지, UAM이 몇 년에 뜨는지, 드론이 몇 대 보급되는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민이 더 안전하게 이동하고, 교통약자가 더 쉽게 접근하며, 산업이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밝힐 수 있을 때 성공한다.
한국의 모빌리티 정책은 이제 '빠른 상용화'보다 '검증된 상용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글로벌 선도국이라는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이동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기술발전의 속도는 빠르지만 교통안전과 사회적 신뢰는 서두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2030 모빌리티 혁신성장 로드맵이 진정한 성장전략이 되려면 실증의 규모보다 검증의 깊이, 미래상보다 현장 작동성, 기술의 가능성보다 제도의 신뢰성을 앞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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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용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 회장·중부대 스마트모빌리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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